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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익




[김창익 칼럼] 미국이 우리편을 들것이란 착각

김창익 사회부 부장입력 : 2019-07-17 15:57


- 트럼프는 군사 동맹 관점에서 한·일 갈등을 본다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심화하면서 ‘미국 중재’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양자가 해결할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어 당장 중재에 나서지는 않을 전망이다. 중재에 나설 경우 미국은 일본 쪽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한·일 갈등을 경제 문제가 아니라 안보 이슈로 접근하고 있어서다. 한·미·일 동맹과 관련된 안보 이슈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결국 미·중 패권전쟁에서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이 더 전략적으로 유용한지가 미국 입장을 결정할 것이란 얘기다.



▲ 美, 중재 요청한 우리 정부에 "군사동맹 흔들지 말라" 경고



미국 정부 인사들은 한·일 갈등 대응을 위해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우리 외교부 대표단에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경제 분야 갈등으로 어떤 경우에도 안보 분야가 교차오염 돼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사실상 경고다.



이 같은 미국의 접근법은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미국이 중재에 나설 경우 일본 손을 잡고 우리 앞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이 당장 중재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지난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일본의 대(對) 한국 추가보복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중재 요청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7일 우리측 외교당국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원론적 차원의 지원에 대한 언급만 있었다.



스틸웰 차관보는 앞서 12일 일본 방문 당시 NHK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양측이 북한 등 이 지역 핵심 이슈에 초점을 맟추도록 권장하는 것 외에 '중재나 관여'를 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현재 입장이다.



▲ 누가 전략적으로 더 유용한가···일본에 기운 미국 속내



미국이 최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면 군사 동맹의 관점에서 한·일을 보는 미국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미국은 이 보고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미국과 동맹국 물동량의 60%가 지나는 핵심 지역으로 강조했다. 이 지역의 패권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면서 적성국과 동맹국, 그리고 전략적 파트너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중국은 '수정주의 세력(Revisionist Power)'으로 묘사했다. 자유무역주의 질서를 파괴할 적성국임을 분명히한 것이다. 중국의 장기 목표는 세계 패권, 단기 목표는 인도·태평양 지역 패권으로 정의했다. 북한은 아예 '깡패 국가(Rogue State)'로 표기했다.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십을 십분 활용해 자유무역주의 경제질서의 승리(win)를 쟁취하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한·미·일 동맹은 이 같은 목적에 필수 요소로 명시됐다.



두 국가에 대한 표현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을 위한 초석(Cornerstone)이라고 추켜 세웠다. 일본도 2018년 방위백서에서 미국과 똑같은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일간에 전략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핵심(Linchpin)이라는 표현은 유지했다. 하지만 그 이상 설명은 없다. 북핵 문제와 미·중 무역전쟁을 놓고 드러난 한·미간 미묘한 시각차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발간된 '2019 주한미군 전략 다이제스트'에서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보고서엔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을 때 '일본을 통해(through Japan)' 전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돼 있다. 한반도 전쟁시 자위대가 상륙하는 것은 아니라며 주한미군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어떤 식으로든 일본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속내가 확인된 셈이다. 스틸웰 차관보 방일 당시 미국은 일본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도 건의했다.



▲ 아베노믹스인가 J노믹스인가···트럼프의 관점은?



미국은 심각한 수준의 재정·무역 적자를 1984년 프라자합의를 통해 해소하면서 브레튼우즈 제체 하에서의 달러 패권을 유지했다. 인위적 엔화절상을 통해 일본을 30년 장기침체에 빠트린 것이다.



이런 미국이 '엔저'를 골자로 한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묵인하는 것도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란 시각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을 키워 중국을 견제하는 이이제이 전략이란 의미다. 2016년 당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엔저를 비판하면서도 아베노믹스를 견제하는 액션은 없었다.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서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석유자급에 성공하면서 세계무역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트럼프 집권 후 재무부는 양적확대의 철회를 공식화 했지만 트럼프의 입김에 사실상 약달러 정책으로 선회했다. 위안화 절상을 골자로한 화폐전쟁에서도 트럼프와 아베가 커플 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오바마 전 행정부의 묵인과 트럼프 행정부의 방관 속에 일본 경제는 프라자 합의 이후 최장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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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쓰면서...


다음 중 어떤 경우 싸움이 가장 커질까.

한쪽이 옳을 때. 두쪽 다 틀릴 때. 양쪽 모두 옳을 때.

십중팔구 세번째의 경우 갈등이 커진다. 양쪽 모두 물러설 이유가 없어서다. 각자 자기는 옳지만 상대는 틀렸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경우가 생기는 건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서로 달라서다. 살다보면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사람을 종종 만난다. 갑은 도적적으로 올고 그름으로 사안을 재단하고, 을은손익을 우선순위로 한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되는 건 갑의 입장에선 을이 비도덕적이어서고 을의 입장에선 갑의 주장대로 할 경우 자신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병이 중재에 나선다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중재의 결과는 병의 성향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병이 친구인가, 선생님인가. 직장동료인가, 상사인가, 법원인가 등에 따라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 갑을병이 국가라면 어떨까.


최근 한일 갈등이 심화되는 건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가 사안을 대하는 접근법이 달라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국 정부 입장에서 이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정치적 문제다. 정권 연장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없을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원칙론적 관점에 본다. 국가간 합의가 개인의 배상 문제를 해소한 게 아니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건 원칙에는 부합한다. 피해자 개개인의 신원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아베 정부에 원칙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일면 속이 시원해보일 수도 있다. 이같은 문재인 정부의 의도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아베 정부의 관점은 경제적 손익인 듯 하다. 물론 아베 정부 입장에선 국가간 합의가 개인 배상 문제까지 해소했다는 게 원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이를 빌미로 경제보복 카드를 내밀면서 스스로 관점을 드러냈다. 일각에선 한국의 반도체 산업,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갈등이 심화하자 우리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쪽으로 눈을 돌린다. 미국 정부가 나서 중재를 했으면 하는 게 정부의 바람이다. 트럼프가 이 사안을 '국가간 합의가 개인 배상 문제를 해소했는가'란 원칙론으로 접근한다면 문제의 해결결은 생각보다 간단해질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국제사회는 정글이다. 홉스의 말대로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전쟁터다. 정글엔 힘없는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히는 먹이사슬만이 존재한다. 그 사슬들 어디에도 도덕이 자리하할 곳은 없다. 어린 누우를 잡아먹는 게 도적적으로 옳지 않다고 사자에게 굶으라고 할 수 있는가. 배가 고프면 어미 누우 앞에서 어린 누우의 연한 내장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게 사자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유전자의 영속적 대물림에 최적화된 생존 기계로 진화했다. 찰스 다윈의 관점에서 여왕벌에 대한 일벌의 희생정신, 즉 이타심은 다른집단에 비해 생존에 유리해지려는 집단적 이기심의 부속물일 뿐이다.


정치는 궁극의 사회적 행위지만 철저하게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다윈의 진화론은 기린의 목이 먹이를 따먹기 좋게 길어졌다는 게 아니다. 목이 긴 기린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 세대가 거듭될 수록 목이 긴 개체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와 다윈의 진화론을 정치에 대입하면 정부는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 역할에 최적화된 정부만이 선택되고 살아남는다.


정치학자 파슨스의 생각을 요약하면 정치란 지극히 이기적인 권력욕을 이타심이란 명분으로 포장하는 기술이다. 그 것이 밀림의 왕 사자와 사람이 다른 점이다.


트럼프는 정치적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는 권력의 연장에 최적화되고 그래서 선택된 정치적 개체다.


이같은 트럼프른 내 편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베는 틀리고 내가 옳으니 정의의 사도가 돼 달라고 요청하면 우리편이 되줄까.


한일 갈등이 심화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위의 칼럼을 썼다. 이런 경우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렛대를 찾아야 한다. 그 답을 찾는 시선은 우리의 관심이 아니라 트럼프의 그 것을 향해야 한다. 정치적 중재의 문제에서 해답은 십중팔구 정의의 상자 속에 있지 않다. 무엇이 트럼프의 정권 연장에 유리한지를 가장 먼저 따져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우리에게 그럴만한 카드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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