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태평양 전략의 린치핀으로 귀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을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14분간 통화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같은 표현을 썼다.
린치핀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부터 한미동맹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미국 국방 백서에 한국을 린치핀으로 칭하고, 일본을 코너스톤이라고 하면서 한일간에 미국이 어느쪽을더 중시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붙은 해프닝도 있었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방식만 놓고 보면 한국에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바이든 당선인이 유리할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다행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가정 아래서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수니파 국가들을 동맹 관계로 엮어 이란을 고립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9월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연합, 예멘 간에 맺어진 아브라함 협정이 그 핵심이다. 타깃이 되는 적국 주변에 장벽을 두텁게 쌓아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일단 벽이 두터워지면 나머지 재료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모두 철거하는 방식이다. 시리아 철군 시도 등이 그런 맥락이다.
이를 한국 주변 정세에 적용해보자. 이 지역에서 미국의 타깃은 당연히 중국이다. 주변 동맹을 두텁게 해 중국을 고립시킨다는 중동 전략을 대입하기 위해 트럼프는 일단 일본과 인도의 힘을 키우는 방식을 택했다. 한미일 동맹 관계가 이전처럼 유지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문재인 정권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한미일 동맹이 약해진 상황이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복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이 동맹에서 사실상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사실상 방관했다. 이유가 뭘까.
이 대목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핵심이다. 트럼프는 한미일 동맹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에워싸고 고립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트럼프는 미일 동맹을 피봇(축)으로 유지하되 북한을 일부라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한다는 전략이다. 혈맹인 중조관계의 고리를 약화하고 미북 관계를 회복시켜,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이같은 구상이 현실화 할 경우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고립된다. 한미일 동맹이란 껍데기는 존재하겠지만 실제로는 북미일이 한편이 되는 셈이다. 북미일 동맹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미국와 일본에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북한이란, 거꾸로 말해 중국엔 그만큼의 위협이 커지는 것이다.
트럼프는 실제로 원산 갈마지구 등 일부 지역을 자본주의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 동해해변에 트펌프 타워와 리조트를 짓고 관광객을 유치하면 이를 미국이 IMF를 통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말은 지원이지만 사실은 IMF에 북한 경제 일부를 편입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에서 강조한 대로 서구 자본주의가 역사 진화의 종착역이라면, 자본주의는 확산의 힘이 그만큼 쿠다는 말이다. 일부지만 자본주의를 한번 받아들인 북한에서 자본주의가 확산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군사력이 지금보다 세진 일본과 핵을 가진 북한을 일부지만 자기편으로 만든 미국의 눈에 한국이 들어올 리 없다. 한국은 트럼프가 구상한 중국 봉쇄작전에서 아무런 역할을 맡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주한미군 철수는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계획'이 된다. 시리아와 독일에서 미군을 감축하겠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바이든이 한국을 린치핀이라고 한 건 그나마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느 정도 기대한다는 얘기다. 우리를 린치핀이라고 했다고 미국이 코너스톤이라고 부르는 일본보다 우리를 우선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고 오만이다. 일본은 미국을 빼면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나라다. 미국이 일본보다 우리를 우선시할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중국에 일본보다 지리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해에서 폭격기를 띄우면 햄버거 하나 삼키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베이징 상공으로 날아갈 수 있는 시대에 이같은 거리 차이는 우선 순위를 바꿀 만큼 결정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