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절대적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이다.
누구나 꼰대를 싫어한다. '나 때는'을 입에 달면서 자기 얘기만 하는 상대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라떼'라는 게 또한 매우 상대적이다. 우리에겐 모두 자신만의 라떼가 있다. 그렇다면 남의 라떼 이야기가 듣기 싫듯이 내 라떼도 누군가에겐 듣기 싫은 얘기가 되는 게 당연하다. 바꿔 말해, 꼰대가 싫다면 꼰대가 되는 것도 싫어해야 맞다.
꼰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가르치려 든다'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진리이며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것 또한 바꿔 생각해 보면 상당히 상대적이다. 누군가가 자길 가르치려 든다고 힐난만 하는 사람은 곧 본인의 현재 입장을 절대 고수하겠다는 것이고 그 또한 자기 생각만 진리고 전부라고 선포하는 셈이 된다. 이런 사람일수록 또 다른 이에게 본인 생각을 강요하기 십상이다. 꼰대는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전에 자기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어떤 가르침도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이 자타공인 실력파 디바들의 요즘 케이팝 도전기를 들고 나왔다. 경력만 도합 151년이라는 기성가수 중에 기성가수들이 주인공들인데, 그중에서도 1978년에 데뷔, 가수력이 근 50년에 이르는 66세의 인순이 씨가 이제 갓 2년 차 걸그룹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해당 무대는 다른 출연자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낼 정도로 압권이었는데 그 장면이 감탄을 넘어 감동이었던 건 단지 그녀의 녹슬지 않은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과제에 임하는 자세 때문이었다. 명실상부 정상의 경지에 진작 이르고도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 그 과정에서 기존에 가졌던 익숙한 패턴에 반하는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용기. 방송에서 인순이 씨는 되뇌듯 이런 말을 계속한다. "나이 들면 용기를 내려놓는다잖아. 난 내려놓기 싫어."
그중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집에서 고군분투 하입보이를 연습하던 인순이 씨가 동영상 속 뉴진스를 향해 "얘들아, 너희 중에 한 명만 와주면 안 되겠니"하고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다. 실상은 답답함에 무심코 내뱉은 독백이었을지 모르나 내겐 십 대들에게까지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정신이 잘 드러난 장면으로 보였다. 나이가 무려 50살이나 더 어린 친구라도 원곡자라면 마치 학생의 자세로 손을 내밀 준비가 된 마인드셋. 모르는 걸 인정하고 배운다는 건 말처럼 절대로 쉽지 않다. 솔직히 우리 대부분에게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인순이 씨라고 자존심이 세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저 장면에서 그녀가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고 생각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도전하는 용기와 더불어 하나 더, 배움을 구할 줄 안다는 건 또 다른 위대한 덕목이다. 그 어떤 전문가라도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어떤 영역은 반드시 존재하며, 그곳에 나보다 잘 아는 누군가가 있을 때 계급장 떼고 배움을 구할 마음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꼰대가 아니다. 꼰대가 배움에 저항하는 것은 실은 자신이 방패 삼고 있는 알량한 자존심이 무너질까 두려워함이다. 이는 나이와 전혀 상관이 없다. 나이가 많든 어리든 배움을 거부하는 순간 꼰대가 된다. 인순이 씨의 무대는 그런 꼰대의 상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현재가 모인 '라떼'라면 나는 충분히 존경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