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Jul 19. 2023

깨달음을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깨달음의 길을 가는 싯다르타



주인공 싯다르타는 자기 안의 모든 것을 비우고 싶었다. '생명, 신적인 것, 궁극적인 것'(p.61), 바로 아트만을 추구하고자 자아를 없애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구절을 외우고 제사를 지내며 지식을 쌓아도 해탈로의 길은 멀어 보였다. 그는 집을 떠나 고행을 하는 수행자들과 숲속에서 생활했다. 단식하고 사색하며 기다리며, 자신을 잠시 벗어나 다른 사물이 되어보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싯다르타의 깨달음에 대한 갈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깨달은 자 부처 고타마를 만나 설법을 들었다. 여전히 싯다르타는 만족하지 못했고, 고타마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p.55)라고 주장을 펼쳤다.



그다음으로 싯다르타는 사문의 길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카말라에게 사랑의 쾌락을 배웠고, 카와스와미한테 장사하는 기술을 배웠다. 돈을 모았고 펑펑 썼고, 맛있는 음식과 술과 주사위 노름에 취했다. 욕구와 태만, 탐욕에 사로잡혀 버렸다. 과거에는 내면에서 종종 들려왔던 '옴'이라는 신성한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어린애들의 유희'(p.123)에 빠져있다고 느꼈다. 카말라의 금빛 새장에 살던 '자그맣고 희귀한 새'(p.120)는 마치 할 줄 아는 건 사색, 기다림, 단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예전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았다. 싯다르타의 꿈속에서 새가 죽었듯, 사제였고 사문이었다가 욕망하는 자가 되었던 싯다르타는 모두 삶의 종말(p.144)에 이르렀다.  



물에 빠지려던 마지막 순간 그를 구한 것은 '완전한 것'이나 '완성'을 뜻하는 성스러운 '옴'(p.129) 소리였다. 그는 다시금 '젊고 기쁨에 가득 찬 어린아이'(p.145)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바주데바의 집에 머물며 함께 뱃사공 일을 하면서, 강에게서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몇 해 후 고타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그를 만나러 가던 카말라와 그의 아들이 싯다르타와 마주쳤다. 뱀에 물린 카말라는 세상을 뜨고, 싯다르타는 자기 아들임을 알고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 온통 휘말려 버리지'(p.173)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아들은 그에게서 도망쳤고, 싯다르타는 몹시 괴로워했다. 세월은 계속 흘렀고, 노인이 된 싯다르타는 옛 친구 고빈다와 만나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p.212) 본다는 총체성과 동시성에 대한 깨달음을 나눈다.




부처 고타마가 싯다르타의 인생에 등장하는 순간들



고타마가 어째서 그 시점에 싯다르타의 인생에 등장해야 했을까. 고타마는 깨달은 자, 즉 부처로 '목소리는 완벽하였으며, 완전히 평온하였으며, 평화로 가득 차'(p.49) 있는 사람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부처를 따르기 위해 고타마를 찾는다. 그의 '새끼손가락 놀리는 동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진실된'(p.48) 사람이다. 고타마를 만나기 전 싯다르타는 이미 옛 스승들의 설법과 배움에 불신을 품고 있었다. 고타마는 그의 생각에 쐐기를 박는다. 싯다르타는 고타마조차도 가르침에 깨달음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낀다. 고타마만큼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사랑해본 적이 없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와의 만남을 계기로 싯다르타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오랜 친구 고빈다가 옆에서 그를 말렸다면, 싯다르타는 쉽게 속세로 들어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빈다가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로 선택한 덕분에 싯다르타의 결심은 쉽게 실행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고타마의 입멸이 가까워졌고, 이를 계기로 싯다르타는 카말라와 자신의 아들을 만났다. 자식에 대한 애착 또한 덧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데 고타마가 매개가 되었다. 고타마는 싯다르타에게 깨달음을 가르침으로써 전하지는 않았지만,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각 단계를 넘어갈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소설 속에서 싯다르타가 부처 고타마를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었다. 싯다르타(Siddhartha)는 원래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의 어린 시절 이름이다. '해탈의 모든 목적(artha)을 이룬(siddha) 상태'라는 뜻이다. 고타마(gotama)는 인도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소(go) 가운데 최상(tama)라는 의미로, 훌륭한 사람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에 속한다. 즉,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든 상서로움을 갖추고 태어난 최상의 황소와 같은 분'이라는 의미가 된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탐욕에도 사로잡히고, 자식에 대해 집착도 겪는다. 결국에는 강으로부터 배우고 수행하며 실제 현실에서처럼 깨달은 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된다.




깨달음을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싯다르타》를 4분의 3 가량 읽었을 때 나는 서평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싯다르타가 여러 과정을 거쳐서 깨달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가. 그렇다면 싯다르타가 생각하는 깨달음의 형태가 변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서 서평을 써볼까…. 여러 질문들도 떠올랐다. 이를테면 싯다르타는 속세의 쾌락을 꼭 맛보아야만 했을까, 늙은 뱃사공으로 살아가는 싯다르타에게 다시 아들이 나타나면 싯다르타는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식으로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갔다. 그런데 복잡한 생각의 미로에서 내 마음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사람은 바로 카말라였다.



카말라는 싯다르타가 속세의 삶을 경험해 보겠다고 도시를 찾았을 때 처음 만났던 인물이다. 그는 싯다르타의 눈빛과 목소리에 반해, 그를 상인 카와스와미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카말라는 싯다르타가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그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애인이자 친구가 된다. 그는 유일하게 싯다르타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p.109)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결국 사문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기도 하다. 싯다르타가 점점 돈벌이와 노름에 빠지던 시절 '카말라는 한숨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언젠가는, 아마도 곧, 나도 그 부처님을 따르게 될 거예요. 나는 그분에게 이 유원지를 바치고 그분의 가르침에 귀의할 거예요."'(p.117)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말은 카말라 본인도 깨달음을 얻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카말라는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 있었나? 싯다르타가 떠난 뒤 카말라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뱃사공의 삶으로 훌쩍 떠날 수 있었지만, 카말라는 그럴 수 없었다.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용히 그를 떠난 싯다르타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지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혼자 아들을 돌보며 살았을 것이다. 그의 어린 아들은 '그녀의 뜻에 거슬러 자기 마음대로 억지를 부리는 습관'(p.160)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헤어진 후 카말라의 삶과 싯다르타의 삶을 떠올렸다. 만약 싯다르타가 카말라와 함께 살았다면 그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아들이 찾아와 심술을 부리고 소리를 지를 때에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아들이 그를 떠나 도망가기 전, 그리고 도망가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 집착과 그리움을 떨치지 못했다. 나는 싯다르타에게 수많은 세월 강을 바라보며 경청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깨달음에 도달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깨달음을 구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 카말라에게는 죽는 날까지 주어지지 않았던 것.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아닐까. 육아에 부대끼다가 깨달음에 얻는 사례가 있었던가.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문득 씁쓸해졌다.




(*) 18 . ‘싯다르타’란 이름의 의미 , 현진스님, 법보신문, 2019.5.8.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236



#민음사 #서평 #트레바리 #이참에읽자 #독일문학 #북스타그램 #대체텍스트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회색 천 위에 책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책 표지 위쪽 절반은 헤르만 헤세가 그린 꽃밭 그림이 들어가 있다. 책 표지 아래쪽 절반은 흰색이고, '세계문학전집 58' '싯다르타 Siddhartha' '헤르만 헤세 · 박병덕 옮김'이 쓰여 있다. 책 표지 좌측 하단에는 출판사 이름인 '민음사'가 있다. 책 오른쪽 아래에 노란색 꽃이 일곱 송이 놓여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의 짐이자 힘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 지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