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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Dec 06. 2021

책 언제까지 읽어줘야 할까?

읽어 달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고, 틈만 나면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보통의 부모들이라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려서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도 사고, 없는 시간 쪼개어 책을 읽어준다. 사실 직장 다니고 집안일하면서 육아까지 하는데, 책을 읽어주는 일은 여간 바쁜 일이 아니다. 다른 일이 많이 밀려 있는데 아이가 와서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책만 읽어주고 있기에는 양말, 속옷, 수건까지 널 부러져 있어 개야 하는 빨래들이 눈에 보인다. 튕기며 놀던 풍선이며 그림 그리다 휙 던져놓은 연필과 지우개 가루들, 잘라놓은 색종이 조각들,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들... 책을 읽어주더라도 이것부터 치우고 읽어야 할 것 같다. 거기다 똑똑 대충 물에만 담가놓은 설거지 그릇들이 씻겨달라고 부르는 것 같다. 엄마 제발이라면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책을 읽어달라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책을 읽어준다. 머릿속으로 언제 혼자 책을 읽게 될까 의문의 물음표를 가득 담고서 말이다. 한글이라도 좀 떼면 스스로 책을 읽게 되겠지? 혼자 알아서 책 읽으면 집안일을 처치할 시간적 여유는 생길 것 같다.  

   

‘엄마 나 이거 책 읽어줘!’

‘글씨 다 읽을 줄 알잖아. 한번 혼자 읽어봐.’     


‘이거 그림책 읽어줘!’

‘이거 너 어렸을 때부터 보던 거잖아. 이제 혼자 읽을 수 있을 거야.’     




이제는 제법 한글을 많이 깨친 아이도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혼자 할 수 있으면서 의지한다는 생각이 들고, 스스로 읽는 모습이 대견해서 혼자 읽어보라고 한다. 읽을 줄 알게 되면 이제 읽기 독립이다 라며 책 읽어주느라 고생했다고 다독이며, 아이 스스로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글자를 알면서 책을 많이 보지 않는다. 책 많이 보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읽어주기를 그렇게 했는데 스스로는 읽지를 않는다. 무슨 문제일까?



아이가 혼자 책을 읽는 것이 어렵고 재미가 없어서이다. 아이는 부모 말대로 혼자 읽어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글자는 읽을 줄 알아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서 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교감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글자를 안다고 해서 글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라는 뇌 활동이 어떻게 되는지를 파악해 보면 알 수 있다. 글자를 읽으면 어떤 글자인지를 파악한다. 눈으로 본 글자 모양을 뇌의 뒤쪽으로 보내 의미 파악을 한다. 의미 파악한 정보를 다시 뇌의 좌우로 보내 소리 신호로 바꾼다. 소리 신호를 뇌의 앞 전두엽으로 보내고, 전두엽에서 비로소 눈으로 본 글자의 의미를 비로소 최종 해석하여 이해하게 된다.



책을 혼자 읽으려면 뇌의 활동이 이렇게 많다. 이제 막 글자를 알게 된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글자 의미 파악하기도 버거워 그림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림책의 경우 그림을 보고 이해해야 의미 파악을 완전히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책의 글자를 읽어주면 소리 신호가 귀를 통해 전두엽으로 보내진다.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 눈으로 글자를 파악할 필요가 없어진다. 뇌의 뒤쪽이나 전두엽 쪽으로 보내는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귀로 들으면서 그림에 집중하고 바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읽어주면서 느끼는 감정과 말투에서 느끼는 의미 또한 큰 역할을 한다. 글자를 알았다고 책 읽어주기를 바로 그만두면 책을 멀리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책을 읽어줘야 하는 걸까? 정답은 안타깝지만 ‘아이가 읽어달라고 하면 언제라도 읽어줘야 한다’이다. 어떤 책을 읽어달라고 해도 말이다. 뇌의 활동을 보더라도 책을 스스로 읽는 것과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느끼는 감정,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과의 따뜻한 교감은 어디서도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읽기 독립하고 나의 시간 좀 벌려고 했는데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커가면서 읽어달라는 책의 양과 횟수는 줄어든다. 어느 순간 책 읽어달라고 오지 않는다. 스스로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아주 가까이하면서...



누가 읽어달라고 하면 책은 평생 읽어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읽어주자.

그러면 아이가 크면 이제 그럴 일도 없어지겠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손자 손녀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순환의 고리처럼 말이다. 7살쯤 어느 날 아이가 만화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 글자도 웬만큼 읽을 줄 알면서... 그림책이야 언제라도 읽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만화책이라니... 고민했지만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읽어주었다. 한 권을 한 번에 다 읽어주지는 못하니 분량을 정하여 며칠에 거쳐 만화책 1권을 읽어주었다. 그러고도 여러 번 만화책을 읽어달라고 했는데 힘들었지만 참고 읽어주었다. 지금은 만화책을 읽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며칠 전 출근길 아이가 전화를 하더니 그런다.

‘엄마 심심할 것 같아서 내가 책 읽어줄게.’

그림책 한 권을 읽더니 만화책을 읽어주겠다며 연기를 시작한다. 방학인 아이를 돌봄에 맡기며, 또 할머니 손에 맡기며 출근하는 워킹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위로의 시간이었다. 책을 읽어주기만 하다가 듣고 있는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달콤했다.



바쁜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내기는 어렵다. 한글을 알고, 글자를 깨우친 아이라면 당연히 혼자 읽으라고 하고 더 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책을 읽어주기를 권한다. 아이가 글자를 알면서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부모를 귀찮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시간이 그저 좋아서,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이해하고 마음껏 상상하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책을 가까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자. 할머니가 된 딸, 할아버지가 된 아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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