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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an 02. 2023

차인표 작가의 《인어 사냥》

(소설 내용 스포 없음)


최근에 끝낸 한 프로그램에서 듀공을 만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듀공 dugong 은 바다소목의 해양 포유류로 동아시아에서 호주까지 태평양과 인도양 연해에 서식하는 초식동물입니다. 길이 2~3m 정도로 바닷속 풀을 뜯어먹고 살며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사람 비슷하다 하여 '바다의 여인'이라는 뜻의 말레이어 duyong 이 어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듀공 사촌뻘 되는 매너티 manatee 란 친구도 있습니다. 이 친구는 몸집이 4m 정도로 좀 큰데 대서양 카리브해 일대에 삽니다. 매너티란 이름은 그쪽 원주민 언어로 가슴을 뜻하는데 역시 새끼 젖먹이는 모습에서 유래했습니다.


쌍둥이 육아 중


듀공은 태평양, 매너티는 대서양이 무대라고 하니까 굉장히 넓은 지역에 수많은 개체들이 번성할 것처럼 들리는데, 아닙니다. 현재 듀공은 약 4~5만 마리, 매너티는 불과 만여 마리밖에 않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얼마 전에 호주에서 듀공을, 십여 년 전에는 중미 벨리즈에서 매너티를 만나려고 노력했었는데 쉽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이 친구들을 살아있는 인어로 여기고 좋은 사냥감으로 생각했습니다. 허파로 숨쉬기에 물 밖으로 나와야 했고, 젖을 먹이는 포유류이기에 지극한 모성애로 새끼를 보호했습니다. 온순한 성격에 호기심도 많아서 사람을 봐도 도망치지 않으니까 잡기도 쉬웠던 거죠. 현대에는 늘어난 선박들의 스크루에 큰 부상을 입어 죽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사람이란 동물은 굶주림뿐 아니라 특별한 믿음이나 기호를 위해서도 얼마든지 살육을 자행하는 종입니다. 듀공 기름은 꺼지지 않는 등불을 밝히는 인어 기름으로 믿어졌고, 고기는 왕의 식탁에 오르는 귀한 진상품이었다네요. 사람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인어를 탐해 왔습니다.


A Mermaid (1900), J. W. Waterhouse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는 어떤 모습인가요?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모태는 안데르센의 동화이지요. 지금도 코펜하겐 바위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겠죠.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로렐라이 언덕의 인어는 어떤가요? 오디세우스를 유혹한 세이렌의 무시무시한 노래는요?

혹시 우리나라에도 인어가 있었을까요?

차인표 작가님의 소설 《인어 사냥》은 우리나라 동해에 살고 있는 인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가만의 엉뚱한 발상은 아닌 게, (작가도 참고했다는) 조선 중기 《어우야담》에 그물에 걸린 어린 인어들을 풀어줬다는 (믿거나 말거나) 사연이 기록돼 있습니다.

소설 속 인어는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고 삘릴리 풀피리 같은 울음을 웁니다. 저는 삘릴리 하면 반사적으로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가 생각나는데 -미솔미 라솔미레미, 지금도 리코더로 왕눈이의 십팔번을 자신있게 불 수 있습니다- 이 피리 소리는 또 다른 전설을 떠오르게 합니다. 삼국유사에 만파식적이라는 기가 막힌 대본 시스템이 등장합니다. 불기만 하면 외적이 물러가고 역병이 사라지며 만사에 근심걱정이 해결되최고의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인데, 죽어서 동해 용왕이 된 신라 문무왕이 보내온 거북섬의 대나무로 만든 특별한 피리입니다. 작가 또한 만파식적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신라 효소왕(687-702)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효소왕 때 만파식적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것으로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인어 기름을 불사의 영약으로 묘사한 것 역시 사료에 기초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백방으로 사람들을 보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요.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에 보면,


제나라 사람 서불(徐市) 등이 글을 올려 “바다에 봉래(蓬山), 방장(方丈), 영주(瀛洲)라는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습니다. 청컨대 목욕재계하시고, 어린 남녀 아이를 데리고 신선을 찾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서불을 보내 어린 남녀 아이 수천 명을 선발하여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게 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은 동쪽 바다 건너편에 있다는 전설 속 섬인데 우리나라에도 일본에도 같은 지명이 몇 개씩 있습니다. 아마도 서불은 정말로 인어 기름을 얻으러 찾아왔던 게지요.


엄마와 아기 히드라


소설 속 어미 인어가 지닌 생명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히드라라는 동물을 아시나요? 예전에 강장동물이라고 해서 입이 곧 항문인 말미잘 비슷한 친구인데, 얘네가 유명한 게 출아법입니다. 무성생식으로 어미 옆구리에서 그냥 새끼가 자라나는 것이지요. 신통한 건 한 놈을 둘로 갈라놓아도 각각 멀쩡한 두 마리로 재생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복원력 최고봉입니다.

산호도 놀라운 동물입니다.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단일 생명군락체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나이는 무려 천팔백만 살입니다. 1,800 아니고 18,000,000 이요. 할아버지 위에 또 할아버지 위에 다음 세대가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거대한 군락으로 생명을 이어온 거지요. 태초의 자궁인 바다에서 그 어떤 새로운 생명의 비밀을 만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겁니다.


Great Barrier Reef


길이 2,300k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생명력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도 환경과 기후변화로 앞날을 장담 못하게 된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곳에 있다는 듀공을 만나보고자 여러 번 촬영을 시도했지만 끝내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먹지 않을 것을 탐하면서 비극은 시작된 걸까요? 책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은 절대로 먹지 마라." 생선 전체를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긴 아닐 겁니다. 저도 맛있는 어묵탕을 포기할 계획은 없고요. 그럼, 뭐는 먹고 뭐는 먹지 말자는 그런 얘길까요?

솔직히 인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듀공 고기는 줘도 안 먹을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인어 사냥의 가책에서 자유롭지 않을까요? 많이들 그러시겠지만 저도 책을 읽다 마음이 닿는 구절에 밑줄을 치는데요, 이 책에서 밑줄 친 부분은 스스로도 좀 의외였습니다.


가마솥을 바라보는 모두의 머릿속은 똑같은 질문으로 꽉 차 있었다. (...)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였다. 저마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와 저간의 사정이 있었고, 그 사정들을 통틀어 욕망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각자의 목숨은 소중했고 사정은 절실했다. 그 소중한 개개인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어 기름을 원했다.


물고기 기름을 한자로 하면 어유(魚油)입니다. 검색창에 어유를 치면 몸에 좋다는 영양제들이 수두룩 튀어나옵니다. 피를 맑게 하고 중성지방 수치를 낮춘다는 오메가3가 그 주인공이지요. 당연히 저도 먹어 봤습니다. 우리는 이미 인어 기름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을 너무 진지하게 받으면 되겠냐고 한다면 맞습니다. 지구를 구할 것도 아니면서 엄청난 깨달음이나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소리 높이면 제가 봐도 오버입니다.

몇 해가 지나도록 선약은 못 구하고 문책받을 게 두려웠던 서불은 진시황에게 무서운 상어가 훼방을 놔서 그렇다고 핑계를 댑니다. 저도 상어 이야기를 짧게 하고 마칠까 합니다.



십여 년 전 매너티를 찾아 나섰던 벨리즈에서 상어들을 만났었습니다. 당시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샤크 위크(shark week)>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었는데, 흉악한 죠스로 대표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어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다루는 내용이었습니다.

샥스핀 들어보셨죠. 맛이 기가 막히고 보양식으로 그만이라는 상어 지느러미 요리. 그 요리를 위해 희생되는 상어가 해마다 1억 마리 이상 된다고 합니다. 사실 상어 지느러미는 없을 無, 맛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양념이 배는 역할을 하는 재료죠. 순전히 그게 샥스핀이기 때문에 식감이 다르다 어쩌다 하는 거지 당면으로 대체해도 전혀 지장 없습니다.

상어를 잡으면 지느러미만 뎅강 자르고 산 채로 다시 바다에 버립니다. 상어는 계속 헤엄을 쳐야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아가미 근육이 없기 때문에 움직여서 물을 통과시켜야 호흡이 가능한 것이지요.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는 헤엄을 치지 못해 숨이 막힌 채 그대로 뒹굴다 익사합니다. 해마다 1억 마리가 그렇게 산 채로 버려집니다.



픽션은 픽션답게 그냥 즐기면 됩니다. 하지만 때로 소설은 어느 다큐멘터리보다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 인어를 사냥하겠다는 작살이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를 겨누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논픽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인어사냥 #차인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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