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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er Lee Jul 30. 2022

22년 2월 셋째 주

일기를 마치다

2월 14일 월요일


아이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어서 모든 학원이 3일 동안 임시 휴원을 시작했다. 읍사무소는 군민에게 1인당 2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반갑게도.


밸런타인데이. 집에 여자가 넷이나 있는데, 초콜릿 하나 받은 적이 거의 없는 포토박이 불만을 토로했다. 슬쩍 떠 보는 말로 둘째 딸에게 ‘남자 친구한테는 선물 줬지?’ 했더니 거짓말을 못하는 그녀가 ‘응’이라 대답하는 바람에 포토박의 삐짐이 하늘을 찔렀다. 아, 내년 밸런타인데이까지 이 히스테리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둘째 딸은 당연히 내년에는 초콜릿을 하나 더 준비해야 할 것이고.   


2월 15일 화요일


여자 화장실 두 군데 중, 내가 즐겨 사용하는 변기의 물 빠짐이 심상치 않다. 가득 차 올랐다가 서서히 물이 빠지다가 나중에는 거의 물이 남지 않게 된다. 어딘가 막힌 것이 틀림없는 이 현상.


물 막힘에 대한 공포가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도대체 어떻게 지어진 건지, 1년에 한 번씩은 꼭 하수구가 막힌다. 10년을 살면서 하수구 뚫는 사람이 4번 왔었다. 한 번 올 때마다 10만 원 넘는 돈을 받고 뚫어주었다. 온갖 음식물 액체와 세재 등이 얽히고설켜 배관이 막히면, 가장 먼저 화장실 물이 빠지지 않았다. 처음 당했을 때의 그 공포라니.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집 안으로 넘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라면 국물조차 맘 놓고 버릴 수가 없었다. 요즘 우리 집 부엌 개수대 물 빠짐이 심상치 않은데, 이제 카페 화장실마저 막히려고 한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화장실 문 앞에 ‘사용금지’ 표시를 해두었다.


퇴근하고 저녁에 설에게 카톡이 왔다. 유튜브에서 ‘화장실 변기 뚫는 법’을 찾아서 뚫어놓았다고! 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2월 16일 수요일


밤새 기온이 내려가고 눈이 내렸다. 누적 확진자는 80명을 훌쩍 넘겼다. 겨울은 카페의 비수기인데 더욱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2월 17일 목요일


이번 주 초 재난지원금으로 준 지역상품권이 조금씩 카페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금 대신 상품권이 쌓인다. 이왕 쓸 거면 카페에 써주면 좋겠지만, 아마도 먹거리 상점에, 배달 음식에 다 들어가겠지. 배달을 하지 않는 이런 카페란, 시대에 뒤처진 업종이 되어간다.


2월 18일 금요일


테이크아웃 캐리어와 빨대가 배달되었다. 손님은 없어도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계속 구비를 해놔야 한다.


카페 용품은 늘 종업원 최가 주문을 한다. 요즘은 9시면 손님이 끊기니, 사실 그 이후 자정까지 그냥 노는 시간이다. 그동안 종업원은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잡다구레한 자기 취미생활을 하다가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결제를 한다. 영업이 끝나면 문을 닫아야 쓸데없이 돌아가는 전기료라도 줄일 수 있을 텐데, 올빼미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은 그게 안되나 보다. 오히려 놀 시간이 많아 좋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배달은 오전에 오니, 정리는 오롯이 아침에 눈 떠 출근하고 일하는 나와 설의 몫이다.


설이 배달된 빨대를 창고 제일 위 선반에 올리려다가 바로 아래 선반에 있던 맥주 한 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뚜껑이 살며시 틈을 보이고 김이 빠지면서 맥주가 새어 나왔다. 7천 원에 판매하는 맥주를 그렇게 보내고 설이 또 미안해한다. 그깟 7천 원짜리 맥주가 뭐라고. 직원이 자꾸 미안해하는 건 카페가 너무 가난하기 때문일 터. 도무지 이 ‘가난’은 2년이 되어가도 벗어날 수가 없다.   


2월 19일 토요일


일기를 쓴 지 곧 1년이 되어 간다. 내 감정의 분출구였던 글들은, 아마 두고두고 야금야금 홀로 읽게 될 것이다. 1년이 지나면, 아님 5년이 지나면, 그때도 아직 카페가 살아있을까? 나는 여기서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들고 있을까? 설은 여전히 나를 도와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달고나를 만들고 생강청을 만들고 자몽청을 만들고 홍차 진액을 만들고 있을까? 민감독에 대한 내 감정은 여전히 차가운 채 남아있을까? 포토 박은 집 짓는 목수가 되어 있을까?


그래도 1년 후에는 집이 완성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정말 재앙이다. 제발, 내 꿈이 산산이 부서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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