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오스터의 작품에선 위계가 느껴진다. 시간의, 또는 권위의, 또는 세대나 계급 때로는 신학의 영역을 포함하는 명령체계의.
- 그 위계는 대칭적이며 순환 반복한다. 가위를 바위가 이기고 바위를 보가 이기고 보를 가위가 이긴다. 시작점에서 시작해 돌고 돌아 다시 시작점에서 끝난다.
-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또는 필연의 순응 같은 게 깔려있다. 엔터테인적으로 표현한다면, 잘 뿌린 떡밥과 꼼꼼한 회수라 하겠다.
요약:
자신의 삶이 거의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소진시키며 살아가는 젊은이 마르코 스탠리 포그, 이미 한 번의 삶을 말살하고 자신을 재창조한 노인 토머스 에핑, 그리고 비대해지면 비대해질수록 점점 더 작아져 가는 슬픈 운명의 중년 남자 솔로몬 바버. 그들 모두는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달처럼 슬픈 운명에 이끌려 퇴락의 길을 걸은 뒤 다시금 성장할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 책 소개 중.
쾌독을 위한 키워드 가이드:
1. 달
-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 첫 문장
- Moon: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
- Moon Palace: 맨해튼 웨스트 112번가 4층 주인공의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중국음식점 (네온사인).
- Moonlight: 브루클린 미술관 5층의 랄프 알버트 블레이크록 Ralph Albert Blakelock (1847~1919) 그림.
- Moonlight Moods: 클라리넷 주자 외삼촌 빅터 포그의 밴드명.
- Moon Water: 애리조나주 나바호 카운티의 올자토-모뉴먼트 밸리.
2. 조상
- 주인공 삼대 중 2대 솔로몬 바버의 가상소설 《케플러의 피》에 등장하는 '휴먼'이라는 이름의 미지의 인디언들은 달에서 왔다. 그들의 태초의 조부모의 이름은 각각 포그와 우마다. 《달의 궁전》에서 자손을 지우고 관계를 끊는 주인공 커플의 성은 각각 포그와 우다.
- 이들이 정착한, 그리고 주인공 삼대의 모험의 배경이 되는 유타의 지형은 달을 연상시킨다.
3. 여정
- 주인공 마르코 스탠리 포그가 에핑에게 고용되어 처음 한 일은 온갖 여행기를 읽어준 것.
- 그에 따른 이름들의 복선: 마르코: 13세기《동방견문록》을 쓴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 / 스탠리: 1871년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를 찾아 아프리카 탕가니카호로 들어간 뉴욕 헤럴드 특파원 헨리 모턴 스탠리. / 포그: 1873년 프랑스 SF소설가 쥘 베른이 쓴《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
- 1492: 외삼촌 빅터가 주인공에게 물려준 책 총 권수 =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연도.
- 컬럼비아 대학: 맨해튼에 있는 아이비리그 명문대. 주인공 부자가 다닌 대학으로 설정됨.
- 1893년 어린 토마스 에핑이 니콜라 테슬라를 처음 만난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시카고 세계박람회였으며, 거기서 테슬라는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불리는 구전(球電)을 이용한 전기쇼를 하고 있었음.
밑줄: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그보다 더 적절한 게 뭐가 있겠니?」
✅️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 나는 세상에 침을 뱉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가장 무모한 짓을 하고 싶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너무 많은 책을 읽은 젊은이의 모든 열정과 이상으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내 행동은 여하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려는 투쟁적인 거부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것은 심미적인 목적으로까지 고양된 허무주의였다. 나는 내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 셈이었다.
☑️ 중요한 문제는 다음에 할 일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가장 많은 고통을 주는 일, 나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앞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뒤여서 미래를 상상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미래는커녕 전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단 한 가지 미래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였고, 그 현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위한 투쟁이 점차로 다른 모든 일들을 능가했다.
☑️ 여기가 있는 건 단지 저기가 있기 때문이야. 위를 올려다보지 않으면 밑에 뭐가 있는지 절대로 알지 못해. 그걸 생각해 봐.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을 봄으로써만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돼. 하늘을 만지기 전에는 땅에 발을 댈 수 없어.
☑️ 그것은 모두 놓쳐 버린 관계, 잘못된 시기, 어둠 속에서 생겨난 실수였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그 이야기의 조각들은 처음부터 모두 거기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