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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제르 Oct 30. 2023

살아있는 자의 방 청소

저 여기 언제까지 와야 해요?

"저... 선생님, 저 언제까지 이거(상담) 받아야 되는 거예요?"


  회기를 마무리하면서 질문이 있느냐는 말에 내담자가 물었다. 상담에 오기 싫어서 묻는 것인지, 아니면 얼마나 상담을 받아야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그의 질문에 담긴 뜻을 헤아리려 잠시 골똘해졌다.


"글쎄. 성우(가명)는 선생님이랑 얼마나 더 보면 될 것 같아?"


"잘 모르겠어요."


"토요일에는 쉬고 싶은데 여기 오기 힘들지?"


"네... 조금 더 자고 싶어요. 오늘도 알람을 세 개나 맞춰서 겨우 일어났어요."


  성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계속 오겠다고 했다. 시간을 뒤로 늦춰볼까? 물으니 "아뇨! 괜찮아요. 그 시간엔 일어나야죠..." 하며 주말의 꿀 같은 늦잠을 단념하는 목소리를 낸다.  


"성우야, 선생님은 너에게 몇 번을 더 와야 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줄 수는 없어. 그런데 앞으로 우리의 방향에 대해 한 번 더 설명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아. 한 번 생각해 볼까? 성우에게 오랫동안 방치된 방이 있어. 계절 지난 옷이 의자나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먹고 난 간식 껍질들과 부스러기로 엄청 지저분해. 누가 따로 쓸고 닦지도 않아서 바닥이고 책장 위고 먼지가 뽀얗게 앉았어. 언젠가 음료수를 마시다 흘린 자국은 아직도 끈적하게 남아 있네. 그동안 이 방에서 지내는 게 퍽 불편했을 거야. 그래도 그럭저럭 익숙한 곳이고, 무엇보다 네 공간이니까 불편해도 지내왔겠지. 하지만 방은 점점 더 지저분해졌고, 이걸 그대로 두면 나중에는 청소하기가 더 힘들어질 거야. 자, 이 방을 다 치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내담자들이 '자신의 방'을 치우고 정리하는데 곁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방을 정리하려면 첫 번째, 무엇을 버릴지 결정해야 한다. 먹고 난 간식 껍질, 음료수 병, 다 쓴 로션 통, 슥 닦고 아무 데나 둔 휴지 조각 등 쓰레기를 먼저 골라내야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쓰레기라고 다 같은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 데나 버릴 수도 없다. 원래의 성질대로 분리하여 배출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고민이 필요하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도 버려야 한다. 맞는 시기가 지났거나 오래되었거나 헤어졌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나에게 유효하지 않은 물건들이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구석에 앉아 물건의 표면에 어렴풋이 묻어 있는 땟자국과 같은 기억들을 어루만지며 회상한다. 그러다 '역시, 추억은 남기는 거지.' 하며 꼬깃꼬깃 다시 열지 않을 서랍 속에 도로 넣기도 한다.


  이는 상담 혹은 치료 장면에서 내가 더 이상 지니지 않기로 한 옛 것을 골라내고 버리는 과정이다. 예전에는 의미 있던 것이었지만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할 때, 혹은 계속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나를 괴롭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처리' 해야 한다. 첫 단계부터 참 어렵다. 방주인(내담자)의 고민과 수고,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음은 쓸고 닦는 일이다. 뽀얀 먼지를 걷어내고 끈적하게 달라붙은 묵은 때를 물에 불려 닦아낸다. 회색빛이었던 바닥이 본연의 장판 색을 드러낸다. 불투명했던 거울과 창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내가 비로소 투명하게 비추어 보인다. 그동안 나를 우울하게 했던 무언가, 불안하게 만든 누군가, 강박적인 행동을 지속하게 만든 그것들이 촘촘한 거름망에 떠오른다. 나를 괴롭혔던 불순물이 걷히고 고여 있던 물을 흘려보내면서 깨끗해진다. 방의 주인이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점검하고 정리하며 새롭게 필요한 것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다.


  시간이 흐른 정도에 따라 어떤 것은 이미 물이 들어 지우기 어려운 것도 있을 것이다. 기껏 닦아 광을 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랜만에 마주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비쳐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벌거벗은 기분이라니! 차라리 초라해진 줄도 모르고 살걸. 그저 뭣 모르고 철없던 기억으로 살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오랫동안 품고 살았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니 전보다 선명해진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제와 어제가 아닌, 오늘과 내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안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불순물을 알아차리고 걷어내 버린 뒤(문제의 해결 이후)에는 온전한 맨얼굴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가진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정리하고 필요한 것, 새로운 것을 들여올 수 있다.


  성우로 하여금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성우가 잘 지낼 수 있도록 그에게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는 스트레스 대처 기술일 수도 있고 대인관계에서의 의사소통 방법일 수도 있다. 삶은 공부의 연속이기 때문에 공부의 기초가 되는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어떤 문제 행동이 빠르게 해결될 수는 있겠으나, 단순히 문제 행동의 중단이 곧 치료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나의 기준으로는) 한창일 때 상담을 마음대로 종결하는 내담자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자신의 마음의 방'을 다른 사람이 대신 청소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방을 청소하는데 함께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기꺼이 그의 방 문 앞에 서있을 것이다.  


© jxk,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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