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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er Lee Jun 30. 2022

21년 12월 다섯째 주

한 해가 간다

12월 27일 월요일


주말 내내 날이 추워서 그랬는지, 설이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출근이 늦어질 거 같다 알려왔다. 그래도 내가 가기 전에 도착해서 카페 문은 열려 있었다.


처음 회원가입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바닐라 라테를 테이크 아웃한 손님이 있었는데, 바닐라라테를 만들던 설이 바닐라 가루를 넣고 조금 모자란 용량을 실수로 토피넛 가루로 섞어서 보냈다. 실수를 깨닫는 건 왜 항상 반박자씩 늦는 것인가. 음료를 가져간 손님은 혹 맛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거 맛이 독특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두 가지를 3:1로 섞어서 먹어본 사람은 없으므로. 가끔 실수를 하다가 새로운 음료가 탄생하기도 하니까.


1주일에 6번은 방문하는 윤이 바닐라라테를 시키고 음료를 받아간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컵을 떨어뜨려 버렸다. 음료와 깨진 컵 조각이 바닥에 퍼졌다. 설이 바닥을 닦고 나는 테이블을 닦고 윤은 쟁반과 자신의 이어폰 줄을 닦았다. 대걸레까지 가지고 나와서 닦고 정리하느라 설의 점심시간을 10분 까먹었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다. 윤이 떠난 후 테이블에서는 여전히 바닐라 향이 났다.


12월 28일 화요일


지난 몇 달 동안 민감독이 했던 영상 프로젝트 작업이 드디어 결제되었다. 통장으로 돈이 입금된 거다. 월급을 대폭 삭감한 채로 반년을 보낸 나와 민감독에게 그에 대한 보상으로 거한 상여금을 각각 지급했다. 어쨌든 1년 잘 버텨왔다고 기분 좋게 목돈으로 등을 다독여주었다.


12월 29일 수요일


부스터 샷을 예약한 날이다. 9시 조금 넘어 출근해서 예약한 설의 아들 생일 케이크와 매장에서 판매할 케이크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10시에 맞춰서 병원에 가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모양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물기를 없애려고 주방 티슈에 올려놓은 저며진 딸기도 손으로 잘 잡히지가 않았다. 오로지 주사 맞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짓겠다는 일념으로 속도를 높이다 보니 뒷정리는 끝내지 못하고 카페를 나섰다. 정각 10시에 병원에 도착, 사실 조금 늦어도 상관없었던 것을 기어이 맞추겠다고 채찍질하는 건 억압된 학교교육이 몸에 밴 탓이려나. 1, 2차 모더나로 맞았으므로 3차도 모더나이며 주사량이 절반이라 통증은 전보다는 심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주사 맞을 때는 그 전보다 더 아팠다.


12월 30일 목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주사 맞은 왼쪽 팔의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에 쥐가 난 듯 마비가 느껴졌다.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바느질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며 앞치마를 만들고 있을 때도 그 느낌이 계속되었다. 이것은 부스터 샷의 부작용 중 하나일까. 하도 주사 맞으면 큰일 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미친 포털 뉴스 때문에 없던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음 주 중학교 졸업하는 딸을 위해 풍선 꽃다발을 주문했다. 특별하고 재미있는 문구를 생각해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인스타의 핫한 키크니 작명소에 사연을 보내보았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12월 31일 금요일


미루다 미루다 2020년이 끝나는 날, 겨우 시간을 내어 건강검진을 하러 병원에 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전에 예약 문의를 하러 병원에 갔었는데, 미리 문진표를 작성해오면 빨리 끝날 거라고 해서 작성해 갔다. 미리 작성한 문진표를 들고 채혈 부스에 가니 소변을 먼저 받아오라고 종이컵을 주었다. 소변 받는 것이 끝나면 금방 채혈을 하는 줄 알고 채혈 부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쌓여있는 문진표가 보였다.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소파에 줄지어 앉아있었다. 금방 피를 뽑을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싶어 그들 틈에 끼여 의자에 앉았다. 내 뒤에서 똑같은 절차를 거쳐 채혈 부스 부근을 서성이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도 곧 피를 뽑는 줄 알고, 입고 있는 니트에서 왼쪽 팔을 빼서 준비를 시켰다. 쯧쯧, 금방 하지도 않는데 미리 옷을 벗는 바람에 보는 사람 민망하게 옆구리 맨살이 드러났다.


채혈을 하고 체중과 키를 재고 시력 검사를 하고 귀가 잘 들리는지 체크하고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담당 의사와 상담하니 딱 1시간이 흘렀다. 치과의사가 없어서 치아는 검사도 못하고 똥이 나오지 않아 대변 검사도 넘겼다. 다 끝나니 공복에 검사받은 터라 베지밀과 빵 하나를 주었다. 2021년 마지막 날이 이렇게 떠나가고 있었다.  


1월 1일 토요일


2022 해를 찍은 카톡 프사가 넘쳐난다. 오전 내내 손님  사람을 보았다. 12 입출금을 정리하고 2021  해의 수입을 가늠했다. 작년   매출은 1정도. 지금 통장에는 천만 원이 있으며, 대출이 천만  있다. 고로 우리의 자산은 0원이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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