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 어때서?
내가 가지고 있는 취향을 소중히 대하고 지켜내는 일은 중요하다. 취향을 잊고 지낸 던 적이 있다. 둥글둥글하게 살고 싶었고 예민해 보이기 싫었다. 이십 대에는 까탈스럽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그만큼 취향도 확고했다.
"넌 참 예민한 것 같아."
취향에 대해 고집을 부릴 때면 늘 듣던 소리였다. 내가 가진 취향을 지켜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삼십 대가 되면서 더는 예민한 성격이 싫었다.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예민하다는 다른 말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예민한 만큼 쉽게 피로해졌고 쉽게 지쳤다. 너무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여서, 나만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어서 언젠가부터 둥글게 너가 좋으면 나도 좋은 건가봐 라며 예민함을 모른척했다. 그러다 보니 예민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나도 그 누구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만 남게 되었다. 문득 돌아보니 좋아하던 것도 취향이랄 것도 없어져버린 한여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마냥 밍숭맹숭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좋아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거로 여행도 하고 현재의 나는 얼마만큼 변해있는지도 천천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물을 묘사할 때 한 가지 대상을 응시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조용히 응시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내가 나를 모른 채 그렇게 그냥 시간은 흘러간다. 내가 현재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도 조용한 응시는 필요하다.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소란스러웠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고요해진 상태이다. 이 고요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현생의 나는 꽤나 고군분투하며 지냈다. 이제라도 온전히 나를 바라보고자 한다. 지금 나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좋아하는 취향은 무엇인지. 남들에 맞춰 그냥 그렇게 둥그런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아닌 나의 취향에 맞춰 한껏 예민하고 뾰족해진 상태로 살고 싶다. 누군가가 넌 참 예민하다고 말한다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맞아. 난 예민한 사람이야. 그게 뭐 어때서?"
나는 다시 예민해지기로 했다. 그냥 남들과 다르다면 다른것을 받아들이고 혼자 그 길을 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