본가 방문은 오랜만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독립했고 결혼 후 거의 가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가자고 했지만 내키지 않아 늘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본가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 집에 살던 동안 나를 괴롭혔던 두통 때문이었으리라.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도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랜만에 온 본가는 낯설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메시지를 남겨놓고 소파에 잠깐 앉았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았는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어떡해요.”
“조용히 해. 정운이가 듣겠어. 오히려 잘 된거야.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그래도 애가 너무 아프잖아요.”
“그건 방법이 있겠지. 우리가 고쳐주면 되는거야. 안그래도 주변에 알아보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를 찾아낼거야. 그럼 되는거야.”
“네가 여긴 어쩐일이니?”
엄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전히 머리가 멍하다.
“엄마, 저한테 뭐 숨기시는 거 있어요?”
“숨기는거라니?”
엄마가 당황했다.
“아니……. 지금 꾼 꿈도 그렇고. 지수요. 지수는 어디 있어요?”
“갑자기 뭔 꿈 얘기야. 그리고 지수는 친정에 갔다고 했잖아.”
하지만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처갓집에 지수가 없어요.”
“그럼 잠깐 외출했나보지.”
“장모님께서는 아예 오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래? 이상하다. 나한테는 친정에 가 있겠다고 했는데…….”
이건 거짓말 같지 않다.
그렇다면 아내는 어디에 있는걸까?
그때 하영이 사건 담당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경찰서에 다녀가신 후 피의자가 모두 자백했습니다. 사용한 독약도 몸에 지니고 있어 증거로 확보했구요. 자백에 증거까지. 완벽합니다. 그래서 검찰에 기소 후 재판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뭔가 더 진행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왜 죽였답니까?”
“아, 그게……. 저희도 물었는데 이유가 좀 황당하더라고요.”
“그 황당한 이유가 뭐랍니까?”
“정운씨가 가장 행복해 보여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가장 행복해 보여서요?”
“네. 좀 이상하죠? 그냥 미친년인거죠 뭐.”
“변호사는 구했나요?”
“아뇨. 그럴 형편도 못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 국선 변호사가 배정될 거예요.”
“네.”
“검사는 무기징역을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그러니 마음 잘 추스르세요.”
“감사합니다. 재판일이 정해지면 꼭 연락주세요.”
‘내가 행복해 보여서 그랬다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신이 몽롱하다.
뭐부터 해야 할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 때문에 몸이 자꾸만 땅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그냥 눕고만 싶다.
아이가 죽었고, 아내가 사라졌는데 눕고 싶다니!
다시 눈을 부릅 떠 보지만 이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우선 집에 가자.
계속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다.
아내에게 여러 통의 메시지를 남겨 놓은 후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여보세요? 당신 지금 어디야?”
“하영이는 제가 화장해서 데리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잘 있으니 찾지 말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처가에 있기 그러면 집으로 와. 집에서 얘기해.”
“당신 만나고 싶지 않아요. 나 그 여자 만났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야겠더라고요. 만나서 모든 얘기를 들었어요. 당신, 당신 부모. 모두 다! 우리 하영이는 그 여자가 죽인 게 아니에요. 당신이, 당신 부모가 죽인거지. 그 여자는 자기 죗값이라도 받겠지만 당신과 당신 부모는 아니야! 앞으로 날 찾지 말아요. 이혼은 변호사를 통해 진행할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
뭐라고? 내가 하영이를 죽인거라고?
아니지. 나와 우리 부모님이 하영이를 죽인거라고?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쏟아지던 잠이 단숨에 달아났다.
급히 본가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