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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Sep 03. 2024

H마트에서 울다

엄마와 딸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미셸 자우너가 쓴 <H마트에서 울다>의 첫 문장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엄마와 딸사이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읽다 보면 동서고금 엇비슷하구나 느끼면서 위로가 되었다.
지긋지긋한 애정을 기반한 모녀간의 일들 감정적인 충돌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제목이 다 한 비비언 고닉이 쓴 <사나운 애착>도 있는데.

일단 이 책의 저자 미셸 자우너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미국의 팝 밴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다.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그녀에게 한국과의 연결 포인트는 당연히 엄마와의 추억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이모와 할머니가 계시는 한국을 방문한다.
자연스레 사촌들과 어울리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체험과 경험이 쌓인다.

H마트는 한아름을 뜻하는 아시아 식재료를 파는 미국 체인점이다
식재료를 고르면서 눈물 흘리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
딸과 엄마의 애착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딸의 한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조절되고 서운함과 속상함(특히 엄마 쪽)이
적응되며 각자의 자리가 마련된다.
서로 멀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시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미셸 역시 그러던 중 엄마가 췌장암에 걸리고 그걸 알게 되면서 그녀는 즉각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투병기간 내내 엄마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그 과정을 지켜본다.
엄마가 어린 시절 해 준 음식들을 떠올리고 투병 중인 엄마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한다.
결국 딸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회고담이기도 하다.
왜 다 지나고 난 다음 회고록이어야 할까?
엄마와 나의 이야기란.
나는 책을 통해 나와 엄마를 이해하는 방식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안도하고 싶은 건지도.
내겐 아직 언제든지 찾아가 얼굴 볼 수 있는 친정 엄마가 계시니까.

얼마 전  엄마 모시고 백내장 검사를 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대학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대는 통에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와 나도 널브러지는데 당사자인
우리 엄마는 얼마나 긴장하고 힘드셨을까?
저녁 먹고 전화했더니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하신다.
"오늘 니들 고생 많았다.
김서방한테 미안해서 어쩌니? 일부러 이번 휴가 맞춰 수술 날 잡은 데다 병원비까지 혼자 다 내고."
"괜찮아, 엄마는 아프려면 지금 다 아프고 더 아프지만 않으면 돼.
김서방 퇴직 전까지만 아프고 말아, 알았지?"
그럴 수야 있냐고 씁쓸히 웃다 통화는 끝났지만.
나는 안다. 그리고 어제 더 자세히 보았다.
정말로 우리 엄마 기력 쇠해진 모습을.
지난주 세 딸과 점심 먹을 때 보다 더 힘겨워 보였다.
기다림과 검사 과정에 지쳐서일 거라고 내가 나를 위로했지만.
내게도 언젠가는 엄마를 회고하는 날이 오겠구나 슬프게 예감했다.
친정아버지는 워낙 갑자기 돌아가셔서 미리 슬퍼할 일이 없었는데
엄마와 그다지 사이좋지 못했던 큰 딸은 지금이 기회이고
가장 빠른 시기인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다.
억지로 힘을 쓰진 않겠다.
힘 빼고 과하지 않게,
그저 지금을 엄마와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음식에 관해서도 너무 잘 쓴 이 책,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묘사와 표현이 무얼 뜻하는지 정확해 웃음 나오는 지점이 꽤 많다.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나도 그렇다.
안타깝고 서글픈 엄마와의 시간이지만
마냥 신파조로 흘려보낼 필요 없음이다.
힘 빼고 마주할 수 있는 지금이어서 참 좋다고 생각하자.
책 표지처럼 엄마랑 콩국수 먹으며 H를 만들어 볼까?
우리의 H는 하트의 H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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