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ssworks>를 듣고
지루함은 반복 그 자체에서 오지 않는다. 같은 음악이라도 낯설게 들릴 때가 있고, 익숙하게 들릴 때가 있다. 우리가 늘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같은 기대를 가지고 음악을 소비할 때, 감각은 무뎌지고 지루함이 찾아온다. 이때 문제는 반복이 아니라, 반복이 감각을 예측 가능한 틀 안에 가두는 방식이다. 무감각이란 결국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 아니라 루틴화되는 현상이다. 현대인의 감각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익숙한 콘텐츠와 예측 가능한 리듬 속에서 점점 굳어져 간다. 유튜브 쇼츠의 끊임없는 루프,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는 반복 때문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 때문에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필립 글래스는 이러한 무감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81년의 앨범 《Glassworks》에서 그는 반복과 단순성의 미학을 대중적인 감상 방식과 결합하며, 실험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앨범을 통해 듣는 이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음악이 지루한가, 아니면 우리의 청취 방식이 지루함을 만드는가?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이 정말 같은 경험을 반복한다는 의미인가?
《Glassworks》는 글래스가 최초로 대중 시장을 겨냥하여 만든 앨범이다. 그는 미니멀리즘의 실험성을 유지하면서도 팝적인 감성과 형식을 도입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첫 곡인 “Opening”의 간결한 피아노 패턴은 겉으로 전통적 조성을 따르지만, 연주자의 미세한 다이내믹 변화와 페달링을 통해 순간순간 다른 질감과 정서를 창조한다. 이 반복은 마치 익숙한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가 우리의 감정을 다르게 이끄는 것처럼, 음악의 미세한 변화가 듣는 이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재편성한다. 이때 반복은 단순한 음악적 형식이 아니라 청취자의 인식을 전환하는 도구가 된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1960년대 미국에서 급진적인 흐름으로 태어났다.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테리 라일리 같은 작곡가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아방가르드를 벗어나 단순한 구조와 반복 속에서 새로운 인지의 가능성을 찾았다. 《Glassworks》는 이 미니멀리즘 미학을 감정과 서정의 언어로 확장하며, 청자의 감각을 다시 활성화하는 새로운 청취 방식을 제안한다.
글래스의 음악은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다. 들뢰즈는 반복이란 단순히 같은 것을 반복하는 행위가 아니라, 반복할 때마다 미묘한 차이를 통해 지각의 구조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이라 말했다. 글래스의 반복된 피아노 패턴은 들뢰즈의 '차이의 반복'을 음악적으로 구현하며, 듣는 이가 미묘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유도한다. 감각은 매 순간 새롭게 조직되고 재배열되면서, 일상적 익숙함을 넘어선 낯선 경험을 만든다.
이러한 반복의 원리는 현대 디지털 환경과 대조적이다. 유튜브 쇼츠나 TikTok은 감각을 마비시키는 예측 가능한 반복 패턴을 통해 청자의 인식을 루틴화한다. 반면, 글래스의 《Glassworks》는 반복을 통해 듣는 이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깨우고, 지루함의 원인을 음악이 아닌 청자의 청취 방식에서 찾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청자는 의식적으로 곡을 집중하여 듣고, 순간적인 차이를 포착하는 적극적인 청취 방식을 실천해야 한다. 음악을 수동적으로 흘려듣지 않고, 각 소리의 미묘한 변화를 탐색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곡 「Facades」에서는 반복과 감각의 관계가 공간적으로 더욱 확장된다. 브라이언 이노의 《Music for Airports》가 공간을 채우는 배경음악이라면, 글래스의 음악은 청자를 음악 속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점진적이고 미묘한 변화가 반복되는 선율을 따라 나타나면서, 듣는 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적 현실로 초대된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지루함에 맞서는 방법은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듣는 태도의 전환이다. 《Glassworks》는 반복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의 가능성을 되찾으라는 메시지이자, 예측 가능한 감각의 루틴화를 깨는 가장 강력한 실천이다. 음악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지루한 것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