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인과관계가 있고 직관은 인과관계가 없다.
감정과 직관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다. 감정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내가 오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해서 기분이 좋다' 이것은 만족할 음식이 원인이고 기분이 좋다라는 것은 결과다. 즉 감정은 행동후에 일어나는 결과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관은 이와 순서가 다르다. 그냥 '기분이 쎄하다', '기분이 뭔가 에너지가 느껴진다'와 같은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 무의식적인 에너지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차트를 본다. 그리고 어떠한 정보도 없이 막연히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보는 것은 눈이지만 항상 내면의 눈으로 내 마음속에 흘러나오는 감정을 시각화해본다. 연기가 나거나 뭔가 답답한 골목길을 걷거나 아니면 어제 친구랑 느꼈던 수다를 보거나 주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가 떠오른다.그것을 중심으로 왜 지금 이런 느낌이 드는지를 보는 것이다.
즉 주식과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를 느껴보는 것이다. 주식차트를 보고 느껴지거나 보여지거나 들리는 내가 그동안 경험한 감정의 퇴적층에서 아지랭이처럼 흘러나오는 이미지나 촉감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게 말이되는가?'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직관,육감,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이 그 인과관계만으로 자신이 감정을 의도적으로 거기에 맞는걸로 라벨링을 붙인다. 즉 감정은 사실 이성적 논리의 총합이고 그 총합을 누리는 대중들이 많을 수록 법칙으로 여겨지면서 세상의 비밀을 얻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결국 논리의 총합이고 앞에서 말한 합리성의 배신과 일맥상통한다.
직관은 인과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공감각적이고 막역하고 전혀 엉뚱한 이미지와 느낌이 든다. 그럴떄 우리는 '에이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다시 감정의 논리를 찾아 헤멘다. 감정의 논리는 결국 대중의 논리고 우리는 그것을 감정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고요한 시간에 고요한 마음을 가져야한다. 내 마음속에 흐르는 맑은물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속에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보여지는 대상의 느낌을 받아보는 것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할때 어떤 화두를 가지고 이런 연습을 계속한다. 밤에 가족 모두가 잠들었을때 뉴스를 쭉 스크롤 하면서 느껴지는 직관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채집하고 그것을 메모장에 써놓는다. 그리고 그글들을 토대로 상상의 느낌을 가진다. 스토리텔링이 되면서 쭉 써보는 것이다. 이것이 100% 맞는가? 그것 자체가 감정이다. 맞고 틀리고는 시간이 정해준다. 하지만 여태 나는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 이미지와 감정이 80%의 생각과 반대되는 방향이라면 더욱 큰 확신을 가진다. 하지만 무조건 80%의 생각을 반대로 해서 직관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감정인것이다. 어떤 가치도, 어떤 합리성도, 어떤 과거의 사례도 전혀 보지 않고 오로지 현재 내가 보는 그 자체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막연하지만 가장 충만하고 가장 비이성적인 것 같지만 가장 내안의 무의식과 잠재력을 깨우는 것은 낯선 이미지를 느낌으로 만들고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현재와 비교해보는것이 전부다. 이것이 주는 장점은 자신의 무의식과 일치하는 결정을 내리기 떄문에 미련과 후회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쓰는 글도 어떤 개요도 작성하지 않고 손이가는대로 쓰고 있다. 직관적 글쓰기. 누가 이것을 어찌 평가하고 독자의 니즈를 생각하고 쓰지 않는다. 그래서 직관적 글이다. 그러한 상상이 어렵다면 본인들도 아무 생각없이 글을 쭉쭉 써보면 된다. 그것이 결국 직관의 꼬리를 잡아서 몸통을 보게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스스로 움직인다 생각을 하고 쓰는것이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글자를 치면 자동문장이 되게 써본다. 우리는 쓸데없는 과부하의 감정논리로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살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무의식의 자동완성이라고 나는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