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먹이사슬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5G와 사대]
사대(事大)’는 국제질서다. 생존법칙이다. 사회관계 전반의 질서로 확대될 수도 있다. 약자가 강자를 섬기는 것이다. 약육강식이란 정글법칙의 국제관계 버전이다. 동물은 먹이사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숙명이다. 인류는 먹이사슬의 굴레에서도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게 바로 사대다. 사대는 스스로 먹이가 되지 않고 섬김과 조공을 대체재로 체제를 보장받는 방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미국을 사대한다. 중국과 일본을 사대하고 러시아를 사대한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국제질서다. 우리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자 선진강국이다. 사대는 상대적 개념이다. 강자여도 더 강자를 섬겨야 생존할 수 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란 정치질서와 자본주의란 경제시스템으로 우리와의 사대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 시장에서 달러 패권으로 취하는 이익은 미국이 얻는 조공인 셈이다.
사대는 경제 전반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5G(세대) 이동통신 장비 선정 문제에서도 그렇다. 미국이 2013년 제기한 화웨이 통신장비의 보안문제가 내년 상용화를 앞둔 국내업체들의 화웨이 장비 도입에 급제동을 걸었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화웨이 장비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표한 적은 없다. 우리 정부가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보안문제란 유령은 이통3사에겐 실질적인 공포다. 업체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공공연히 정부에 대한 눈치를 얘기한다. 때로는 진실보다 인상이 더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국 의회가 화웨이 장비의 보안문제를 제기했지만 관련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개연성을 주장한 것이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에 따르면 스페인의 인증기관인 ENAC가 2014년 화웨이 기지국 장비에 대해 보안문제가 없다고 결론냈다. 백도어란 고스트는 여전히 전 세계 통신장비시장을 떠돈다. 사법시스템에선 검사가 유죄를 입증한다. 아니면 무죄다. 피의자가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 이게 상식이다.
정치논리는 화웨이의 무죄 입증을 강요한다. 불가능하다. 비상식적이다. 하지만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현실이다.
5G 통신장비 선정문제는 시장논리나 사법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본질은 보안문제로 위장된 노골적인 정치논리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업계에선 해결할 수 없다. 시장논리로 가성비 좋은 제품을 선정하면 정치논리로 보복 당할 것을 우려한다. 보안문제는 유령이지만 두려움은 실존한다.
그러나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통신요금, 즉 시장가격에 적극 개입했던 정부가 정작 정치의 영역에서는 뒷걸음이다. 시장의 불가침 영역을 침범해 놓고 정작 정치 본연의 역할에선 책임전가다.
최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황창규 KT 회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이통3사 CEO(최고경영자)와의 간담회에서 보안 문제에 대한 검증은 장비를 구입하는 업체들이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보안문제가 대두되자 영국 정부가 사이버보안평가센터를 만들어 정부의 선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5G 장비 선정문제를 놓고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사대다. 하지만 눈치만 봐서는 안 된다. 사대는 실리를 전제로 해야 한다. 생존과 이익으로 맞바꿔질 때 섬김과 조공을 통한 사대가 의미를 갖는다.
서희는 거란을 사대해주고 강동6주를 얻었다. 서희에겐 소손녕이 이끌고 온 8만 대군의 목적이 고려를 취하는 게 아니란 점을 간파한 통찰이 있었다. 무릎 꿇으란 거란 장수의 요구를 두 번이나 거절하는 배짱도 있었다. 고려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애국심이 바탕이란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보안문제를 들고 나온 건 비단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국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뚜렷한 증거를 보이라는 뜻이다. 중국과 편 먹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에 사대의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의 보복을 어떻게 보상할지, 미국의 관세장벽을 어떻게 낮춰줄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아니면 업계에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란 암묵적 가이드라인을 줘서는 안 된다. 시장원리대로 선정해도 정치적 보복이 없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서희가 위대한 건 강동6주를 얻고 백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서희는 소손녕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유영민 장관은 사대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어떤 실리를 얻었는지, 업계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말해보라. 무엇보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걸었는지 곱씹어 보라. 황창규 회장과 박정호 사장, 하현회 부회장이 유영민 장관을 사대하는 건 실리에 대한 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입력 : 2018-08-13 13:15
칼럼을 쓰면서...
사슴은 풀을 뜯고 사자 이빨에 뜯긴다. 먹이사슬 정점의 사자는 사슬의 굴레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사자는 자연사하거나 병으로 죽는다. 박테리아가 분해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미생물이 사자의 포식자다. 그렇게 분해된 사자를 양분으로 식물이 자란다. 초등학교 때 배운 먹이사슬은 선형이어서 마치 정점이 있는 것 같다. 실제 사슬은 선형이라기 보다는 나무가지 모양의 수형이고, 크게 보면 원형이다. 자연계 누구도 먹이사슬의 중간 어디엔가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오르면 누구에게도 을이 되지 않는 절대 갑의 자리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자리 또한 사슬의 한 고리일 뿐이다. 물론 비교적 덜 을질을 하고 살 수 있는 자리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학창시설 유난히 테스토르테론 분비가 왕성한 친구들이 있다. 싸움이든 공부든 지고는 못사는 종족이 반드시 서식한다. 아주 드물지만 싸움과 공부, 심지어 운동과 연애까지 두루 잘하는 희귀 족속도 존재한다. 고등학교 동창회를 나가면 당시 남성호르몬 분비를 주체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학창시절 기세로 보면 어지간한 재벌기업의 임원이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을 것 같았던 녀석들은 오히려 연락초자 안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란 정글에 나왔을 때 그들은 먹이사슬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다. 우물안 개구리 대왕이 우물 밖에서도 대왕 노릇을 하려고 까불다간 뱀이나 까치의 밥이 되기 일쑤다. 사회는 정글이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은 일정한 법칙이 있어 예측 가능하지만 사회는 그렇지도 않다. 어제까지 내 먹이였던 종족이 어느 순간 사슬의 상층부에서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는 일이 다반사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흔한 일이다.
먹이사슬에서 살아남으려면 갑을, 상하, 강약 등 이른바 공수전환에 능해야 한다. 역학관계를 기준으로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할 때인 지 상대가 무릅을 꿇어야 할 상황인 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 글쓰기'의 작가 강원국은 자신이 8년간 대통령 연설문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색 무취"라고 답했다. 누가봐도 유시민의 글인 것처럼, 강원국의 글에 강원국만의 스타일이 있었다면 대통령 연설문 작가로 롱런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글쓰기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그에게 과연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대필작가로서 자신의 해야할 일, 취해야할 스탠스를 정확히 알고 절대 그 선을 넘지 않은 것이다.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억누르고 연설자를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작업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반대로 어느 대통령이 자신의 연설문에서 다른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강원국의 일관된 무색무취는 자신의 욕망과 대통령의 요구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건설사업으로 돈을 꽤 많이 번 한 친구가 인허가 문제로 골치를 앓다가 찾아온 적이 있다. 허튼 소리를 할 친구는 아니어서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인허가 당국이 사실상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이 안되도 친구니 부탁 하나쯤은 들어줘야겠다 했는데 따지고 보니 너무 억울한 상황이어서 힘 닿는 데까지 돕기로 생각을 했다. 그 때 그 친구가 타고 온 차가 10년은 족히 탄 것으로 보이는 낡은 소나타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의 차는 아우디 A8중에서도 롱바디였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철저히 을 코스프레를 한 셈이다. 처음엔 속은 기분도 들고,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서운한 마음도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사업을 하면서 몸에 밴 처세술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갑이 돼야할 자리인 지 을 행세를 해야할 상황인 지를 그때그때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지금 세종시에서 4000억원 규모의 복합개발을 하고 있다.
이익 창출이 최고의 선인 기업이 이 정도니, 힘의 원리가 제1의 법칙인 국제관계는 오죽할까.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냉혹한 세계가 바로 외교의 무대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동맹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철저히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제관계에서 우정이나 의리, 신의 같은 가치는 우리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 곳엔 철저히 우리의 실리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계산기만이 존재해야 한다.
불행히도 북핵문제 등 최근 국제관계 현안 문제를 처리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술은 기자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상당히 미숙하다. 겨울 한파에 얼어붙은 한강 얼음바닥에 머리를 찧는 굴욕을 겪지 않으려면 머리를 숙일 때가 언제인지, 어깨에 힘을 줄때가 어느 상황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일례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 지소미아)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소미아 파기 카드가 유효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우리가 일본에게 제공해 줄 군사정보의 가치가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커야 한다.
한국이 일본에 제공하는 군사정보는 정찰기(백두와 금강)가 감지한 정보로 평양 이남 군사시설에 관한 신호와 영상이다. 탈북자나 정보원 등이 제공하는 휴민트 정보도 있다. 2, 3등급 비밀정보로 분류된다.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건 해상초계기 77대, 정보위성 5기, 이지스함 6척이 탐지하는 극비 사항이다. 해상초계기는 잠수함의 이동정보를 탐지할 수 있다. 우리는 16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를 감지할 수 있으며, 일부 감청까지 가능하다. 정보 교류가 깨지면 누가 더 목이 마를 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미국이 일본을 압박하는 지렛대가 되려면 지소미아 파기에 미국이 위협감을 느껴야 한다. 한미일 동맹 고리가 약화될 경우 극동아시아, 넓게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정도로 힘의 누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려는 건 김정은 체제를 붕괴시킬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김일성궁에 핵탄두를 떨어뜨리는 게 중국을 자극해, 예상치 못한 충돌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트럼프가 김정은 체제를 보장해주고 얻으려고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개방된, 자본주의화된 북한이다. IMF 가입을 유도해 북한의 경제구조를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달러자금을 투자해 북한을 시장경제의 먹이사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개항이 의미하는 것은 비단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상대국 무역선의 입항 뒤엔 반드시 군함이 뒤띠랐다, 김정은이 대화 테이블로 트럼프를 불러들이기 위해 원산 개항을 약속한 건 일부지만 시장경제 편입과 미국 핵항모의 동해 출입을 인정한 것이다.
북한이란 카드를 트럼프가 손에 쥐고 있는 한 대한민국의 유용성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북한이 미국에 1을 주면 미국은 우리가 주는 2가 없어도 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가치는 결국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국경을 맞댄 북한만큼 남한이 미국의 눈에 가치가 있을까.
22일 지소미아 연장 시한을 앞두고 트럼프 사람들이 잇따라 문재인 정부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 선악과 당위를 기준으로 사태를 대하고 있는 게 결코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남북을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정확히 잰 뒤 북한쪽에 더해진 무게추 만큼을 남한 쪽에서 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자국의 실리를 최대화 하는 경로에 남한의 존재감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을 등지고 우리 편을 들 것이란 생각은 100% 착각이다. 이 것을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면 더 큰 문제다. 그 것이 우리에게 어떤 실리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지, 한발 뒤로 물러설 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국민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면 백번이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먹이사슬에서 절대적인 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 관계에서 을질과 사대는 생존을 위한 리더의 처세이지, 굴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