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출판사에서 의뢰받아 쓴 글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즉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라고 밝혔다. 오래전 읽은 책이라 기억이 새롭지만 술술 편하게 썼다는 그의 말은 옳다. 그가 늘 역설하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 일상생활 속에서 작가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어쩌다 소설 쓰기 위한 자질을 약간 갖고 있었고 행운과 다소 고집스러운 (일관된) 성품으로 수십 년 직업적인 소설가로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는 그 사실이 놀랍다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지속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고충을 모르지 않는다. 소설 한 편 쓰는 일이야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하루키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내적 충동과 강한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위에서 말 한 고집스러운 일관된 성향 하고도 통한다. 피지컬 하게 내 손을 움직여 글을 쓰고 몇 번이나 되짚어 읽어 보고 세밀하게 고쳐 쓰기의 반복, 직접 뛰어들어해 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직업군인들 치열하지 않을까? 직업 일반론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 분야에서 꾸준한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일. 한 시기에 불쑥 튀어나와 세간의 강한 주목을 받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지속력의 문제를 꼽는다.
글(소설)을 쓰려면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그 스스로가 흔해빠진 대답이라서 죄송하다고까지 말하며 내 몸을 통과시키는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나라고 말하는데 때론 당연한 것이 답이다.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두라는 말 앞에 나는 마음이 급하다. 옥석을 가려야 하는 많은 책들 앞에서.
하루키는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 (라이터 블록)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재능이 넘쳐서가 아니라 단순하게 말해서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무언가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쓰지 않고 쓰고 싶을 때 마음먹고 썼다는 게 방법. 그러나 이런 표현도 소설가로서 하루키이니까 가능한 일, 소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소설 쓰기가 싫을 땐 다른 쓰기로 번역이나 에세이를 썼다는 건 어쨌거나 그는 언제나 늘 항상 쓰는 사람이었다. 꾸준함과 지속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으로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강조한다.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생각은 시간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잘못 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보다 작가 역량의 문제라고 꼬집는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지 시간에 컨트롤당해서는 안된다는 뼈 때리는 소리에 나는 변명을 감춘다.
현재 그의 작품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일본에서 작가로서의 토대를 구축하고 그다음에 해외로 눈을 돌려 독자층을 넓혔고, 일본 자국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 외국 대학에서 강연하고 통역 없이 외국어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등 이미 글로벌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프런티어 정신을 다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