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패가 되는 글쓰기] 살아남았다고 안도할 때

- 동전 몇푼에 우리는 콜롯세움의 벽을 넘자는 생각을 하루하루 망각한다

by 김창익
조커의 경고.jpg




칼럼을 쓰면서...




우헤헤. 이히히.


런닝셔트와 팬티 차림의 니 국장. 쇼파에 누워 뉴스를 보고 있다. 앵커는 올해 GDP성장률이 2%를 밑돌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말하고 있다. 코를 쑤시던 검지손가락을 팬티속에 넣고 사타구니를 벅벅긁는다. 그 손가락을 다시 콧구멍에 넣고 냄새를 맡는다. 역겨운지 얼굴을 찡그린다.


우헤헤헤헤... 뉴스에선 경제성장률 하향곡선을 클로즈업 하고 있다.


빌릴릴릴리...


회장의 번호였다. 니 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거절 버튼으로 가던 검지손가락이 결국 녹색 버튼을 터치한다.


네 회장님. 니 국장은 몸을 일으켜 정자세로 앉는다. 몸에 베인 습관은 적대감조차 무기력하게 만든다.


니 국장. 나야 나.


네 회장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그냥 뭐... 회장님 덕분에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사람. 말 모양새가 그 게...


제 말투야 뭐. 원래...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입이 뾰족 나온다.


니, 많이 서운했지. 내가 니 마음 왜 모르겠나.


니 국장은 뜻밖의 회장 말에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니 국장은 검지손가락을 무심코 다시 콧구멍에 넣는다.


니, 내일 혹시 점심 약속 있나?




약속 장소는 강남역 사거리 인근 추탕집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본격 시작됐다. 달궈진 아스팔트가 시야를 흐렸다. 점심 시간에 맞춰 쏟아져 나온 화이트칼라들 사이로 니 국장은 몸을 숨겼다. 혹시나 후배들에게 자신의 출현을 들켜선 안될 일이었다. 낡은 구옥으로 들어서자 세게 튼 에어컨 바람에 땀이 금새 씻겼다. 젖은 겨드랑이를 날개짓으로 말렸다. 사타구니를 벌려 바지를 먹은 엉덩이 사이에 맺힌 땀도 에어컨 바람에 닿게 했다.


홀 한가운데 앉은 노신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회장이다.


놀란 니 국장은 풀었던 넥타이를 조이고 총총걸음으로 회장이 앉은 테이블로 튀어갔다.


덥지?


회장의 말에 니 국장은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떠올렸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의자를 잡아당겨 앉았다.


얼굴이 조금 상했군 그래.


니 국장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만졌다. 쏙 들어간 볼을 혓바닥으로 밀어본다.


왜 안그랬겠어. 마음이 상하면 몸이 상하는 법이지.


병주고 석달만에 약이라도 주겠다는 심산인가. 이 노인네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건가. 니 국장은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일단 주문하지.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겠나. 회장은 홀아주머니를 불러 김치찌개 2인분을 시켰다.


라면사리도 하나 주시구요. 회장은 마치 선심을 쓰듯 호방하게 사리를 시켰다.


횟집이라도 갈까 했는데, 더운날에 역시 뜨거운 김치찌개가 제격 아니겠나. 땀 한바가지 흘리고 나면 더위도 싹 증발해버리는 법이거든. 니와 내가 격식을 차릴 사이도 아니고.


그럼요. 그럼요. 김치찌개 좋죠. 저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한국사람이야 뭐니뭐니 해도... 명색이 잡지사 사주란 사람이 자기가 자른 국장을 밥먹자고 불러서는 라면사리 넣은 김치찌개가 왠 말인가. 속으론 그렇게 생각했다.


숭숭 썰어넣은 돼지고기가 쫀득하게 씹힐 때 쯤 회장은 이미 찌개를 서너 접시쯤 떠 먹었다.


니 국장. 나지막한 목소리가 훅하고 니 국장의 귓속에 들어왔다. 혹시 회장이 자신이 기대하는 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니 국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다시 편집국을 맡아주게.


이야호. 니 국장은 하마터면 쾌재를 부를 뻔 했다. 울분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지난 석달간의 밤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매일밤 들이킨 깡소주 냄새가 지금 이 순간에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말은 아꼈지만 쓱 올라가는 입꼬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희미했던 안광이 번쩍 하고 빛났다.


개처럼 내칠 땐 언제고 이제와서... 혼잣말처럼 속마음을 흘렸다.


니 국장. 내가 사과한다. 따지고 보면 니나 내나 킨 사장에게 당한 거 아니겠나. 회장은 실눈으로 니 국장의 반응을 살폈다. 킨 사장을 언급할 때 니 국장은 분명 움찔했다. 동요였다.





석달 전.


명품부 매출이 왜 이래. 6월 매출회의에서 회장은 명품부 매출이 하향곡선을 그린 것을 보고 대노했다. 명품부 매출이 왜 이러냐구. 회장은 광고국 고 부장의 보고서를 집어던졌다.


고 부장. 뭐해요. 회장님께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해야할 게 아닙니까. 상사라고 감싸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회장님이 당연히 아셔야할 일입니다. 킨 사장이 안경 너머로 고 부장을 쏘아봤다. 입장이 난처해진 고 부장은 회장과 킨 사장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식은땀을 흘릴 뿐이다.


킨 사장님 얘기가 무슨 뜻이야?


...


킨 사장님 얘기가 무슨 말이냐고 묻잖아. 회장은 탁자위에 늘어놓은 경쟁지들을 모조리 고 부장의 면전에 집어던졌다. 제법 두꺼운 잡지는 묵직하게 고 부장의 얼굴을 차례로 가격했다.


회장님 그 게...


고 부장.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세요. 어렵게 입을 연 고 부장을 부추기는 킨 사장의 눈초리가 매섭다.


니 국장께서 명품부 매출을 온라인 부문 매출로 기장을 하라고 하셔서... 말끝을 흐리는 고 부장의 이마엔 송이송이 땀방울이 맺혔다.


뭐가 어째? 그럼 어제 니 국장이 보고한 매출이 그거야?


네...






임기를 석달 남긴 지난 3월 니 국장은 돌연 온라인 부문 대표로 발령이 났다. 니 국장의 건강이 악화돼 편집국을 계속 맡기엔 무리가 있고, 온라인 컨텐츠를 강화한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사실상 사퇴수순이었다. 온라인 부문 매출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영업 능력이 없는 니 국장을 대표로 앉힌 회장의 속내를 눈치 빠른 니 국장도 모를 리 없었다. 니 국장은 명품부 부장을 불렀다. 차장 1년 만에 부장으로 발령을 냈던 자기 사람이다. 명품부 부장은 니 국장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이례적 승진인사의 수혜를 갚으라는 얘기였다.


두달째 명품부 매출이 온라인 부문으로 빠져나가자 킨 사장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편집국 매출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킨 사장은 니 국장이 자신의 실적을 가로채는 셈이었다.



고 부장에게 4월 매출 실적을 받아본 킨 사장은 사태를 발로잡기로 마음먹었다. 고 부장 좀 내 방으로 오라고 해요. 비서를 불러 고 부장을 호출했다.


고 부장.


네. 사장님. 고 부장은 정면으로 킨 사장을 쳐다볼 수 없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갔다. 흘러내린 안경 너머로 날아오는 킨 사장의 시선이 따가웠다.


니 국장이 요즘 무척 힘이 드나 봐요. 후루룩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킨 사장은 안경 너머 요렇게 고 부장을 노려봤다.


아무래도... 고 부장은 말끝을 흐렸다. 줄을 잘 서야 할 때란 걸 고 부장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럴 땐 자기 생각은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참 입장이 난처해요. 니 국장의 입장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킨 사장의 시선은 여전히 안경 너머로 날아와 고 부장의 얼굴에 꽂혔다.


... 말 끝을 흐리는 것 외에 고 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게 상책이었다.


그렇다고 공사구분을 흐릴 수도 없고 말이에요. 고 부장도 알 듯이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잖아요. 안그래요?


네. 사장님. 고 부장의 디딤발이 드디어 킨 사장에게로 넘어갔다. 이빨빠진 호랑이였지만, 어찌됐든 현재 편집국을 맡고 있는 건 킨 사장이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이 문제를 회장님께 보고 안드릴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안그래요? 킨 사장은 말끝마다 고 부장의 동의를 구했다. 그랬다기 보다는 동의를 강요했다.


네. 회장님도 아실 건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고 부장 생각도 나와 같군요.


네. 사장님. 그렇습니다. 어차피 선을 넘었다. 이젠 다른 줄을 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매출은 광고국 소관사항이니. 매출회의 때 고 부장이 회장님께 사실을 보고하세요.


제...가 말인가요. 월말 매출보고는 줄곧 사장님께서...


물론 그런데. 내가 지금은 국장을 대행하고 있는 것이니 컨텐츠에 좀더 집중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 고 부장도 잘 알잖아요. 당분간 매출 보고는 고 부장이 알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개새끼. 고 부장은 사장실을 나오며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뱉었다.




회장과 점심을 먹고 돌아온 니 국장은 아파트 현관 앞에서 줄담배를 태웠다. 회장에 제안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회장은 복귀와 함께 사장 승진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자신이 사장으로 편집국에 돌아간다는 건, 킨 사장이 그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물먹인 킨 사장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였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회장의 속내였다. 영업에 소질이 없는 자신을 회장은 왜 다시 불러들이려는 것일까. 킨 사장이 편집국을 맡은 이후로도 매출이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고 부장에게 전해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컴백이 밑으로만 곤두박질 치는 매출 곡선을 위로 돌려 세울 카드는 아니었다. 그 건 니 국장 스스로보다, 회장이 더 잘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니 국장의 발끝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였다. 툭하고 꽁초 하나가 또 떨어졌다.




니 국장이 회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된 킨 사장의 얼굴은 구겨놓은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고 부장의 보고가 화근이 됐지만 그 뒤에 킨 사장이 있다는 사실을 니 국장이 모를 리 만무했다. 잡지사에 사장이 둘 일 수는 없었다. 다시말해 니 국장은 자신의 자리로 오는 것이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것인가. 웃는 얼굴로 바통을 이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럴만큼 얼굴이 두꺼운 편도 사실 못됐다. 두꺼운 상꺼풀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다음날 아침. 편집회의에 들어서는 킨 사장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게 잠을 한 숨도 못잔 티가 역력했다. 


내가 대행을 하긴 했지만 그 동안 공석이었던 편집국장이 곧 오실겁니다. 그 게 누구인지 알 턱이 없는 부장들은 서로 옆자리를 보면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희소식을 전하는 킨 사장의 깊은 한숨 또한 데스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맹 부국장.


네. 사장님.


오늘 내가 오후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 반차를 내니, 마감은 맹 부국장이 책임지고 해줘.


알겠습니다.






그날 오후. 편집국엔 홍보담당 임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송 부장님, 킨 사장님 회사 그만 두셨어요?


그 게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지금 여기 한강시대 창간기념식인데, 킨 사장이 축사를 하시네. 한강시대하고 그 쪽하고 관계가 있는건가?


관계는 무슨 관계. 예전에 여기 부국장 하던 양반이 그쪽 국장으로 가기는 했지.


그래 그 양반도 있더라구. 근데 이상하네.


뭐가 또 이상해요?


사회자가 킨 사장을 한강시대 대표라고 소개를 하더라구.


말도 안되지. 잘 못 들은걸 꺼야.


나만 들었나. 여기 온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오후 내내 킨 사장의 거취를 묻는 전화가 잡지사에 쇄도했다.






프랑스 출장을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킨 사장의 소식을 치라시로 접한 회장은 인사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 국장 사장인사 발령 사고 붙이고, 지금 당장 기사 띄워.


사냥을 마쳤으니 이제 개만 삶으면 되겠구만. 굼뱅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지. 제까짓게 나를 한방 먹이고 나가는구만. 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두 달 뒤. 니 국장에 관한 이야기가 증권가 치라시를 타고 퍼졌다. 니 국장이 후배 매출을 자신의 실적으로 가로챘고 그로 인해 사실상 회사를 쫒겨나듯 그만 두었었다는 점. 니 국장이 갑작스럽게 대표로 복귀하면서 킨 사장이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었다는 점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회장은 니 국장을 호출했다.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이상 니 대표가 스스로 용단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인사 조치를 내리면 모양새가 좋지 않잖아요. 안그래요?


니 국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하려고 저를 부르신 겁니까.


니 대표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세요?


니국장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를 위해 용퇴한 것으로 정리를 하는 좋지 않겠어요?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 다른 데서 불러줄 리도 없고. 마지막이 비리로 얼룩진 잡지 편집인이면 되겠어요? 애들 결혼 문제도 있잖아요. 다 니 대표님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자자. 시간 끌 것 없이 내 말대로 정리를 해요. 장고 해봤자 악수 밖에 더 두겠어요.


니국장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토요일에 나와 박스 하나에 비품을 정리해 회사를 떠났다.





차 실장.


네 회장님.


정보지 업체 입단속 잘했지?


물론입니다.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 끝.



우리는 모두 검투사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오늘 승리했다는 건 내일 죽는다는 의미다. 승리의 대가로 받은 금화와 포도주, 하룻밤 쾌락은 칼로 베인 상처를 잠시 잊게 만든다. 내일 굶지 않으려면 또 검투장에 나서야 한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검투장에서 우리는 매일 죽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귀족들은 검투사들의 비극을 즐긴다. 그들의 함성과 황제의 손가락 하나에 패자의 생사가 결정된다. 황제는 목숨을 건 싸움의 대가로 검투사에게 금화 몇전과 포도주, 하룻밤 여자를 던져 주고 입장수입으로 얻은 금화상자를 창고에 쌓아둔다. 귀족들은 정쟁과 전쟁의 피로를 두동강이 난 검투사들을 보며 함성속에 날린다.


벽 하나의 높이가 검투사와 귀족의 삶을 가른다. 벽 하나를 넘으면 되는 데 검투사들은 평생 그 선 하나를 넘지 못한다. 하루 승리로 받은 금화 몇전과 포도주, 하룻밤 여자에 취해 우리는 벽을 넘자는 생각조차 하루하루 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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