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을 만든 핵심 인물과 시점
브라이언 브룩스(OCC) — 은행·달러 체계에 ‘온체인 결제’의 문을 열다 (2020–2021)
2020년 9월, 미 통화감독청(OCC)은 은행이 1:1 달러담보형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을 보유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IL 1172). 2021년 1월에는 은행이 퍼블릭 블록체인(독립노드검증망)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명확히 했다(IL 1174). 이 두 조치는 달러 기반 지급결제 인프라와 블록체인의 물리적 연결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며, ‘달러 수요 확대’와 ‘온체인 결제 확장’의 접점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
의회(맥헨리–워터스, 프렌치 힐–스테일) — 연방 규제 설계의 뼈대 (2023–2025)
하원 금융서비스위는 2023년 이후 여러 차례 스테이블코인 청문·법안을 추진했다. 2025년 4월에는 ‘STABLE Act’(H.R. 2392)가 위원회를 32–17로 통과했고, 상·하원은 GENIUS Act(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로 연방 규정의 큰 틀을 정비했다(상원 2025-06-17 가결, 하원 2025-07-17 가결, 2025-07-18 서명). 워터스는 이해충돌·국가안보 리스크를 이유로 강경 비판했지만, 법안은 준비금·공시·감독체계를 명시하며 달러 결제 네트워크의 대외 확장을 뒷받침했다.
도널드 트럼프 — 반(反) CBDC·친(親) 스테이블코인 축으로 정치적 신호를 보낸 순간들 (2024–2025)
2024년 7월, 트럼프는 내슈빌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미국을 세계의 크립토 수도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하며 선거캠프의 암호화폐 기부를 공식화했다. 2025년 1월, EO 14178로 연방기관의 CBDC 추진을 금지했고, 7월 18일에는 GENIUS Act에 서명했다. 백악관 자료는 이 법이 BSA/AML 의무를 명시하고 제재회피 대응을 강화한다고 적시한다. 이 일련의 조치로 ‘정부가 직접 달러 CBDC를 찍지 않지만, 민간형 디지털 달러(스테이블코인) 로 달러권을 확장’하는 방향이 제도화됐다.
제러미 알레어(Circle) —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경쟁력의 도구” (2018–2025)
알레어는 2022년부터 “인터넷 달러 수요”와 미국 국채·현금 등 안전자산 담보의 규제형 스테이블코인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2025년에는 USDC 유통량이 전년 대비 90% 증가해 613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히며, 규제 명확성이 기업 결제를 촉진할 것이라 평가했다. GENIUS Act 통과 직후에는 회계·공시·준비금 요구가 달러 신뢰도를 높여 ‘민간형 디지털 달러’의 표준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래리 핑크(블랙록) — “다음 세대의 시장은 토큰화” (2022–2025)
핑크는 2022–2023년에 걸쳐 “증권의 토큰화가 시장의 다음 세대”라고 공언했고, 2024년 3월 이더리움 기반 토큰화 머니마켓 펀드(BUIDL) 를 출시했다. 2024–2025년에는 이더리움 현물 ETF를 운용하며 기관 자금의 온체인 유입을 이끌었다. 이는 달러표시 단기채–스테이블코인–온체인 머니마켓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달러 생태계의 자본흐름을 제도권이 수용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비자·페이팔 — 빅테크 결제 네트워크의 실사용 접점 (2023–)
비자는 2023년 9월 USDC 결제정산을 솔라나·이더리움에서 운영하기 시작했고, 페이팔은 같은 해 8월 ERC-20 스테이블코인 PYUSD 를 내놓았다. “디지털 네이티브이면서도 달러에 연결된” 결제수단이라는 CEO 단 슐만의 언급은 빅테크가 달러 결제를 블록체인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드러낸다.
제롬 파월(Fed) — “스테이블코인 프레임워크가 필요” (2025-02-11)
파월 의장은 2025년 2월 청문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소비자와 기업에 큰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안전하고 건전한 방식의 규제 프레임워크 가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정치·산업계의 흐름에 연준이 제도적 경로를 맞추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왜 ‘달러 패권 × 테크 생태계’의 접점이 되었나
준비금의 국채 편중: GENIUS Act는 준비금을 현금·단기국채 등 고유동성 달러 자산에 두도록 명문화했다. 리서치들은 향후 수년간 T-빌 수요를 대폭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달러권은 저원가 부채조달의 혜택을, 산업은 규제형 달러 토큰의 신뢰를 얻는다.
정치적 계산: 트럼프 진영은 반(反) CBDC·친(親) 민간토큰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적 지지를 결집했고, 암호화폐 기부와 정책 약속(‘크립토 수도’,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으로 메시지를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실물 결제와 자본시장: 비자·페이팔·블랙록의 움직임은 스테이블코인이 국경간 결제·현금성 자산 운용·ETF 생태계를 가로지르는 달러의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타임라인(핵심 포인트)
2020–2021: OCC IL 1172/1174로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온체인 결제 허용.
2023-08: 페이팔 PYUSD 출시(ERC-20).
2023-09: 비자, USDC 온체인 정산을 솔라나/이더리움으로 확대.
2024-07-27: 트럼프, “미국을 크립토 수도로” 선언.
2025-01-23: EO 14178(연방기관 CBDC 금지).
2025-06-17 / 07-17 / 07-18: 상원·하원 GENIUS Act 통과, 트럼프 서명.
2025-07: 백악관, GENIUS Act의 BSA/AML 적용 등 시행 해설.
발언으로 보는 변곡점(일부 인용)
Larry Fink: “다음 세대의 시장은 토큰화.”(2022–2023)
Jerome Powell: “스테이블코인에는 규제 프레임워크가 필요.”(2025-02-11)
Donald Trump: “미국을 크립토의 수도로.”(2024-07-27)
Jeremy Allaire: “지불용 스테이블코인 규율은 달러 경쟁력을 지킨다.”(2022-06-21)
본질적 긴장: ‘탈중앙성’ 대 ‘미국 패권’ — 앞으로의 변수
검열·제재 집행 vs. 무허가(퍼미션리스) 설계
Circle·Tether가 OFAC 제재 연루 주소 동결에 적극 협조하면서, 화이트리스트형 달러 토큰과 검열저항형 자금흐름의 갈라파고스화가 심화될 수 있다. Tornado Cash 제재·소송은 ‘코드는 말(speech)’인가라는 법철학 이슈까지 띄웠고, GENIUS Act 하에서의 광범위한 BSA/AML 적용은 ‘온체인 프라이버시’와 계속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거꾸로 리스크
스테이블코인은 준비금을 현금과 단기국채에 두는 구조 때문에 미국 국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발행사들이 USDC나 USDT의 달러 가치를 지키려면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안전자산을 보유해야 하고, 이 때문에 단기국채가 가장 중요한 담보로 자리 잡은 것이다. 평시에는 이러한 구조가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발행사들이 대규모로 단기국채를 사들이게 되고, 이는 미국 정부의 부채 조달 비용을 낮추며 달러 수요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한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나 거래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달러 패권이 강화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에는 ‘거꾸로 리스크’가 숨어 있다. 미국 국채 시장이 불안정해질 경우,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도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채 한도 협상 때마다 반복되는 디폴트 공포나 금리 급등은 단기국채 가격을 흔들고, 준비금 가치에 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 순간 스테이블코인의 1달러 페그가 불안해지고, 대규모 환매 요청이 몰리면 발행사가 현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실제 디폴트나 상환 지연 같은 충격이 발생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신뢰와 함께 동시에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3년 동안 스테이블코인 성장을 통해 단기국채 수요가 최대 1조 달러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국채 시장 전체로 보면 크지 않아 보이지만, 단기국채 시장에서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시장의 주요 수요처로 커지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신뢰의 디지털 확대판’이자 동시에 ‘달러 리스크의 디지털 증폭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위기 때는 그 패권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떠안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은행 예금 대체와 ‘그림자 머니마켓’화
스테이블코인이 예금→머니마켓펀드형 준비금으로 자금이동을 유도하면, 지역은행 예금 기초 유동성이 훼손되고 신용창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규제는 지급결제의 안전성을 확보하지만, 신용중개 축소라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대외정치와 역외 집행의 마찰
미국 제재·KYC 표준을 이식한 달러 토큰이 역외 관할에서 충돌을 낳을 수 있다. EU·영국·신흥국의 데이터·프라이버시 규범과 온체인 제재 집행이 충돌하면, 다중 스테이블코인 블록으로 분기될 위험이 있다(미·중 e-CNY 경쟁 구도도 배경변수).
법원·규제의 재조정 사이클
Tornado Cash 사건 등 ‘스마트컨트랙트에 대한 제재 권한’이 항소심·대법으로 이어질수록, 코드=말 논쟁과 검열가능한 스테이블코인 표준 사이의 기준선이 다시 그어질 수 있다. 이는 지불용 스테이블코인의 프라이버시·합법성 범위를 재정의한다.
정리
2020–2021년 OCC의 해석으로 은행과 스테이블코인이 연결되었고, 2024–2025년 트럼프의 반 CBDC·친 스테이블코인 노선과 의회의 GENIUS Act가 이 접점을 법제화했다. 동시에 알레어·핑크·비자·페이팔 등이 ‘달러의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실사용과 자본시장으로 확장했다. 앞으로의 핵심은 탈중앙성의 미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제재·AML 프레임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잘 설계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형 디지털 달러 네트워크로서 달러 패권을 연장하고 테크 생태계를 키우는 공진화의 매개가 될 것이다. 반대로, 검열·프라이버시·국채의존 리스크를 과도하게 키우면, ‘달러의 디지털화’가 규제된 사적 화폐 체제로 수렴하며 탈중앙의 혁신동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