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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an 05. 2023

술에 관한 추억 둘


장면 1. 가장 과학적인 음주.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에서 테슬라(테라+참이슬)까지. 오십세주(백세주+소주)에서 소백산맥(소주+백세주+산사춘+맥주)까지. 고진감래(소주+맥주+사이다)에서 아이리시카밤(제임슨+베일리스+기네스)까지. 맛있는 폭탄주는 쌔고 쌨지만, 그중 최고는 역시 깔끔하고 단순하말아진 쏘맥.


유람선도 태우고 충격파도 때리고 회오리도 돌려서 뒷벽에 휴지 척- 붙일 수도 있겠지만, 화려한 뭇 개인기 틈바구니에서 누군가 병권을 쥐어주면 학부 전공이 화학이었음을 조용히 고백하고 깨끗한 젓가락 한 짝을 (두 짝 아님) 꺼낸다.


숨겨진 황금비율의 캘리브레이션이라든가 기상천외한 연금술을 기대한 분들껜 실망스럽게도 화학과라고 에탄올의 분자식 이상 폭탄제조법을 따로 가르쳐주진 않는다. 브랜드는 어디상관없다. 그저 술병이 충분히 시원하면 된다. 대충 눈대중으로 과하지 않게 5부/5부를 맞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스터링 stirring, 휘젓기이다. 길은 단연코 W.


젓가락을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쥐고 빠르고 경쾌하게 글라스 벽을 종단해 알파벳 W자 형태를 그린다. 관건은 표면적이다. 소주 분자와 맥주 분자가 서로의 사이로 충분히 스며들 최대치의 표면적은 W가 가르는 단면에서 나온다. (소주 맥주 분자란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렇단 거다.) 초당 10Hz의 속도로 약 3초 간 왕복하면 뽀얀 크림 거품이 머랭 오르듯 도톰하게 차오른다.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마신다. 제대로 느끼려면 마지막 거품까지 원샷한다. 그리곤 상상도 못 한 크리미함에 깜짝 놀란다. 기네스 저리 가랄 목 넘김은 예술이고 쌉쌀함 1도 없는 뒤끝은 비단결 같다. 숟가락 뎅강 꽂아 일으키는 기포 몇과 부드러움의 차원이 다르다. 요즘 뭔 탕탕인가 제품도 나왔다지만 손맛 정성은 돈으로 못 산다. 크림 거품 수타 경력만 20년이다. 평생 쏘맥을 안 마셔봤다는 스타 ○○가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감독님 한 잔 더!를 외쳤다는 이피디표 카푸치노주. 쏘맥은, 과학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입니다




장면 2. 가장 자연적인 음주.

쿠바 아바나에 갔을 때다. 젊은 시절 김일성대학 유학경험으로 네이티브 뺨치는 평양 사투리를 구사하게 된 안내원 까를로스 선생이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게 해 주겠다며 일행을 안내했다. 불 꺼진 주택가, 간판도 없는 어느 집 마당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여염집인 걸 알았다. 요식업 허가는 따로 받았는가 모르겠지만 진짜 쿠바식 백반집을 찾아간 것이다.

십 대 딸을 혼자 키우는 여주인장 마릴레는 첫인상부터 화통했다. 맨 하늘이 뚫리고 잡초가 무성한 앞마당에 부려낸 진짜 집밥. 이런 분위기에 반주가 빠지면 섭한 법. 아바나클럽 (럼은 무조건 아바나클럽이다) 3년 산에 탄산수, 라임 왕창을 꺼내 커다란 유리꽃병에 쏟아붓던 집주인은 홀연히 마당 한편 우거진 나뭇가지를 꺾어 그대로 함께 밀어 넣었다. 찐 가정식 유기농 모히또의 탄생.

그 나무가 애플민트였는지 스피아민트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벌레가 붙었는지 새똥이 묻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모히또에서 마시는 몰디브가 얼마나 히뜩한진 몰라도 단언컨대 이날 마신 쿠반 모히또를 당해내지 못하리라. 문자 그대로 자연 상태, 지상 최고의 올개닉 모히또였다. 먹고 마시다 모자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꺾어 양껏 넣으면 그만. 마당 가득 경쾌한 살사 리듬을 타고 달빛 그득 박하향 넘실댔던 그날. 모히또는, 쿠바다.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입니다2




이 책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술이라서》는 주종을 막론하고 술이라는 코드 하나로 인 다양한 필자들의 글 칵테일이다. 어떤 인연으로 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여성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살짝 알딸딸 기분 좋게 취하는 미셀러니의 감성과 함께 독립 출판사의 소규모 판본이란 게 매력적이다. 몇 부 안 찍었다고 들었는데 출판사 난리 나게 중쇄 요청이 봇물 터졌음 좋겠다. 혹시 알아? 제목처럼 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요술이라서>.



(내친김에 기회 봐서 술 종류 정리 한번 해볼까 한다. 위스키 브랜디 진 럼 데낄라 보드카.. 동네 따라 꼬냑 바카디 뽀르뚜 그라빠 베르무트 압상뜨..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이 다르고.. 라거와 에일이 다른데.. 마티니와 다이끼리는 어쩔 거냐.. 막걸리랑 사케는 손댈 엄두도 안 남.. 모르니까 공부할 맛 나네. 곧 올리고 링크 걸겠다)


#하고싶은말이많아요술이라서 #김지선 외 #새벽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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