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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an 13. 2023

이이제이에 이의를 제기함

당신은 일인가요 이인가요


헌 해가 가고 새 해가 왔습니다. 바뀌는 해에 따라 바뀌는 것들이 많습니다. 사업과 결산, 전보와 이직, 진학과 졸업. 여러 방향에서 여러 방향으로 머무르고 나아감이 있습니다. 다 사람 사는 일과 관계된 일들입니다. 새로운 일월을 시작하며 그렇게 다 새로워질 것 같아 보이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일들도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자주, 일의 내용보다 일에 관계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작업하는 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마주치게 될 겁니다. 직장상사일 수도 있고 비즈니스 상대일 수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갑질과 을질의 경계가 모호한 요즘엔 후배로 고객으로 가족으로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간질에 능한 들은 상대의 약한 부위를 재빨리 간파합니다. 그리고 집요하게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데 정통합니다. 쌍팔년도 유머에 일본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 이름으로 ‘깐데 또까’와 ‘안깐데 골라까’가 자웅을 겨뤘는데, 깐 데 또 까는 좀 더 악랄한 괴롭힘의 노하우를 아는 이입니다.


우리가 잘 쓰는 표현 중에 이이제이(以夷制夷)란 말이 있습니다. "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다스린다". 살면서 오랑캐를 정복할 일은 없어도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 "손 안 대고 코를 " 상황은 곧잘 겪게 됩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당하는 이(夷)들이 꼭 몰라서 당하는 건 아닙니다. 여기 갑과 을과 병 세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갑이 을한테 이러쿵 얘기하고는 다시 병한테 가서 저러쿵 얘기하는 것을 뻔히 알고 을과 병은 갑의 덫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 여러 원인이 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뢰의 부재입니다. 을과 병은 한배를 타고 양쪽에서 노를 저으며 합력해야 하는 관계로, 훼방꾼 갑이 조장한 불합리를 공동으로 타개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충분치 못하여 좌초합니다. 서로 딴맘을 품으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여차하면 빼낼  있도록 배 밖으로 발씩 걸치탑니다. 이들이 탄 배는 더 이상 한배가 아니라 불안한 반쪽짜리 배입니다. 갑은 이걸 귀신 같이 알아챕니다. 순풍을 태우는 척하면서 지속적으로 파도를 보내 배를 흔들어댑니다.


서로를 믿지 못해 끊임없이 계략을 짜고 그걸 또 간파해야 하는 피곤한 삶, 피할 수는 없는 걸까요? 있는 그대로, 필요한 그대로, 충분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고 절차를 밟으면서 평화롭게 지낼 순 없을까요? 표리부동 않고 선명히 처신하면서 약속 지키는 신의는 정녕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무구함까요?


선형 우주가 선사하는 인과관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에겐 태생적 인지한계가 존재합니다.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속을 먼저 내보이는 것은 무모짓이지요. 내가 달걀이면 저쪽이 닭일까 봐, 반대로 내가 닭을 택하면 상대가 달걀 포지션으로 돌아설까 봐,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물고 물리는 꼬리 잡기의 굴레에서 독야청청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지, 뭐가 더 좋은 건지조차 모르면서 말이죠. yes면 yes고 no면 no지, 애매한 연립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쿨한 것과 호구는 한 끗 차이입니다. 제아무리 의지와 표상을 구분한 쇼펜하우어라 한들 눈앞에서 가쁘게 펼쳐지는 실제상황신선놀음겨를이 없습니다. 일일이 진흙탕 싸움을 하든지 치밀하게 맞불을 놓든지 뭐라도 해야 하는데 타고나길 정치공학과 거리가  사람에겐 마땅한 일이 못 됩니다. 고고한 선비의 성정을 지키길은 필시 외곬의 막다른 골목을 맞닥뜨리됩니다.


냉정하고 냉철해야 합니다. 초침을 자꾸 뒤로 돌려 과거를 연장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지금 이 순간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집중해야 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머리를 비우고 전진 방향으로 리듬과 박동맞추는 데 몰두해합니다. 어떻게 하면 통쾌한 역전의 한방을 날릴까, 촌철살인의 독설로 잠시짜릿함이라도 맛볼까, 그런 부질없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에 골몰하마세요.


수긍하지 않아도 순응해 줄  있습니다. 어도 자조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다음 수입니다. 전투는 내준 것처럼 보여도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술 고수는 상대가 지르는 주먹을 역이용해서 그를 넘어뜨립니다. 작용 아래에는 항상 반작용이 있습니다. 지금 밟고 있는 땅이 흙탕일지라도 두 발을 단단히 딛고 다음 도약을 위한 에너지를 모으는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가능한 한 같은 방향 바라보연대의 손을 잡는 것도 좋습니다.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매듭이 깔끔하면 후사가 평탄합니다. 모양새가 좀 빠져 보이더라도 됨됨이를 포기해선 안 될 노릇입니다. 너저분한 마음 찌꺼기를 남겨두지 말고 넉넉히 받아들이세요. 그래, 네 그릇은 거기까지구나. 네 행동은 그 정도 가치를 지녔구나. 살포시 웃으며 우아하게 자리를 벗어나세요. 정신승리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길게 보는 세련된 처신이 필요하다는 겁. 면접관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정답이 아니라 태도를 보려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나를 지키세요. 흐른 것은 흘려보내고 오는 것을 맞으세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은 항상 흐릅니다. 새옹지마는 전화위복이 되고 조삼모사든 모삼조사든 지나고 나면 큰 차이 없었음을 알게 됩다.


심호흡을 깊게 합니. 충분한 여유를 가집니. 주위를 널리 둘러보고 그리고 천천히 일어납니. 당신의 두 다리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게임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가 많이 달라질 것 같지만 대단히 달라질 일은 없습니다. 새해가 새로운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입니다. 주체적으로 일하는 당신은 결코 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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