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패가 되는 글쓰기] 앞사람 엉덩이만 보일 때

- 세상에 하나 뿐인 나에 대한 배신

by 김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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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쓰면서...



너는 아직 때가 아닌데, 어찌하여 이 곳에 왔느냐? 지옥의 문 앞에서 판사가 물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땅바닥에 고개를 떨구었다.


죄를 아는 것을 보니 교만하지는 않구나. 하지만 자살은 일곱번째 구렁텅이에 빠뜨릴 만한 중죄인 것을 아는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곳으로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저의 죄는 하느님이 주신 삶의 기회를 스스로 끊어버린 것보다 더 크고 무겁습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스스로 엄벌을 청하는 것이냐.


그는 신을 배신하였나이다. 검사가 나섰다.


신을 배신했다?


그러사옵니다. 그는 앞선 자의 엉덩이만 보고 평생을 달려왔나이다.


앞선 자의 엉덩이만 보았다? 그 건 또 무슨 말인가?


그는 사실 하느님이 가장 아름다운 색을 주신 선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니. 그리 귀한 자가 어찌 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냐. 판사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됐다. 그런데 지금 그의 색은 희지도 검지도 않다. 이 또한 어찌된 일이냐?


그는 평생 다른 이의 색을 탐했습니다.


스타트업으로 크게 성공한 친구를 보고 벤처기업을 차렸습니다.


성공했느냐?


실패했습니다.


셰프가 유행을 하자, 이태리로 파스타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성공했느냐?


실패했습니다. 차이나타운에 파스타집을 차렸습니다.


강남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10억원을 빚내 대치동에 아파트를 샀습니다.


성공했느냐?


5억원이 폭락하자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친구에게 집을 팔았나이다.


그 친구도 손해를 본 것이냐.

지금은 그 아파트 가격이 18억원이라고 합니다.


실패한 것이구나.


그러사옵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자, 지금은 노래를 배우고 있습니다.


노래는 곧잘 부르는 가 보구나.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성공할 수 있는 데 왜 자살을 한 것이냐.


그의 나이 올해로 50이옵니다.


검사의 말을 들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임구나.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한심하게 살았는가?


저의 색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했나이다.


거무죽죽해서 저 자의 색을 알 수가 없구나. 저 자의 예전 모습을 보여라.


판사 앞에 죄인의 어린시절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그는 팔색조의 모습으로 휘황찬란하게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500년을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색을 지닌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냐. 판사는 혀끝을 찾다. 분노보다 연민이 앞섰다.


말씀드린 대로 평생을 앞선 이의 엉덩이만 보고 달렸나이다.


내 이제 전말을 알았으니 검사는 구형하라.


자살과 배신은 중죄 중의 중죄니 지옥의 아홉번째 구렁텅이로 보내야 마땅합니다.


죄인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검사님이 구형하신 대로 저를 크게 벌하소서. 제 삶을 허송한 죄를 반성하고 깨끗이 닦아 내겠나이다.


선고한다. 죄인은 비록 자살과 신에 대한 배신이란 중죄를 저질렀으나, 평생 근면하게 일하고 달려온 점을 감안해 3년을 연옥에서 보낼 시간을 주노라. 그 곳에서 제 색을 찾으면 천국에 보낼 것이나 그 곳에서도 앞선 이의 엉덩이만 보고 계단을 오른다면 지옥의 아홉번째 구덩이에 영원히 파묻을 것이다.


- 끝.


2년전 IT부장을 맡고 부랴부랴 서점에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이른바 IT 관련 기사를 다루는 사람이 4차산업 혁명이 무엇인지, 블록체인이 어떤 세계인지, 코딩이란 게 왜 이리 세간의 화제가 되는 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서둘러 약속을 잡고 관련 전문가들도 만났다.


서너달이 지나 장님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어폄풋이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알게됐다. 그 무렵 문뜩 깨닫게 된 것이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4차산업혁명과 블록체인은 그 개념 정도만 알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드론이나 AI, 자율주행차나 플라잉카를 만들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IT 부문을 담당하는 언론인으로서 내가 할 일은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미래가 좀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 수 있는 지를 고민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핵융합 반응을 발견한 건 아인슈타인이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건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언론은 기술이 악용되는 것을 막는 기능에 충실해야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행융합 반응의 원리를 밤세워 공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란 점을 비로소 깨달았다. 아인슈타인의 엉덩이를 보고 달려가봤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블록체인과 코딩 기술을 달달 외운 들 비트코인은 이미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게 아니던가.


그 때부터 아인슈타인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냄새나는 엉덩이에서 눈을 뗐다. 이후 시선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칸트와 헤겔, 공자와 맹자 등의 고전에 돌렸다. 집단지성도 위대한 데 현자들의 지혜를 모두 합친다면 지성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천년에 걸쳐 쌓여온 고전의 지혜속에 4차산업 혁명이 가져올 미래를 더 살기좋게 만드는 방법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래를 위해 과거로 눈길을 돌렸다. 아인슈타인과 사토시의 엉덩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신세계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곳엔 이미 엄청안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술을 고전과 연결해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재이 있는 작업이다.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답을 듣는 과정도 너무 재미있다.


예컨데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데카르트가 AI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한 경로를 걷는다. 일단 호기심을 갖는다. 질문이 의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생소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결국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도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십중팔구 데카르트를 안다. 주입식 교육의 위력이다. 심지어 그가 한 말도 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드물지만 이 말을 라틴어로 암기하는 사람도 있다. 'Cogito. Ergo sum'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당연히 이 말 한마디가 4차산업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창시절 공부를 어지간해 했다면 데카르트의 제1원리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날 것이다. 데카르트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만들었다. 내가 만지는 책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모르는데 세상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자신은 실존한다는 제1원칙을 만들고, 이에 부합하는 진실을 찾아 인식의 영역을 확장했다. 지금 봐도 상당히 어려운 말이다. 사실 이 게 무슨말인지 몰라도 된다.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하는 자신은 '영혼'을 말하는 것이란 포인트다. 육체는 자신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영혼 이외 모든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치부했다. 육신조차 그에겐 오브제일 뿐이다.


인간의 인식과 과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진화가 시작된 순간이다. 신의 섭리가 인식을 지배햇던 중세까지 인간의 몸은 신의 영역이었다. 절대 상하게 할 수 없는 불가침의 대상이다. 데카르트 이후 의학은 드디어 인간의 몸에 메스를 댔다. 영혼이 빠진 육신은 단순한 단백질과 지방의 덩어리일 뿐이었다. 근세철학의 시작이란 말은 인간의 몸과 인식을 신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의미다. 해부학으로 뇌과학이 발전하고, 그 것이 현재의 AI를 만들었다. 데카르트가 육신을 오브제로 반전시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기술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인식의 걸림돌은 지금도 많다.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리더들이 인식의 장애물을 걷어낼 정도의 인사이트가 없다면, 4차산업혁명과 블록체인 등의 신기술은 인류에게 또 다른 원자폭탄을 안길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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