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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혁명초기와 지금의 블록체인

by 김창익

인터넷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의 이더리움과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바라보는 좋은 비유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TCP/IP라는 표준 네트워크 프로토콜이 있었지만, 일반 대중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체감하지 못했다. 초기의 인터넷은 주로 연구자와 기술자들의 영역이었고, 일반인들이 만질 수 있는 것은 단순한 홈페이지나 이메일 정도였다. 속도도 느리고, 사용자 경험도 불편했으며, “이게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넷스케이프 같은 웹 브라우저가 나오고, 2000년대 중반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등장하면서 인터넷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 속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페이스북, 아마존, 유튜브, 우버, 인스타그램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우리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더리움은 지금 인터넷의 그 초기 단계와 매우 닮아 있다. 스마트 계약이라는 범용 언어를 기반으로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dApp)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지만, 아직은 사용자가 제한적이고 경험도 불편하다. 지금의 디파이, NFT, 탈중앙화 게임 같은 서비스는 마치 90년대 후반 인터넷에서 검색, 전자상거래, 경매 사이트가 막 태동하던 것과 같다. 가능성은 어마어마하지만, 여전히 확장성과 속도, 규제 문제 등으로 인해 대중적 서비스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이 생태계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마치 스마트폰과 앱스토어에 해당하는 혁신적인 전환점이다. 인터넷이 PC 브라우저를 넘어 손 안의 기기로 들어오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듯,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 큰 암호화폐 대신 달러와 같은 신뢰 가능한 화폐 단위를 블록체인 위에 얹음으로써 일반 사용자에게 블록체인을 안전한 결제망이자 금융 인프라로 경험하게 만든다. 이는 블록체인을 단순한 투기장이 아니라 실물 경제와 연결되는 “사용 가능한 플랫폼”으로 변모시키는 계기다.


앞으로 이더리움과 스테이블코인이 결합해 만들어낼 탈중앙화 앱 시장은 인터넷의 앱 생태계가 그러했듯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은 느리고 불편하고 마니아적이지만, 규제와 인프라가 정비되고 사용자 경험이 혁신적으로 개선되면, 디파이·탈중앙화 소셜·게임·콘텐츠 산업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아직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해당하는 “킬러 dApp”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인터넷이 우리 생활을 바꿔놓았던 것처럼,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로 일상에 깊이 스며들 것이다. 결국 지금의 이더리움과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전화선 시절의 인터넷”과 같고, 곧 “아이폰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을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쓰듯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우선 로그인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 지금처럼 복잡한 지갑 주소나 개인키를 따로 보관하는 대신, 사람 이름처럼 읽을 수 있는 간단한 계정 주소를 쓰고, 로그인할 때는 지문이나 얼굴 인식으로 바로 인증이 끝난다. 사용자는 자신이 블록체인에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디지털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다. 결제 방식도 간소화된다. 지금은 신용카드 정보나 여러 앱을 거쳐야 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가 즉시 이루어진다. 이때 가스비 같은 추가 비용은 보이지 않고 서비스 제공자가 알아서 처리해주기 때문에, TCP/IP를 몰라도 인터넷을 쓰듯 블록체인의 복잡한 구조를 알 필요가 없다.


서비스 경험도 크게 달라진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면 자동으로 내 지갑에 기록되어 저작권이 보장되고, 콘텐츠가 곧장 수익화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아이템이 특정 계정에 묶이지 않고 내 지갑에 귀속되기 때문에 다른 게임이나 플랫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금융 서비스 역시 지갑 안에서 곧장 대출과 투자, 보험까지 실행할 수 있어, 전 세계 유동성과 단번에 연결되는 경험이 가능하다. 즉, 지금은 게임마다 계정을 따로 만들고 은행 앱마다 로그인을 반복해야 하지만, 블록체인 UX에서는 지갑 하나가 모든 것을 통합하는 출발점이 된다.


디바이스 차원에서도 변화가 생긴다. 브라우저에는 지갑이 기본 내장되어 사이트 접속만으로 인증과 결제가 동시에 가능하고, 스마트폰은 애플페이나 삼성페이에 블록체인 지갑이 붙어서 네이티브 앱처럼 작동한다. 결국 “인터넷의 시대에 브라우저가 창문이었다면, 블록체인의 시대에는 지갑이 창문”이 된다. 사용자는 키 관리나 네트워크 선택 같은 번거로운 과정 없이 클릭 한 번과 생체인증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게 된다.

종합하면, 블록체인이 일상화된 UX란 결국 사용자가 블록체인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사람들은 단순히 글을 올리고, 돈을 보내고, 아이템을 사고, 계약을 맺는 행위를 할 뿐이고, 그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의 신뢰와 투명성을 기반으로 매끄럽게 실행된다. 지금은 다소 불편하고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지만, 언젠가 인터넷이 전화선의 잡음을 벗고 누구나 쉽게 쓰는 인프라가 된 것처럼, 블록체인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UX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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