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먼저 키우는 첫 글
2022년 여름 첫째가 다섯 살, 둘째는 18개월 즈음이었으려나. 둘째의 어린이집 입소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에서는 나의 복직 계획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글쎄요." 복직을 고민하기에는 휴직기간이 2년은 더 남아 있었다. 막내인 둘째가 유독 어리게 느껴져서 그랬는지 복직은 당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복직에 대한 고민은 사실, 첫째를 갖기 전부터 해온 나의 오랜 고민이기도 했다.
일단 갖고 낳으면 어떻게든 해결된다며 임신을 종용했던 주변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 유례없던 몇 해 간의 지독한 팬더믹이 지난 뒤 주변에 남은 이들은 복직에 실패하고 "전업맘"이 된 친구들 뿐이었다. 공부를 많이 했거나 똑똑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아온 그녀들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주말부부를 하거나 돌아가며 휴가를 쥐어짜 내고 또 부모님께 신세 져 가며 아이를 키우다가 계속되는 팬더믹에 두 손 두 발 들고 제 발로 직장을 나온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비슷하게 배웠거나 더 많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임금에 못 미치다 보니 결국 남성의 경제 활동에 몰아주기로 하고 "못해먹겠다."며 나오게 되는 능력 있는 그녀들의 결정이 못내 안타까웠다. 이내 내 상황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대로 나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전업맘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집안을 돌보는 이들은 더 대단하다. 다만 라면이나 계란 프라이, 미역국 정도의 요리만 가능한 나에게는 집에서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서의 일들은 내가 가장 소질 없는 영역의 일들이었기 때문에 자존감이 자랄 수가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은 부모님의 자랑이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곳이었다. 적어도 직장은 그랬다. 나로서도 그곳에서의 일이 참 즐거웠다. 사람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내가 두 아이를 낳은 동안 그는 직장을 떠난 상태였다. 이제 언제 돌아가도 상관없는 곳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어쩌지' 싶었다.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시겠다며 이런저런 제안을 해주셨지만 몇 푼 벌자고 평생 여행을 즐겨오신 분들의 발목을 잡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명색에 아동청소년 심리학 전공인데 남 좋은 일 하려고 공부했냐며, 내 아이들은 내 손으로 돌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전공을 살려 내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스멀스멀 텅 비어 있던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직까지 남은 시간은 2년. 대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쓸 1년을 남겨두고 복직한다고 한 것을 감안하면 1년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공부하고 수련하고 프리랜서로 소소하게 시작한다면 1년 정도 지난 뒤엔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고 책을 더 많이 읽었다. 예전에도 드라마나 넷플릭스에는 큰 흥미가 없기는 했지만 시즌이 끝나면 허무하고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자극이 아니라, 해낼수록 고무되고 어쩌면 이 일로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날로 성장해 갔다. 중간중간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더 농도 짙은 일을 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을 때였음에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당장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에 감사함으로 임했고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해냈다. 그렇게 어느덧 처음 마음먹은 때로부터 10개월이 되었고 이제는 직장에 퇴사 통보를 앞두고 있다.
'나를 먼저 키우는 글쓰기' 매거진에서는 애 둘 낳은 육아휴직러가 휴직기간을 어떻게 기회로 살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글을 남겨 보기로 했다. 아마 돌봄 노동자가이드 시리즈와 맞물리는 내용일 수 있겠다. 다만 보다 더 개인적인 고민과 성찰을 담을 곳이 필요해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읽는 모든 엄마들이 자기만의 방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