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는 식의 자기 계발서에는 끌리지 않지만 마음을 울리는 책을 읽고 나면 몸이 절로 움직인다. 잘된 사람이 으스대는 소리는 듣기 편치 않지만 멋진 사람이 허당기 가득한 이야기를 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 진다. 그 역시 부족한 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멋진 사람이 된 것임을 의미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몇몇 멋진 여성 선배들을 만났다. 그녀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엄마이든 아니든 간에, 서로 아는 사이이든 책을 통해 나만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이든 간에. 그녀들과 이야기하거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아직 해당 분야가 '핫'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애매모호함을 견디고 한계를 깨부숴 가며 결국에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멘토가 되고 조력자가 된 선배, 자신은 '라떼 시절' 아이 키우고 일하며 힘들게 일궈냈지만 정작 같은 여성 후배들에게만큼은 덜 힘들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포근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선배, 여러모로 자리 잡고도 남은 1세대 전문가이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후배들을 가르치고 양성하는 선배...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나에게도 그녀들이 앞서 지나갔던 10년의 시간이 흘러 지나갈 것이다. 동일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무엇이 되어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10년 뒤인 40대 중반의 나는 여전히 상담, 치료 일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까? 학위는 여전히 그대로일까? 더 공부하지는 않았을까? 공신력 있는 자격증을 더 취득했을까?(사실 이 부분은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내 마음을 괴롭게 만들 것 같다.) 내고 싶다던 책은 한 권이라도 냈을까?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을까? 아님 동기들과 동업을 하고 있을까? 혼자 뭘 차릴 깜냥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첫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꽤나 중심 잡고 양육해 왔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이후 10년 동안에는 어떤 엄마의 모습이었을까? 남편도 나도 많이 늙었겠지. 머리가 희끗해지거나 빠졌거나 주름이 생기기도 기미가 짙어지기도 했겠지. 나이 든 사람의 얼굴 속 주름진 모습을 통해 그의 젊었을 적 성품을 알 수 있다던데 우리의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은 아름다운 미소의 자국일까 짜증 내고 화냈던 흔적이 남은 자국일까.
몸에 좋은 약이나 피부관리와 같은 것으로 세월이라는 놈과 '아이템 전'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든 아이템은 다 써버릴 수 있기 때문에 '노 아이템 전'으로도 충분할 기본 실력이 필요하다. 유명한 한약방에서 달여 만든 보약도 고가의 피부과 시술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실력일 테다. 내가 매일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에 세월이라는 힘이 붙으면 그것은 전문성이 될 것이다. 누군가 대신 돈을 주고 사다 쥐어줄 수도 없는 것이 전문성이다. 내년 8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흘렀을 1년 동안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이며 무엇을 나의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될까. 이 질문들은 적어도 일과시간만큼은 결코 나를 침실로 가 드러눕지 않게 만든다.
쓰다 보니 자기 계발서의 내용 같지만 현실은 다음 달 치를 시험공부에 도무지 집중이 안되어 끄적인 글이다. 동등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할 내 모습은 어떨까? 오래된 동네의 매미 소리를 들으며 폭염에는 어림도 없지만 제 딴에는 애쓰며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공부를 시작한 이 여름 시간. 아마 나의 이력에 한 줄 더 쓰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