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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Feb 01. 2023

떠남은 돌아오기 위함

어느 공항의 추억

5HCC+HW Rionegro, 안티오키아 콜롬비아


여행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공항입니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거쳐야 하지만 영원히 머물 순 없는 장소. 자체로 목적지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경유지가 되는 . 여행이 그렇습니다. 쳇바퀴 도는 일상과 일상 사이 잠시의 일탈이 용인되는 행위. 새로움을 향해 나섰다 익숙함으로 돌아오는 여정. 이륙장벗어나 운무 위를 달리고는 다시 착륙하는 회귀.


여행은 공항을 나서는 티켓입니다. 티켓엔 출발일시와 도착일시가 적혀 있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리턴 티켓 없이 출입국도 쉽지 않습니다. 돌아올 날을 유예할 순 있어도 영원히 떠돌 순 없습니다. 기꺼이 몸고생 하며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 영혼을 갉아먹는 맘고생까지 바라진 않을 것입니다. 여행 자체가 목적인 여정은 고됩니다. 돌아갈 의지를 접은 고행 여행이 아니라 노동니다. 정처가 있을  여행은 비로소 풍요로워집니다.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순간들이 그다음 티켓이 되어 돌아옵니다.


보딩을 기다리는 다양한 인간들이 라운지를 채우고 다. 끼니를 거르고 나왔는지 트림을 하며 허겁지겁 접시를 흡입하는 옆자리 사내. 액정에 코를 박고 둘이 앉아 각자 키득대는 청춘. 그 건너편에선 아이부터 어른까지 말도 팔도 무조건 크게 휘두르는 요우커 삼대가 활극을 벌인다. 연령도 국적도 생김새도 제각각인 공항 군상들. 그런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으니,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지는 누군가와의 통화. 안녕? 잘 갔다 올게! 안녕~


안녕이란 말은 참 오묘합니다. 만날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 하이 hi 와 바이 bye  다르게 생겼는안녕만은 똑같을까요.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이라 그럴까요. 기시감에 어떤 곡조가 떠올랐다면 반갑습니다 저랑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분이군요. 시간은 흘러심상은 달라지지 않겠죠. 있었니 안녕, 잘 있으라고 안녕.


안녕은 연결고리입니다. 떠남 만남으로 다시 이어주는 고리입니다. 때론 슬프게도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 고리이기도 합니다. 안녕하라 했는데 안녕 못하기, 안녕을 지 않았는데 속도 모르고 안녕한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고리는 서로에게 알맞게 걸려있어야 하지요.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고리는 정체를 잃어 슬픕니다.


여행도 그렇습니다.  갔다 오려면, 갔다가, 돌아와야 니다. 그렇게 다녀와야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일상과 일탈이 단락된 여행은 정처 없어 슬픕니다.


몇 달 전부터 간다 간다 해놨던 인지 여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행운을 빌어온다. 통과의례처럼 소셜미디어글을 올렸더니 기다렸단 듯 공항패션을 궁금해한다. 연예인도 아니고 궁금하면 직접 배웅을 나오든가. 잘 가란 인사, 부럽단 인사, 선물 사 오란 협박까지 하나하나 하고 나니 귀찮은 중에 놓이는 안심.  기다리는 들이 구나. 그리 잘못 살진 않았구나. 별일이야 없겠지만서도 애써 힘껏 살아서 돌아와야겠구나.


사람마다 살아가는 이유는 다릅니다. 방법도 다릅니다. 누군 먹고 eat, 누군 기도하고 pray, 누군 사랑하며 love, 누군 살기 위해 live 떠납니다 leave.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알몸천사 미하일은 세 가지 답알아내세 번 빙긋 웃었지요. 당신은 당신만의 답을 찾았나요?


여행은 답을 줍니다. 소설 모두가 아당연답 말고, 아무도 모를 본인만의 답을요. 여행에서 얻는 답은 이 세상 모든 여행자의 를 더한 것만큼 많고 다양합니다. 거창할 것 없이 그저 은 공기 쐬고 리프레시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답입니다. 만약에 고작 한두 번 배낭 싸봤다고 바로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다면 당신은 석가모니보다 고수이신 거죠. 


관광이 썸이라면 여행은 오래된 연인입니다. 모든 게 핑크빛으로 보이는 핑크색안경을 낀 관광객들이 샹젤리제 대로변 명품관을 누빌 때, 여행자는 뒷골목에 가려진 무채색 보도블록의 사연을 듣습니다. 썸 타는 관광객에게 노트르담은 인생샷 배경으로서 이미 그 역할을 다했지만, 진짜 연애를 시작한 여행자는 돌기둥 사이사이 그을린 이끼의 습윤한 세월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청명한 햇살 뒤 처연한 센강의 잿빛 안개마저 사랑하게 되었다면, 당신이란 여행자는 이제 돌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엔 비쥬 bisou, 스페인에선 도스 베소스 dos besos 라고 부르인사법이 있다. 양쪽 뺨을 번갈아 맞대고 쪽 소리를 내볼키스다. 처음 보는 이성 간에도 성적인 의미 없이 친밀감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왜 꼭 두 번을 하는지 아무도 말해준 적은 없지만 난 그게 우리네 안녕 같다고 생각했다. 만남과 작별을 한 단어에 담아낸 멋진 인사말 안녕처럼 난 소중한 인연들과의 마지막을 볼키스로 나눴다. 오른쪽 뺨을 맞대며 널 알게 돼서 좋았어, 다시 왼쪽 뺨을 맞대며 다음 만날 때까지 건강해. 또 볼 수 있을지 확신은 못해도, 이번 여행을 통해 웃고 겪은 모든 것들이 나를 다른 여정으로 인도해  거란 건 확실히 안. 여행은 그렇게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여행은 논술시험 같아서 당신이 써 내려갈 답은 제가 쓴 답과 또 다를 겁니다. 알몸천사 미하일을 두 번째로 빙긋 웃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인간에겐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알려주니  얼마나 친절한 인생 풀이집인가요. 


 답안지 중 하나를 여기 당신과 공유합니다. 여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조만간 다시 또 떠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떠납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68RC+RH Vila Nova da Telha,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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