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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시사소설] 리버스
​- 남과 북이 뒤집힌다

1장: 노조위원장의 죽음(1/5)...발목이 잘린 시체

by 김창익


# 밤새 비가 내렸다. 여명이 트기 직전 군자차량기지 경정비창고 무채색 콘크리트 벽이 유난히 선명하다. 비 맞은 콘크리트는 낮에 품었던 온기를 밤새 내뿜는다. 그 사이를 풀 비린내가 뚫고 들어온다. 경정비고에서 구내로 이어지는 선로 곁에 시체 하나가 널부러져 있다. 복숭아뼈 아래가 열차 바퀴에 깔려 떨어져 나갔다. 열차는 선로 위를 미끄러져 가다 닫혀진 경정비고 셔터를 들이받고 멈춰섰다. 셔터는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경정비고 바깥 쪽으로 툭 튀어 나왔다. 그 충격에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주위에 후둑투둑 떨어져 있다.

지정선이라고 노조위원장입니다. 나이는 47세. 관할서인 성수경찰서 박경수 경사가 출동한 지수대 이테라 팀장에게 브리핑을 한다.


전문가 솜씨에요. 시체를 유심히 관찰하던 이테라 팀장이 말했다.


전문가요? 박 경사는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목뼈를 단번에 비틀어 즉사시켰어요. 일반인이 아니라는 뜻이죠.


얼굴을 땅 쪽으로 묻어둔 것은 죄책감을 느꼈다는 뜻이에요. 원한 관계는 아닐 꺼에요. 지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커요. 동정심을 느낀 것은 사이코패스는 아니란 거고, 망자에 대한 예우의 행동을 보인 것으로 보아 소시오패스도 아닙니다.


잠깐 사이 이렇게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니. 박 경사는 놀랐으면서 짐짓 내색을 하지 않았다. 딸 벌의 풋내기 여팀장에게 20년 베테랑 형사의 자존심을 구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딱 보니까 그렇네. 박 경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어색한 맞장구 정도다.


그런데 저 남자는 누구죠?


이 팀장의 눈에 들어온 수갑을 찬 한 남자. 몇가닥 남지 않은 머리는 피와 범벅이 돼 떡이 졌다. 툭 튀어나온 눈두덩이 형광등 아래 그림자를 만들어 눈주위가 해골처럼 쾡해 보인다. 깍 마른 체구에 광대뼈가 유난히 돌출돼 예민하고 고집센 인상을 풍긴다. 두 개의 대문이가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게 마치 늙은 쥐 한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이테라는 생각했다. 눈동자는 초점이 풀려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지정선 옆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시체 옆에요?


네. 구노라고 경정비 담당 임시직원입니다. 술을 어찌나 마신 건지 냄새가... 순간 코를 막는 박 경사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넋이 나가 횡설수설 합니다.


시체 옆에 쓰러져 있던 만취한 남자. 누가 봐도 유력한 용의자다. 하지만 현장이 귀띔해주는 범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이테라는 생각했다.


박 경사님. 노트북 가방을 멘 한 남자가 다가온다.


주 기자는 그렇게 일이 없어? 일개 살인사건에 뭐 쓸게 있다고. 근데 여긴 또 어떻게 안거야? 박 경사의 미간이 좁아진다.


일개 살인사건에 지수대가 떠요? 지하철공사 노조위원장이 지능범죄와 무슨 상관일까요? 일인 인터넷 매체 음모닷컴 주승우 기자의 눈빛이 순간 빛난다.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지능범죄수사대는 금융사기 등의 지능범죄나 공직자 비리 등을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기관이 아닌가.


어 잠깐만요. 옆에 있던 이 팀장이 돌아서 가려는 찰나 주 기자가 그의 어깨를 잡는다. 순간 주 기자의 팔을 비트는 이테라.


이거 참. 인사하기는 좀 애매한 자세이긴 합니다만 주승우기자라고 합니다.


기자라고 사건현장에 이렇게 불쑥 들어오면 안되는 거 아실텐데요? 기자란 사실을 알고도 이 팀장은 주 기자의 팔을 놓지 않는다. 주승우는 상당한 악력을 느꼈다.


셈통이다. 박 경사가 몸을 낮춰 주승우와 눈을 맞추며 놀린다. 내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헤헤. 주승우의 집요한 취재 때문에 여러번 곤란을 겪었던 박 경사다.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이런 사건현장에서 말입니다. 피가 쏠려 주승우의 얼굴이 벌겋다.


아직 정신을 못차린 모양인데 좀더 세게 비트세요 이 팀장님. 그제서야 비튼 팔을 놓는 이테라.


끙. 자존심이 상한 주승우가 아픈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뱉는다.


주승우라고 합니다. 명함을 건넨다.


제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군요. 무시하고 돌아서는 이테라.


제 뭡니까? 성큼 멀어져가는 이테라의 뒤에서 주승우가 박 경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겸연쩍어 한다.


주 기자 이제 임자 만났네. 놀리 듯 혀를 내미는 박 경사.



# 성동경찰서 취조실. 어둠과 정적이 깔린 이 곳에서는 천정에서 내려오는 형광등 불빛만이 구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다. 피범벅이 돼 헝클어진 머리와 숙취에 더욱 부풀어 오른눈두덩, 돌출된 광대뼈가 백열등불 아래서 음영을 만들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을 꿈먹거리는 구노.


이름.


...


이름요.


구노입니다.


나이.


...


몇살이에요?


44입니다.


주소.


서울 동작구 상도2동 127-1.


가족관계.


어머니와 딸.


구노씨 말이 짧아요. 박 경사가 노려보며 말한다.


오는 게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거 아니겠소. 뜻 밖의 반응에 박 경사가 겸연쩍은 듯 미러를 바라본다. 미러 너머에서 취조 장면을 지켜보던 이테라 팀장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


저 거 미친놈 아닙니까. 육중환 형사는 당장이라도 취조실에 들어가 한대 내려칠 기세다.


자신은 결백하다고 항변하는 거죠.


육중환이 이테라 팀장과 취조실을 번갈아 쳐다보며 머기를 긁적인다.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지정선의 시체는 가해자가 살인기술을 배운 전문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지금 취조실엔 술에 취해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외소한 정비공이 앉아 있다.


구노씨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지정선 노조위원장을 살해했습니까? 박 경사의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된다.


모르겠습니다.


지금 장난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박 경사.


죽이고 싶었습니다. 제가 죽였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죽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원한에 의한 보복살인. 딱 그림이 나오는 데 무슨 헛소리야.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백색 타일 위에 스테인레스 스틸 부검대의 금속성이 더해진 부검실 분위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얽힌 각각의 사연 따위는 놓여질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날카로운 메스가 지나간 자리는 사건의 진실과 거짓이 정확히 베어져 분리될 것 같다. 부검대 위에 놓여진 지정선 위원장의 시체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목뼈가 비틀려 목이 퉁퉁 부어있고 열차 바퀴가 지나가면서 그의 왼쪽 발목 아래를 지워버렸다.


팀장이 여기까지 직접 오고 그래. 윤경이는 잘 지내지? 이모 친구인 한송희 박사는 이테라 팀장에겐 삶의 이정표같은 존재다. 카톨릭 의대를 수석 졸업한 그녀는 출세가 보장된 대학병원 자리를 박차고 연구원에 지망했다.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따분한 진료실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그는 이테라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닮았다고 예뻐했다. 178cm의 큰 키에 고등학교 때까지 배구선수를 해 웬만한 남자는 힘으로도 그를 당할 수 없었다.


이모도 볼 겸. 건상이도 잘 지내지? TV에서 보니까 그 녀석 농구 말고 영화배우 하는 게 낫겠던데. 이모부 닮아서 그런가 DNA가 스페니쉬해.


하여간 말은. 건상이는 나도 얼굴보기 힘들어. 언제 만나거든 안부좀 전해줘라. 엄마 아빠는 서울

하늘아래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얼굴보기 힘들어?


서장훈 기록 깨겠다고 난리야. 연대 농구부 명예의 전당에 기필코 자기 이름 석자를 새기겠다나 어쨌다나. 오피스텔 현관문 비밀번호도 1215에요. 승부욕 센건 나 말고 테라 너 닮은 거 같다. DNA가 아주 테라급이에요. 서장훈은 통산 1215득점으로 KBL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다.


하여간. 이모는 부검의 말고 작가가 됐어야 해. 말솜씨는 영락없는 노벨상감인데 말야 헤헤. 간만에 부담없이 농을 치는 게 이테라는 좋았다.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동료들은 언제나 지나치게 진지했다.


이쯤 해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한 박사가 최면에서 깨어날 시간을 알리듯 손뼉을 치며 말한다.


어? 어....그 순간 이테라도 자신이 그 곳에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직접적인 사인은 경추 골절이야 4번과 5번 경추가 부러지면서 즉사했어,


역시 전문가겠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의 솜씨로 보기 어려운 건 확실해. 물론 요새는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방법은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만 그 것을 정확히 실행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이미 발목이 절단 된 상태에서 죽은 자가 100% 힘을 써서 저항하기 힘들었다는 점도 감안을 해야해. 저 정도면 이미 패닉이었을꺼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을 수도 있어? 출혈이나 쇼크로?


가능성은 있는데 그랬다면 경추의 비틀어진 정도가 더 심했을꺼야. 근육의 저항이 없었을 테니까.


발목이 절단돼 기어가는 사람을 뒤에서 목을 비틀어 즉사시켰다는 거네.


보통 사람였다면 힘들었을꺼야.


선명해 보였던 사건은 잿더미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바람에 흩날려 버렸다. 수사대로 돌아온 이테라 팀장은 구노의 프로필과 진술서를 번갈아가며 여러번 확인했다.


육 형사님.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은 분명 세 개죠?


정신없이 자장면을 입속에 붓고 있던 육 형사가 부랴부랴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으로 입 주변에 묻은 자장을 쓱 닦으며 이테라 팀장에게 다가온다.


네. 죽은 지정선 위원장 시체 주변에서 발견된 족적 중 전날밤 것으로 보이는 것은 세 개 정도였습니다. 지 원장의 구두, 구노의 작업화는 확인했구요. 나머지 하나도 작업화인데 그날밤 구노와 함께 술을 마셨던 김정택 있죠. 그 자의 것입니다. 작업화 사이즈가 일치합니다.


그날 밤 사건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죽은 지정선과 구노, 구노와 술을 마신 김정택 세사람 뿐인데 지정선은 죽었고 김정택은 초저녁에 경정비고를 나오는 게 CCTV로 확인이 된 상황이었다. 정황은 범인으로 구노를 지목하고 있지만 군대 면제자인 구노가 전문가의 솜씨로 지정선의 목을 비틀어

죽였다고 보기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부양가족이 있다는 것만 갖고도 군대 면제 사유가 되나요?


구노의 경우는 그랬을 겁니다. 장애가 있는 홀어머니를 부양할 사람이 있었어야 하니까요. 육중환 형사와 같이 자장면을 먹고 있던 조수영 순경이 다가오며 말한다.


장애?


네. 어머니 다리가 불편한 상황입니다. 병무청 기록을 확인해 봤는데 구노는 이유가 더 있습니다.


이유가 더?


네. 기면증 5급이에요. 정신질환 병력도 있구요.


수영이 언제 이런 것들을 알아봤냐? 기특한데. 육중환 경장이 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아 쫌. 머리 만지지 마세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순하기만 해 보이는 수영이 발끈하자 민망해하는 육중환.


네가 어린애가 아니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육중환은 손에 자장이 묻은 채로 수영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육중환의 무신경에 고개를 떨구고야 마는 수영.


기면증이면 수면장애?


네. 지금도 관련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질환은?


정확한 건 더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 육 형사님 수영이와 관련해서 좀 알아봐 주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군대도 안갔다 온 삐리리 한 놈이었어? 남자면 해병대지. 안그래 수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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