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그들에게서 내 미래를 봤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스무 살 초반이었다. 학부생 때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 2학년 3학년이었던 시절 당시 강의를 나오던 40대 작가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는 어쩐지 우리를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대체 왜 그런 걸까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학기가 끝나고 종강파티를 하게 되었다. 수업 후 그 강사와 우리들은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적당히 들어가자 그는 자신의 삶을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살기 힘들다고. 술이 거하게 들어가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힘든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당시 너무 어렸던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보이기에 번듯해 보이는 대학교 강의를 하고 있고 개인전도 매해 하고 있으며 전시 경력도 꽤 되는 그는 학생인 우리가 보기에 그럴듯한 ‘작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스무 살 끝자락 또 다른 작가를 만났다. 그녀 역시 40대였고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했다. 당시는 부산에서 레지던시를 하던 때였다. 나는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작가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었다. 그 여성 작가와 같이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학부생 때보다는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세상 물정 몰랐던 어리숙한 나는 이번에는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 조금 절망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왜 내 주변 작가들은 하나같이 가난했을까? 아무리 작업을 많이 해도 이름이 조금 알려져도 결국 내가 이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계속 가난하게 살겠구나. 생각했다. 이때부터 내 안에 무언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 시점에서 나는 그들이 보여주었던 힘듦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길로 다시 돌아온 나를 보며 당시의 그 강사의 슬픈 눈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래서 그 강사는 지금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을까?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미래가 나와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해도 가는 길은 모두 제 각각일 것이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다 제각각일 것이기에. 그리고 그들도 40이 넘도록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림이 좋아서 작업하는 삶이 좋아서 계속 삶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결국 하고 싶은 일은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것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기에. 계속해서 내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으며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아니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그냥 계속 나 스스로가 의미 있다 여겨지는 일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