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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Dec 10. 2021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

아직 늦지 않았다.


같은 배속에서 나온 아이들이지만 두 딸은 성향이 매우 다르다. 한 명은 집순이에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자기만의 시간은 보내는 반면 한 명은 굉장히 활동적이라 밖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둘째 딸아이가 후자에 속한다. 둘째 딸아이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첫째 때보다 책을 읽어준 전체 시간을 따져보면 현저히 적었다. 첫째 딸아이는 한참 육아할 때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스스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책을 읽어주었다. 집에 있는 책을 어느 정도 읽으면 새로운 책을 접하게도 해 주었다. 둘째 딸아이 때는 많이 달랐다. 첫째 딸아이도 있었고, 두 명의 육아는 새삼 한 명과는 차이가 많았다. 잠시 앉아서 있을 틈이 없었고, 두 아이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책을 읽어줄 시간이 생겨도 첫째 딸아이에게 맞춰 책을 읽다 보니 둘째 딸아이의 수준에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긴 책을 읽을 때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차츰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책은 시시하다면서 다른 놀이나 보드게임을 좋아했다. 둘째 딸아이는 그렇게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았다. 심심하면 그림이라도 보며 혼자 책을 읽던 첫째 딸아이와는 많이 달랐다. 엄마가 읽어주지 않으면 아예 볼 생각도 없었다. 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아서 책과 덜 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책과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복직을 하고 평일에는 아이들 겨우 씻겨주고 다음 날 등교, 등원을 위한 준비 정도만 할 수 있는 시간들만이 허락되었다. 칼 퇴근을 했다고 해도 집안 정리와 다녀온 짐 정리 다음날 준비를 하다 보면 잘 시간이 훌쩍되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시간이 유아 때보다 훨씬 적어졌다. 첫째 딸아이야 한글을 읽으면서는 혼자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둘째 딸아이는 아직 글자를 못 읽는데도 책을 읽어주지 못했다. 겨우 잠자기 전 몇 권 읽어주는 것이 다였다. 책에 흥미도 떨어지는 아이라 오히려 시간을 내서 읽어줘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고, 막상 할 일이 많다 보니 어쩌다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이따가로 미루기 일쑤였다. 안 되겠다. 나도 아이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첫째 딸아이가 읽을 책도 확보하고, 둘째 딸아이에게 책의 흥미를 갖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주말마다 도서관이나 다지자고 하였다. 2번의 육아휴직 동안에는 대부분 작은 도서관을 이용했었다. 동네 마을 도서관에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모임을 참여했기 때문에 작은 도서관에서 그림책들을 만났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조용히 해야 하고 행동에 제약이 많은 큰 도서관을 이용하기에는 조금 벅찼었다. 하지만 이제는 꽤 커서 규칙과 질서는 어느 정도 지킬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처음부터 첫째 딸아이는 도서관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가자마자 어떤 책이든 손에 잡히면 읽었고, 집에 빌려올 책들을 골랐다. 둘째 딸아이는 도서관 가는 것을 싫어했다. 재미없고 시시한 곳이라고 했다. 책을 고르는 것에도 성의가 없었다. 그저 자판기 코코아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2주에 한번 일요일이면 300원을 쥐어주고 코코아 마시자며 도서관을 갔다. 책을 14일간 빌릴 수 있고, 반납해야 했기 때문에 2주에 한번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무조건 도서관을 갈 수밖에 없었다. 패턴이 생기니 주말이 되면 도서관 가는 날인지 아닌지를 체크하게 되었다. 그날이면 둘째 딸아이는 가기 싫다고 했다. 조용히 해야 하는 도서관이 지루하다고 했다.



3개월쯤 지났을까 포기한 듯 도서관을 다니던 둘째 딸아이가 변했다. 자판기 코코아만 좋아하던 아이가 그림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도서관 도착하자마자 얼른 집에 가자고 했던 아이가 책을 고르느라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 중 손에 잡히는 책을 살짝 꺼내 표지를 살피고 마음에 들면 책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아이가 고르는 책은 어느 것 하나 이상한 책이 없었다. 다 주옥같은 그림책들이었다. 스스로 책을 고르고 집에서 보기 시작하니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자기가 고른 책은 모두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자기 전 그 책을 들고 엄마가 읽어주기를 기다렸다. 책 읽는데 흥미가 없었어도 잠자기 전에는 항상 책을 읽어주었는데 도서관을 다닌 일, 잠자리 독서가 그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아직은 글자를 읽지 못하고 엄마가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이제는 심심한 시간이 오면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말한다. 엄마 할 일 지금 하는 것 마치면 책 읽어달라고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나는 엄마 책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라는 말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이번 주에 도서관 가는 날인지 체크하기도 한다. 책 읽는 것이 기특하다고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니 그 칭찬을 받고 싶어서인가라는 혼란이 잠시 올 때도 있지만 책에 집중하는 정도가 예전과 다른 점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둘째 딸아이에게서 느낀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고 집으로 빌려오는 작은 행위를 좋아하게 되면서 책을 보는 흥미가 생겨났다. 어쩌면 집에 책이 많아도 읽지 않았던 이유가 항상 있던 책이라 새롭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첫째가 읽던 책이니 둘째는 그냥 물려받아 보여주기 마련인데 그 자체가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많이 읽어주지 못한 나의 책임이 크지만 말이다. 도서관에 있는 많은 책 중 자기가 고른 책, 새로운 책에 대해 애정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아주 작은 부분에서 책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300원짜리 자판기 코코아 또한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고민이 되는가? 이제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고 자연스레 책을 가까이하도록 해보면 좋겠다. 도서관을 그냥 드나드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준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로 고민한다면 아이에게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 가장 빠르다. 당장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이라도 가보자. 그곳에 꽂힌 수많은 책들과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가 어떤 사소한 재미를 느끼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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