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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제르 Sep 11. 2023

어린 아이의 기저귀를 들춰보듯

수많은 눈물로 빵빵해져서 울부짖는 나의 감정 돌아보기

  지난번에 우리는 <쇼케이스에서 마카롱 꺼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초보 엄마와의 마카롱 원정대에 비자발적으로 동행되곤 했던 첫 아이는 어느덧 유치원생이 되었어요. 이제 저는 더 이상 저를 위한 마카롱을 사지 않아요. 다만 두 아이가 마카롱을 무척 좋아해서 하원하고 나면 종종 초코 마카롱을 사러 나서곤 합니다. 우리 집에서 마카롱은 옛이야기의 "자꾸 울면 곶감 안 준다-!"의 '곶감'을 맡고 있는 셈이죠.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닌 마카롱이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요. 저는 커피와 디저트, 술을 좋아하거든요. 힘들 때마다 술을 먹는다는 건 어쩐지 알코올 의존증의 국면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라 패스. 빵은 맛있지만 대개 예쁘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니 패스. 케이크보다는... 그냥 마카롱이 좋았던 것 같아요. 형형색색 온 정성을 다해 빚어지고 구워져 쇼케이스에 진열 아니 전시된 마카롱들을 보는 게 소위 말해 저에게는 힐링이었던 거죠.  


  결혼 전 직장에 다닐 때는 어린 아기와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언니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눈치 볼 상사도 없고 이상한 동료도 없으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남향 집에서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은은한 파우더향이 나는 아기와 꽁냥대는 시간을 보낼 언니들이 부러웠지요. 아이가 조금 크면 어린이집에 간다고 하던데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동네 엄마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날을 기대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아이 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많이 생겼지만요, 8년 전 그때는 모르기도 한참 몰랐습니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 예전의 제가 영혼 없이 위로하고 속으로는 부러워했던 수많은 '언니들'에게 마음속 깊이 공감하며 사죄했습니다. 


  당연히 큰 착각이었지요. 아기의 모든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눈치를 봐야 했어요. 지금 졸린가? 지금 배고픈 건가? 본인도 잘 모르는 아기의 마음과 생리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묻느라 나의 안녕과 복지는 뒷전이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기의 기저귀를 열어봤지만 하루 이틀 사흘... 화장실 한번 마음 편히 가지 못했던 나 자신은 돌아봐주지 못했어요. 


  '누가 화장실 가지 말래?', '누가 샤워하지 말래?' 


  예. 아기들은 어른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워낙 뭘 잘 먹지 않던 첫 아이였던지라, 아이주도이유식이라는 걸 했었어요. 찐 야채나 쌀가루를 묻혀 구워 만든 스틱 같은 것을 차려 주면 아이가 직접 탐색하며 손으로 집어 먹는 방식이지요. 분유도 잘 먹지 않던 아이였는데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떠 먹이는 것도 잘 먹지 않더군요. 보통 분유를 잘 안 먹으면 고형분인 이유식을 잘 먹는다고 하던데 우리 아기는 그냥 먹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였어요. 하루종일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음식들을 만들어 대령했습니다.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첫 경험이니 낯설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만져보고 맡아보며 탐색하다 보면 입 속에 한 번은 들어가겠지 싶었지요. 처음 며칠은 독이 묻은 음식을 대하듯 하더니 나중에는 한 입, 두 입 조금씩 먹기 시작했어요. 식탁 아래는 어떨지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시겠죠. 아이의 식사가 끝나면 씻기고 더러워진 바닥을, 식탁 의자의 시트 사이사이를, 식탁 위를 치우고 닦아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언제쯤 측은지심이라는 게 생길까? 언제쯤 고개를 수그리고 식탁 아래에 들어가 제가 저지레 한 음식물들을 치우느라 고생하는 어미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는 게 생길까?"


  어느 날 곁에 있던 남편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었지요. 내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돌려 본다면 불쌍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아기의 기저귀를 들춰 보는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도 들춰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카롱이 별다른 위로가 되는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작게라도 위로가 될만한 아이템이 없으신가요? 그럼 '아직' 못 찾으신 겁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주관적인 힘듦의 강도가 다르고 회복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를 거예요. 이미 아무런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소진된 상태일 수도 있을 테고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아주 크거나 값비싼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별 수 없이 나를 너덜한 상태로 내버려 둘 건가요? 수많은 눈물을 머금은 채로 빵빵해져서는 제발 들여다봐 달라고, 새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새 힘을 달라고 울부짖는 내 감정을 더 이상 못 본 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대접할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너무 비싸지 않고(언제든 접근이 가능한 방법일수록 좋아요.) 지금 현재 나에게 소소한 만족감을 있는 것을요. 


  다음 글에서는 좋다는 거야 당연하지만 진부하고 새해마다 계획하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을 돌봄 노동자 가이드의 두 번째 방법으로 소개하려고 해요. 어떤 방법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좋은 거 알지만, 잘 안 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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