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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은 인터넷 초기 html+브라우저 같은 것

by 김창익

이더리움을 이해하려면 인터넷 초기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다. 인터넷은 원래 군사용 네트워크에서 출발해 연구자들의 이메일 교환이나 파일 전송 정도에 머물렀는데, HTML이라는 표준 언어와 브라우저라는 실행 창이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이 직접 웹페이지를 만들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전에는 인터넷을 쓴다고 해도 소수 전문가만이 가능했고, 활용도 또한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HTML은 단순한 문법으로 정보를 구조화할 수 있게 했고, 브라우저는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검색엔진과 전자상거래, 온라인 커뮤니티가 등장하면서 인터넷은 단순한 통신망을 넘어 생활과 경제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세계에서 똑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거래 장부’라는 혁신적인 의미를 가졌지만, 기능적으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 위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A가 B에게 얼마를 송금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일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은행을 거치지 않고 전 세계 누구와도 디지털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혁신이었지만, 인터넷의 초기 파일 전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순한 송금 기능만으로는 블록체인이 사회 전반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여기서 이더리움이 등장한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위에서 단순히 돈 거래만이 아니라, 조건문과 실행 코드를 담은 프로그램, 즉 스마트 계약을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스마트 계약은 쉽게 말해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약속”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일정 금액을 예치하면 상대방이 조건을 만족했을 때 자동으로 그 대금을 지급한다’는 코드를 블록체인 위에 심어놓는 것이다. 이 계약은 누구도 임의로 바꾸거나 중간에서 멈출 수 없다. 코드가 약속이고, 블록체인이 이를 강제하는 구조다. 이 점에서 신뢰 문제를 제3자에게 맡길 필요가 사라진다. 은행, 법원, 플랫폼 회사 같은 중개자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스마트 계약을 가능케 한 이더리움은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위에 ‘분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디앱이라 불리는 이 분산앱은 중앙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한다. 사용자는 특정 회사에 계정을 맡기지 않고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데이터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에 기록된다. 인터넷에서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이 HTML과 브라우저 덕분에 쉬워졌듯, 블록체인에서 디앱을 구축하는 것이 이더리움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 비유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인터넷 초기에 HTML과 브라우저의 등장은 ‘인터넷 1.0’ 시대를 열었고, 그 이후 수많은 기업과 서비스가 태동했다. 야후와 구글 같은 검색 서비스, 아마존과 이베이 같은 전자상거래,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이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이 서비스들이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확신하지 못했지만, 기본 인프라가 깔리자 창업자와 개발자들이 창의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쏟아냈고, 그 가운데 일부가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더리움 역시 같은 궤적을 밟고 있다. 탈중앙화 금융(DeFi), 대체불가토큰(NFT), 탈중앙화 자율조직(DAO) 같은 혁신들은 모두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 위에서 실현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버블이냐 혁신이냐’ 논쟁이 끊이지 않지만, 인터넷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시행착오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결국 새로운 표준과 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접근성이다. HTML이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단순화했던 것처럼, 이더리움도 블록체인 프로그래밍을 위한 언어인 솔리디티(Solidity)를 제공해 개발자들이 스마트 계약을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이 언어는 고도의 수학적 지식 없이도 비교적 쉽게 디앱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덕분에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가 실험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고, 그 결과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됐다. 인터넷이 열린 플랫폼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이더리움 역시 열린 프로토콜 구조 덕분에 집단지성과 창의력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인터넷 초창기에도 느린 속도, 불안정한 연결, 낮은 보안 같은 문제가 있었듯, 이더리움 역시 확장성 문제와 높은 거래 수수료, 에너지 사용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적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했듯, 블록체인 역시 이더리움 2.0 업그레이드와 레이어2 확장 솔루션 등을 통해 점차 진화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기본 구조가 갖는 잠재력’이다.


따라서 이더리움은 단순히 하나의 코인이나 투자 수단이 아니라, 블록체인 세계에서 인터넷의 HTML과 브라우저에 해당하는, 즉 분산형 애플리케이션을 가능케 한 근본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HTML과 브라우저가 없었다면 인터넷이 지금처럼 전 세계인의 생활을 바꾸는 플랫폼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더리움이 없었다면 블록체인은 여전히 ‘비트코인 송금 장부’라는 좁은 의미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을 ‘탈중앙화된 컴퓨터’로 확장시켰고, 그 위에서 수많은 실험과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이더리움은 인터넷 초기의 HTML과 브라우저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혁신을 이끌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더리움이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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