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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an 01. 2023

검은 토끼의 비밀

그래서, 계묘년이라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619818?sid=102

2023년이 밝았다. 덕담과 신년사와 새해 첫둥이 탄생 기사가 반긴다. 디지털 연하장에는 토끼가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하고 있다. 엄밀하겐 음력설이 지나야 띠가 바뀔 텐데 남보다 늦는 게 싫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간지(干支)를 소환한다. 올해는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란다. (닭 계鷄, 고양이 묘猫 아님 주의)

검은 고양이는 많이 봤어도 검은 토끼는 개인적으로 많이 못 본 것 같다. 작고 귀여운 깜장 토끼라니, 생각만 해도 깜찍하다. 까만 반려토끼를 키우는 분도 분명 계시겠다. 위 사진 속 아이는 광주시 한 동물원에서 찍힌 눈밭 위 토끼라는데, 야생이었다면 눈에 재깍 띄어 제일 먼저 도태됐을 상이다. 옥토끼든 재토끼든 다들 무고 무탈하길 빈다.


근데,


언제부터 띠에 색깔이 들어가기 시작했지? 어릴 때 기억엔 십이지 따라 그냥 동물만 바뀌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부터 백말이니 황금돼지니 색 있는 동물들이 등장한 거야? 그러고 보니 (이제 작년이 된)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였다. 어라, 검은색은 안 바뀌었네?


궁금해진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支 열두 동물은 알겠는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干은 각각 무슨 색들을 나타내는 건지?




오방색(五方色)이란 게 있다. 들어봤을 거다. 옛날 어느 대통령 취임식에 오방색 주머니가 걸려 앞날이 길하길 축원했더랬다. 청(파랑) 적(빨강) 황(노랑) 백(하양) 흑(검정) 다섯 가지 색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오행에서 나왔다.




오곡밥도 있다. 곧 다가올 정월대보름에 먹게 될 잡곡밥이다. 흰 찹쌀, 검정콩에다가 어디는 노란 조, 수수, 붉은팥을 넣는다 하고 어디선 청색 조, 붉은 기장, 노란 보리라 하는데, 뭐든 골고루 먹으면 몸에 좋을 것 같다.




.


입에 붙도록 반복해서 몇 번 읊어보자. 이 5색이 10간에 차례로 대응하는 것이다. 10을 5로 나눠야 하니 둘씩 묶여 갑을-청 병정-적 무기-황 경신-백 임계-흑이 된다.

이제 우리도 10간과 12지를 합쳐 60갑자 '색동물띠'를 다 만들어낼 수 있다! 임진(壬辰)왜란은 검은 용의 해였고 병자(丙子)호란은 빨간 쥐의 해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언뜻 역사와 전통이 유구해 보이는 이 동물색 따지기가 실상은 얼마 되지도 않은 상술이었단다. 고려시대도 조선시대도 아니고 불과 1990년(庚午年)에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는 근거 없는 속설과 함께 등장해서 "황금돼지띠는 금전운이 좋다"는 둥 온갖 꿈보다 해몽을 붙여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정착 돼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오행은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의 다섯 가지 기운으로 우주 만물과 그 변화를 설명하려는 동양철학의 오랜 시도였다.


목화토금수. 얘도 입에 붙도록 한번 외워보자.


오행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데 

목화토금수 차례로 가보면, 

나무에서 불이 나고

불이 나면 재(흙)가 생기고 →

흙이 뭉쳐 쇠가 되며 →

쇠에서 물이 맺혀 →

그 물이 다시 나무를 키우니

이를 상생한다고 한다. 


반대로 하나씩 건너뛰면, 

나무는 흙을 먹고 ↔

흙은 물을 가두고 ↔

물은 불을 끄고 ↔

불은 쇠를 녹이며 ↔

쇠는 나무를 베니

이는 상극이라고 한다.



 

.


오, 왠지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왕 입에 붙인 거 하나만 더 욕심내 보자.

오방색에 방(方)이라는 글자가 붙은 이유는 오행이 방위도 나타내기 때문이다. 파랑은 동쪽, 빨강은 남쪽, 노랑은 중앙, 하양은 서쪽, 검정은 북쪽.


 

 

.


한번 더.


청적황백흑

목화토금수

동남중서북.


정리.


청 목 동 갑을
적 화 남 병정
황 토 중 무기
백 금 서 경신
흑 수 북 임계




우와.

검은 토끼 따라갔다가 갑자기 오행굴에 빠져 육십갑자 나라의 앨리스가 돼서 똑똑해져 돌아왔다.

물론, 오행으로 설명하는 게 이것밖에 없을 리가 없다. 인의예지신에서 오장육부까지 아무렴 우주만물을 죄 설명한다는데. 새해 첫날부터 무리하면 골 아프니 사주풀이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오늘은 정도에서 마치는 게 좋겠다.


마치기 전에 하나만.


다음 계묘년 검은 토끼가 어느 북쪽 깊은 산속 세수하러 왔다가 만 먹고 가는 옹달샘 토끼로 캐릭터 진화해서 돌아오지 않을까?




ps. 내친김에.


내년은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다. 갑은 파란색, 진은 용이니까 청룡의 해 되겠다. 참고로 모든 갑○년은 맨 끝자리 수가 항상 4로 끝난다. 갑자사화1504 갑신정변1884 갑오경장1894. 그럼 내년에 갑이 돼서 다시 뵙자. 해피 뉴 토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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