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적이 있다면, 대안이 없다면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4차 산업혁명과 꼰대들]
정신은 물질보다 늦다. 문명이 바뀌어도 문화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매개가 되는 정신의 변화가 생각보다 더디어서다. 아노미, 즉 질서의 공백이 생기는 이유다.
꼰대는 늙은이나 선생님을 가리키는 신세대 은어다. 번데기의 방언 꼰데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완용처럼 일제강점기에 작위를 받은 친일파를 꽁떼(백작의 프랑스어)로 부른 게 기원이란 얘기도 있다.
늙은이나 선생님이라고 모두 꼰대는 아니다. 꼰대의 특징은 고착이다. 기성질서와 자기기준에 아스팔트 위의 습한 나뭇잎처럼 착 달라 붙어 있는 사람이다.
꼰대는 4차 산업혁명의 적이다. 혁명은 기존 문명과 질서의 파괴다. 새로운 것들로의 전환(Transformation)이다. 그것은 문명이 바뀌고, 생각이 변하고, 문화가 진화하는 순서를 밟는다.
꼰대는 아노미를 연장한다. 문명이 변했는데 생각이 고착됐다. 영화 데몰리션맨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주인공 스파르탄은 가상현실(VR) 섹스를 경멸한다. 그에게 섹스는 타액 교환이다. 생각이 동면 이전에 머물러 있다. 꼰대다.
행복 연구가로 유명한 구글 CBO(Chief Business Officer) 모 가댓은 "행복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Happiness is Feeling happy)"이라고 했다. 자극된 뇌가 받아들인 구체적인 결과다. 이 관점에서 행복의 근원이 가상이냐 현실이냐는 중요치 않다. 뇌가 그것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둘은 동일하다.
VR이건 현실이건 뇌는 똑같이 섹스로 느낀다. 팩트고 현실이다. 스파르탄의 생각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스파르탄은 과거에서 왔다. 동면에서 해동되는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에겐 먼 미래였다. VR 기기는 몰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더더군다나 미지다. 데몰리션맨은 수컷 냄새 충만한 마초가 아니라 부적응자였다.
스파르탄은 사랑을 즐기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VR 작동법을 배우거나 타액 교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꼰대는 말한다. “역시 섹스는 타액 교환”이라고.
기성질서에의 고착, 새로움에 대한 부정의 뿌리를 니체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했다. 강자에게 느끼는 질투·증오·시기심이다. 유대인이 나치에게 갖는 원망, 노숙자가 벤츠 탄 부자에게 느끼는 시기심이 니체의 관점에서는 같다. 스파르탄이 VR 섹스를 즐기는 여주인공에게 허세를 떤 것도 사실은 르상티망 때문이다. 르상티망의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다. 이솝우화 속 여우가 포도를 못 따고 어차피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자위하는 식이다.
니체는 르상티망에 순응해야 한다고 했다. 유대인에게 하느님의 천국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르상티망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다. 독일군은 야만인이고 지옥에 떨어질 불쌍한 민족이다. 유대인에게 종교는 소극적 복수란 게 니체의 생각이다.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힘을 키워 독일을 짓밟는 게 낫다는 것이다. 니체는 스파르탄에게 말했을 것이다.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VR기기 다루는 법을 배워"라고.
경영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최근 책 ‘철학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마케터들은 르상티망에 대한 순응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샤넬 백이 부러우면 백을 가진 친구를 속물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돈을 벌어 가방을 사라고 광고하란 얘기다.
인도보다 미국이 자본주의가 발전한 건 니체의 기준에서 보면 두 나라가 르상티망을 극복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뉴델리보다 실리콘밸리가 4차 산업혁명이 빨리 진행되는 이유도 설명된다. 제프 베이조스가 부러우면 아마존을 이겨야 한다는 게 미국식이다. 인도인은 내세로 회귀한다. 합장하고 천국을 생각한다.
꼰대는 르상티망을 부정한다. 권위있는 선배는 꼰대의 눈엔 다른 꼰대다. 부자 동료는 속물이고 잘난 후배는 시건방진 놈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칼럼에서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간접적으로 제시했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재미형 인간이나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의미형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실패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다른 도전이다. 미지의 세계는 헛디딜까봐 두려운 곳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선배·동료·후배를 뒷담화할 시간이 없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은 재미형 인간의 무대다. 고착형 인간, 즉 꼰대는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늦춘다. 그에게 최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김창익 window@ajunews.com
칼럼을 쓰면서...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됐을 때다.
교육열만큼은 남달랐던 아버지는 4남매 교육방송 시청을 명분으로 아남내쇼날 최고급 비디오 플레이어를 하나 장만했다. TV와 라디오 외엔 엔터테인먼트 장치가 거의 전무했었던 시절. 비디오는 구입 직후 단 서너번만 본연의 목적대로 쓰였다. 4남매는 비디오 가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세상엔 재미있는 영화가 무지하게 많았으니까.
아버지가 한번은 어디선가 패티킴 라이브 녹화 테이프를 하나 얻어오셨다. 책 읽고 정원 가꾸는 거 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분이라 상당히 의외의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이나 리모컨을 들고 진땀을 흘리셨다. 테이프를 집어놓고 플레이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었는데, 아버지에겐 그 일이 마치 비디오 플레이어를 만드는 일 만큼이나 어려웠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매번 아버지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틀 때 마다 리모컨을 한참동안 쳐다보기만 하고는 했다.
내가 그 때의 아버지 나이쯤 됐다.
LG유플러스 인터넷 가입자인 우리집은 언젠가부터 월 9900원인가를 내고 넷플릭스를 본다. 딸아이는 나를 닮았는지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불쌍하게도 그는 거의 매일을 수학과 영어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온다. 어떤 날은 내가 퇴근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보고싶을 때 영화를 보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유플러스 TV로 지나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해진 나는 가입 후 한참이 지나도록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보지 않았다. 언젠가 주말에 딸아이가 넷플릭스로 미드를 보는 데, 프로그램을 찾던 중 오리지널 메뉴에서 킹덤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주말 이틀동안 시리즈 하나를 몰아서 봐버렸다. 그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빠진 나는 넷플릭스를 틀 때 마다 리모컨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한다. 넷플릭스를 보려면 별도의 리모컨을 작동해야 하는 데, 그 작동 순서가 나는 지금도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하다보면 우연한 순간 넷플릭스가 작동돼 큰 문제는 없지만 그 때마다 리모컨을 한참 동안 들여다 봐야 한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아마도 리모컨은 나이 50세 이전의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하드웨어인가 보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넷플릭스를 작동하는 게 패티킴 비디오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어를 작동하는 것보다는 틀림업이 훨씬 더 복잡하다. 한 세대가 지나 김씨 가문에서도 진화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리모컨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볼 때 내가 너무나 쉽게 비디오 플레이러를 작동시킨 것처럼, 딸아이는 내가 넷플릭스를 보고 싶을 때 마다 리모컨을 단 몇초만에 눌러버린다. 심지어는 TV화면이나 리모컨 버튼을 보지 도 않고 자신의 아이폰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말이다. 다행히 진화는 내 다음 세대에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꼰대란 특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대안이 있는 세대다. 대부분 그 대안은 과거의 방법이다. 라디오 디제이가 틀어주는 대로 음악을 듣던 아버지에게 패티킴 라이브 공연 녹화 테이프는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족은 겨울철엔 거의 매일 김치찌개를 먹다, 크리스마스 이브 딱 하루 성심당에서 단팥빵과 햄버거를 먹었다.
나는 지금도 유플러스 영화 코너에서도 보지 못한 영화가 수두룩 하다. 그 것은 내게 익숙한 리모컨으로 쉽게 동작이 가능하다. 영화/TV 버튼을 누르고, 새로들어온 영화를 누른 다음 윈도우 프로그램처럼 바둑판 모양으로 뜬 영화 포스터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된다.
아남내쇼날 비디오플레이어로 조지 마이클 라이브 공연 테이프를 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말씀하시고는 했다. 페티킴 정도는 돼야 가수지라고 말이다. 그에게 조지 마이클이 부르는 케어리스 위스퍼나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소음에 불과했다.
넷플릭스로 가십걸 시리즈를 탐독하듯 보는 딸아이에게 나도 무심코 내뱉는 말이 있다. 적어도 드라마라면 벤허처럼 웅장한 서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순간 내가 꼰대처럼 느껴지면서 왜 그럴까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생각해보면 넷플릭스 리모컨을 작동하는 게 유플러스 리모컨에 비해 그다지 더 복잡하지도 않다. 아남내쇼날 비디오 플레이어 작동법이 당시 아버지가 들으시던 도시바 라디오보다 복잡하지도 않은 것 같다.
만약 페티킴 노래를 듣는 방법이 아남내쇼날 비디오 플레이어를 트는 것 외에는 없었다면 아버지는 금방 리모컨 작동법을 숙지 했을 것이다. 유플러스 새로 들어온 영화 코너에 내가 보고싶은 영화가 없다면 나 또한 넷플릭스 리모컨 작동법쯤은 쉽게 외울 수 있다.
목적을 이루는 대안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기기에 좀더 빨리 익숙해질 수 있다. 도시바 라디오와 아남내쇼날 비디오 플레이어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면 아버지와 나는 나에게 또는 딸아이에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새로운 리모컨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페티킴 노래를 듣고 벤허를 플레이 하면 되는 것이다. 단 한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서로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