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아이들은 결핍의 꿈을 꾸는가?

<여러 샘플링 음악들>을 듣고 추억하며

by 재민
%EA%B7%B8%EB%A6%BC1.png?type=w773


과잉의 아이들은 결핍의 꿈을 꾸는가?

어째서 가장 풍요로운 세대는 결핍된 시절을 동경하는가?


향수(Nostalgia). 본래 이 감정은 현재의 공허를 과거의 충만함으로 채우려는, 어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그 시간 여행의 주체가 전복되고 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감각 과잉’의 시대를 유영하는 20대의 청년들이 불과 10여 년 전, 자신의 가장 미숙했던 시절을 탐닉한다. 이는 단순한 복고 유행이 아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향수는 흔히 통용되는 중장년층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들의 향수가 30~4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한 시간 여행이라면, 지금 청년들의 향수는 불과 십여 년 전, 어제와도 같이 생생한 자신의 유년 시절을 향한다. 이는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지금의 20대가 시간을 감각하고 기억을 호출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미래의 좌표는 불투명하고 현재의 지반은 고단할 때, 이토록 가까운 과거마저도 아련한 ‘안전지대’로 소환되는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결핍’이란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평가와 비교로부터 자유로웠던 시절의 ‘정서적 충만함’이다. 결과에 대한 압박 없이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진실했던 관계들. 이 기묘한 시간의 역주행은, 현세대가 시대를 감각하고 생존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정직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 증언의 최전선에, 그들의 음악이 있다. 이 글은 동시대 음악들이 어떻게 시대의 불안을 호흡하고, 과거의 파편을 통해 현재의 공허를 버텨내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여정이다.




소음의 장막, 그리고 샘플링된 유년

‘감각 과잉’은 시대의 공기다. 알고리즘의 홍수와 소셜 미디어의 전시 경쟁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하이퍼링크처럼 분절되고, 감각은 안정된 좌표를 잃고 부유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음악은 어떻게 시대의 불안을 호흡하는가? 첫 번째 응답은 외부의 과잉을 내부의 과잉으로 맞서는 역설적 전략, 바로 ‘소음’이다.


방구석에서 만들어진 음악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파란노을(Parannoul)의 슈게이징(Shoegazing) 사운드는 그 상징이다. 여러 겹의 기타 노이즈로 쌓아 올린 ‘소리의 벽’은 외부의 무질서한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음향적 방어기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소음의 장막 뒤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음악 곳곳에 희미하게 삽입된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미디어의 샘플들은, 이 소음이 단순한 방어벽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품고 있는 ‘안식처’임을 암시한다. 즉, 그의 슈게이징은 단지 현재의 소음에서 도피하는 것을 넘어, 샘플링된 유년의 조각들을 소음의 장막 뒤에 숨겨두고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을 구축하는 행위다. 감각 과잉의 시대에 대한 가장 내향적인 저항은, 이처럼 현재의 소음과 과거의 샘플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형태를 띤다.




기억의 발작 : 샘플링, 시대의 문법이 되다

고독의 방으로 숨어드는 현상은 단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2020년대 들어 디지털 심연에서 부상한 다리아코어(Dariacore)는, 샘플링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시대의 문법 그 자체가 되었는지를 증명한다. xaev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주도하는 이 장르는 저지 클럽, 나이트코어의 발작적인 비트 위에 2000년대 팝, 비디오 게임 효과음, 인터넷 밈 등 추억의 편린들을 사정없이 난도질하여 콜라주한다. 음악은 1분 1초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질주하며, 익숙함과 기괴함 사이에서 현란한 줄타기를 한다.


이는 뇌가 하이퍼링크를 따라 파편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을 그대로 소리의 문법으로 이식한 결과물이다. 완결된 서사 대신, 유년기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여 재조합하는 행위. 이들에게 과거는 아름답게 박제된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혼란을 버텨내기 위해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유희하는 데이터의 놀이터다. 샘플링은 단순한 음악 작법을 넘어, 이 시대의 사유 방식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과거라는 탄환, 현재라는 과녁 : K-FLIP과 시간의 충돌 실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이 ‘과잉 속 회귀 본능’은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가장 선명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레이지(Rage) 사운드는 디지털 노이즈와 데이터의 과포화 상태를 가장 공격적으로 재현하는 동시대의 사운드다. 식케이(Sik-K)와 릴 모쉬핏(휘민)의 합작 앨범 K-FLIP(2025)은 바로 이 과잉의 언어를 통해 역설적으로 결핍의 기억을 호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앨범을 지배하는 날카롭게 찢어지는 신시사이저는 현시대의 디지털 과잉과 그로 인한 내면의 분노를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다. 이것은 감각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신경질적인 감각 자체를 소리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릴 모쉬핏의 프로듀싱은 단순히 시대의 혼란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샘플링을 통해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현재로 소환하여 정면으로 충돌시킨다. 실리카겔, 칵스, 이디오테잎 같은 동시대 인디 밴드의 사운드부터 김현정, 에픽하이로 대표되는 2000년대 K팝, 그리고 오케이션과 더 콰이엇 등 자신들의 뿌리가 된 힙합 클래식까지. 마치 디지털의 폭풍 속에서 아날로그의 유령이 출몰하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 이것이 릴 모쉬핏이 샘플링을 통해 구현하는 시간의 충돌 실험이다. 이는 과거를 안전한 도피처로만 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혼란과 싸우기 위한 무기로 재활용하는 적극적인 행위에 가깝다.




세대의 북마크 목록 : SS-POP2와 좌표의 재설정

시스템 서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고고학에 가까운 작업을 선보인다. 그에게 샘플링은 단순한 작법을 넘어, 앨범의 정체성이자 세대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핵심 도구다. 그의 앨범 SS-POP2(2025)는 201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편린들로 직조된 태피스트리다. 레드벨벳의 ‘러시안 룰렛’,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같은 메가 히트 K팝과 드라마 ‘도깨비’,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OST 등 청소년기를 관통했던 익숙한 멜로디들이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여기에 ‘모두의마블’의 랜드마크 건설 효과음이나 온라인 게임 ‘테일즈위버’의 OST가 예고 없이 끼어들며, 공적인 기억과 지극히 사적인 유년의 체험을 뒤섞는다. 이는 CRT 모니터로 대변되는 막연한 과거가 아닌, 불과 10년 전 PMP와 스마트폰으로 K팝을 듣고 게임을 하던 자신들의 직접적인 과거로의 회귀다.


시스템 서울에게 샘플링은 과거를 복제하는 행위가 아니라, 흩어진 데이터를 큐레이팅하여 현재의 '나'를 증명하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와 같다. 이처럼 아슬아슬하게 직조된 기억의 태피스트리는 현재 무단 샘플링이라는 저작권 논란에 직면해 있으며, 이 불안정성마저 이 시대의 속성을 닮아있다.




결핍을 향한 갈망, 시대를 향한 응답

왜 이 시대의 가장 혼란한 음악은 가장 그리운 기억을 품고 있는가?

이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 시대에 대한 사회적 진단을 요구한다. 이들은 무한 경쟁과 경제적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노력만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정서적 소모를 겪는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현재는 고단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미숙함이나 나약함의 증거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음의 성채, 기억의 발작, 과거의 샘플은 단순한 음악적 장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감각적 장치들이다. 그들이 소환하는 유년기는 결과에 대한 압박 없이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 즉 평가와 비교로부터 자유로웠던 시절의 ‘정서적 충만함’이다. 가장 혼란하고 과잉된 형태의 음악 안에, 가장 순수하고 그리웠던 과거의 조각을 심어 놓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샘플링이 가진 역설이자 힘이다. 이것은 나약한 도피가 아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부서진 기억의 조각들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의 가장 솔직하고 창의적인 생존 전략이다.


결국 이 음악들은 시끄러운 소음의 성을 쌓아 올려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안에 작고 따뜻했던 유년기의 방을 비밀스럽게 만들어 놓는 현세대의 자화상이다. 그들은 가장 혼란하고 과잉된 형태의 음악을 만들면서, 그 안에 가장 순수하고 그리웠던 과거의 파편(샘플)을 심어 놓는다. ‘감각 과잉 속에서 결핍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 이것은 어쩌면 이 시대의 청춘이 보내는 가장 절박한 구조 신호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겠다는 가장 아름다운 선언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뽕짝, 가장 촌스러운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