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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Dec 03. 2021

같은 책만 읽어 달라는 아이

반복 독서에 대해


벌써 5번째 읽어주는 책이다. 책장에 수많은 책 중에 어떻게 이 책만 찾아서 가져온다. 이미 줄거리도 알고 다음 그림이 어떤 것이 나올지도 알면서 계속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한다. 이러려고 전집을 사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책장에 꽂아놓은 것이 아닌데... 읽었던 책을 가져오면 괜히 책장에서 새로운 책을 꺼내 이 책도 읽어보자며 유도해보지만 유독 계속 읽어달라는 책이 있다. 어떻게 귀신같이 찾아오는지 그 책은 어디 꽂혀있든 꺼내온다.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는 시간에도 자주 등장하는 책이다. 그런 책들은 많이 읽다보니 다른 책에 비해 너덜너덜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책이 있고, 그 책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자주 읽으려고 한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같은 책만 읽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골고루 다양한 책들을 읽었으면 좋겠고, 이왕 구매한 책인데 한 권도 빠짐없이 우리 아이가 읽어주기를 바란다. 30~70권씩 되는 전집을 보고 있으면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어줘야겠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꾸 읽던 책만 읽어 달라하니 고민이다.



육아맘 카페에는 엄마들끼리 책을 어떻게 읽어주면 좋은지, 많이 읽어주는 방법 등 많은 의견들이 오간다. 같은 책만 읽는 것에 대한 고민 역시도 댓글이 여러 건 달려있다. 읽은 책은 책 제목에 스티커를 붙여요.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책만 읽어주면 모든 책을 다 읽어줄 수 있어요. 획기적인 방법이다. 읽은 책마다 작은 스티커를 붙여 구분하다니... 댓글을 보고 난 후 언제 한번 중고전집을 구매했는데 거기 모든 책 제목에 스티커가 붙여 있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잠시 생각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가 본 책에 스티커를 모두 붙인다는 것은 강박한 사회의 틀에 박힌 업무를 하는 느낌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면 같은 책만 계속 보는 아이, 어떻게 하면 될까?




같은 책만 계속 읽는 것은 반복독서에 해당된다. 반복독서는 천재들의 독서교육법 중 하나이다. 유럽에서는 천재적인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치가 반복독서를 강조하여 라이프니치 독서법이라고 따로 있을 정도이다. 위대한 위인들이 책을 읽었던 시기를 돌아보면 반복독서를 했던 시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위인들도 같은 책을 여러 번 봤다니... 아이들이 여러 번 책을 읽는 것은 위인들처럼 똑똑해지기 위함이 아닐까? 아이들이 같은 책만 여러 번 읽어서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 똑똑해지려고 하는데 오히려 똑똑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을 생각해 본다. 한번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을 알게 된다. 하지만 책에서 기억하는 문장은 거의 없다. 책을 50번쯤 읽으면 책을 외우게 되고, 기억하는 문장도 많아진다. 100번 정도 읽으면 책이 내면화 된다. 책의 문단, 요소, 흐름, 책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몸에 베인다. 아이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달라고 하는 건 이런 과정과 유사한 맥락이다. 



아이는 반항을 하려고 같은 책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읽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매일 같은 문장을 읽어준다고 항상 똑같은 생각만을 하지 않는다. 창의력이 샘솟는 시기의 아이들은 같은 책이라도 책을 읽을 때마다 다른 상상과 다른 생각을 한다. 항상 다르게 느끼고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매일 읽어줬던 그림책인데도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읽어주면 또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더운 여름 읽을 때 느낌과 겨울에는 또 다르고, 5살 때 읽었을 때와 8살에 읽었을 때는 또 다르고... 막상 따지고 보면 같은 책만 본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같은 책이지만 매번 다르게 읽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책만 보면 어때서? 여러 권의 책 중 유독 많이 읽어달라고 하는 책이 있다면 그것이 아이의 첫 인생 책이다. 다른 책도 다 읽어야 하는데 이 책만 읽어달라는 것이 걱정인건 부모의 걱정일 뿐이다. 안 읽고 넘어가는 책이 있으면 어떻고, 한번만 읽는 책이 있으면 어떤가,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닌데... 같은 책만 보는 아이는 스스로 똑똑해지고 있다. 그 책을 내면화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읽어줄 때마다 다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같은 책만 읽어달라고 해도 커가는 시기마다 그런 책들이 계속 다르게 바뀌어간다. 결국 아이의 인생 책이 계속 쌓여가는 것이다. 같은 책만 읽어달라는 것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게 우리 아이 인생 책이구나 라고 여기며 그 책들을 꼭 보관하여 물려주자. 아이 때부터 쌓인 인생 책이 아이의 삶을 말해줄 것이다.


아이가 같은 책을 또 가지고 오면 기쁜 마음으로 무한정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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