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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Oct 08. 2024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향수>의 첫 문장.
그 뒤로 줄줄이 이어지는 서사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매혹적인 <향수>에 관해서가 아닌 세상 모든 '냄새'에 집착하는 광기 어린 남자의 이야기로
부제 또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요즘 다시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빠져 그의 작품을 곶감 빼내 먹듯 하던 중
내가 좀처럼 하지 않는 일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았다.
보통 원작과 영화는 방향과 전제가 다르고 때론 주제와 결과마저 비트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수백 페이지 활자를 영상으로 옮길 때의 어쩔 수 없는 압축과 생략이 아쉽기도 하고.
그렇게 외면하는 일이었는데.
내가 본 영화 <향수>는 원작에 가깝다.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생선 시장 가판대에서 태어난 장바스티스 그루누이.
생선을 다듬던 그의 모친은 아비가 누군 줄도 모르는 다섯 번째 이 아이가
그전의 네 아이들처럼 죽기를 바란다.
생선 내장과 함께 버려질 줄 알았던 신생아는 죽기 직전 울음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리고
그를 낳은 여자는 앞선 전적 포함해 영아 살인죄로 사형당한다.
즉 그루누이가 태어남으로서 어머니는 죽게 된다.
이 아이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재능이 바로 냄새를 기억한다는 것.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것 이상으로 일상의 보통 냄새뿐 아니라
모든 사물의 모든 체취를 기억하고 그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상대가 내게 미칠 영향까지 방어적으로 알아챈다.
냄새에 집착하던 중 한 소녀의 황홀한 냄새에 이끌려 첫 살인을 한다.
이후 향수를 제작하는 상인을 찾아가 도제로 일하기를 요청하는데,
한때 유명했으나 쇠퇴의 길을 걷던 향수 업자는 그루누이가 만든 신제품으로 부와 명성을 되찾는다.
신분증 도제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상인은 그루누이를 자기 집에서 내보낸다.
자유의 몸으로 7년간 은둔 생활을 하며 자신에게는 냄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냄새로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외로움.
다시 사람들 사회로 내려와 더욱 강렬한 향수 제조에 몰두한다.
단순한 향수가 아닌 인간 체취에 따라 달라지는 냄새 자체를 만든다.
그를 타인으로부터 보호하기도 감추기도 신뢰하게도 하는 냄새.
향취에 따라 자신을 달리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스물네 번의 소녀들을 향한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냄새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은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찾던 황홀한 체취를 가진 신분 높은 시의 부집정관 딸까지 살해하고 체포된다.
열두 번의 쇠 몽둥이질로 인체 관절을 부러뜨린 후 십자가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형벌을 받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직 향수를 읽지 않은 그러나 읽어 볼 마음이 있는 분들을 위해 결말은 패스한다.

첫 페이지부터 압도하는 환상적인 서사와 묘사.
상상도 못할 상상력이다.
'세상 모든 냄새를 맡는 남자 '에 관한 내용을
300여 페이지가 넘는 글로 쓴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천재다.

내가 쓰는 서평이랄 것도 없는 읽고 쓴 책 이야기는 나를 위한 기록이다.
한 번도 책을 추천한 적 없다.
읽는 분야와 성향이 다르며 소설파인 내가 자기 계발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무용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므로.
그러니 난 읽은 책을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의 성향도 판이하지만 늘 잘 들어 주고 흥미로워하는 그에게
책까지는 못 권하고 그래서 영화를 함께 보았다.
책을 읽고 멍한 기분을 영상으로 잇는다.
줄거리를 미리 말해 이해를 돕고 압축된 부분을 좀 더 세심히 설명(?)한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단다
의외다. 사실 그의 취향이 아닌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영향이다.

<향수>는 이십세기 들어 가장 많이 팔린 독일 소설로 이천만 권 이상이 팔렸으며
쥐스킨트는 여전히 유명한 은둔 작가다.
그가 현존하는 작가라는 사실만이 위안이다.
자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읽어 봐 읽어 봐.
함께 읽고 한참을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돌려 주러 곧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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