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타이틀을 처음 접하고 하여간 참 니뽄발(發) 작제는 유난히 유난스럽다니까 하고 기가 찬 정도는 아니고 혀를 찬 적은 있다. 처음엔 대개 무슨 호러물인 줄 오해한다는 일반적 반응과 달리 분명히 주인공 시한부 설정으로 점철한 로코물일 것임을 직감하고 하여간 어그로도 참 클리셰 하다니까 하고 안 봐도 비디오네 제쳐놨던 건데 줄거리를 얼추 짐작하면서도 제대로 각 잡고 보진 어쩐지 않았던 것 같아 뒤늦게 좀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다. 하여간 강렬한 인상으로 눈길 끄는 데는 성공한 셈인데 (작가 스스로 의도를 시인했다고) 어쩌면 설정은 훨씬 더 엽기적인 진짜로 연인을 실제로 먹어치우는 국산 로맨스 《구의 증명》은 오히려 어딘가 참 형이상학적 작제라는 점에서 반도와 열도의 흥미로운 차이를 본다.
#나는뇌를만들고싶다 #선웅 #이음
다짜고짜 뇌를 만들고 싶다니 거참 '껌은 고양이 뇌로'도 아니고 어그로와 로맨스의 기가 막힌 메타포가 한 눈물 뽑아내려는 저의를 이 제목에서도 읽어냈다면 한 가지 사실만 빼고는 얼추 틀리진 않다고 할 수 있겠다. 허나 그 한 가지가 결정적으로 다른 가지이니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는 은유도 픽션도 심지어 어떤 괴랄한 희망사항도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 실제상황이란 사실이다. 실상 저자(와 다른 많은 뇌과학 연구자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신경발생학자들)는 이미 뇌를 만들고 '있다'!
심장이나 신장 그래 췌장까진 글쎄 감성미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느낀다 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는데 딱 뇌! 하니까 이건 어쩐지 어딘가 건드려선 안 될 터부를 막 터치하는 듯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 싶어 왠지 곤란스럽다. 왜지? 성스러운 지성과 인간성을 완성하는 성소라는 무의식 속의 고착 관념 때문인 걸까? 인간 지성 탐구를 위해 정성껏 직접 손수 뇌 제조 중이라는 도발적 제시에 나름 한때 이쪽 동네에 뿌리를 두어 제딴은 익숙하다 생각했던 나조차 페이지를 넘겨감에 따라 뇌간이 서늘해지고 뉴런들의 동요가 시냅스에 내뱉는 가바(GABA)의 농도 증가 추이로 살펴졌다. 중추신경이 마비되기 전에 정신 똑띠 차리자!
초반엔 그래도 과학하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너그러이 하다가 중반쯤 가선 그래 역시 신경전달물질이니 후성유전학이니 골 아픈 뇌과학을 쉽게 풀어주려던 거였어 했는데 이게 어째 후반에 이를수록 어라? 이거 진심인데? 진짜로 곧 만들겠는데? 골이 지끈거렸다. 저자의 자평을 빌자면 "흥미로운 드라마의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기분"이라니 나 모르는 새 21세기 식 포스트모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들이 천지 빼까리로 온 천지에 쫙 깔렸나 본데 하고 솔직히 좀 오싹하기도 했다. 말마따나플라스크 속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 빚어 내겠다는 위험한 연금술사와 진배없잖은가. 의도가 합리적이고 인도적이란 것 빼고 말이다. 그렇게 미니 뇌를 수년째 배양하고 있다는 저자의 목표점은 매우 명확해 보였고 그 여정은 제법 희망차 보였다.
스스로 자기 뇌를 해부하면서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신통방통한 테드 창의 《숨》속 기계 지성은 제 머릿속 이것저걸 들춰가다 끝내 기억과 사고의 원천에 미쳐 기어코 그 원리를 알아내고 놀라움에 숨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모든 게 공기(空氣)였구나. 공(空)과 기(氣)였구나. 결국 모두 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하는구나. 그걸 전문용어로 있어 보이게 엔트로피라 하는구나.
(위 문단의 공수래 운운하는 문장은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책에 나오는 얘기 아닙니다.)
요약
: 윤리 등 몇 가지 사소한 문제만 해결한다면 (이미 가능한 다른 모든 장기들처럼) 뇌도 실험실에서 만들고 키워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 지점에 거의 가까이 왔)다.
촌평
: 왜 SF에스에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장단
: 생생한 현재진행형 서술에 읽는 맛은 납디다.
밑줄
: "어셈블로이드를 만들었지만, 같은 방식을 확장하면 뇌 전체와 맞먹는 미니뇌[큰 미니뇌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를 만드는 게 가능하고, 이런 개념을 확장하면 보다 복잡한 뇌 기능을 구현한다거나 심지어는 자유의지가 창발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다른 연구자의 성과를 보면서 걸작을 만난 것 같은 감동과 부러움을 느낄 때가 간혹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