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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ez May 04. 2022

글쓰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여행에디터가 되고 잃은 것


1년의 세계여행 이후 여행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공인 심리상담에서 아주 멀리 왔지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운 좋은 사람입니다.



여행에디터는 입사하고 어떤 걸 배울까? 비문을 고치는 법, 클릭을 부르는 카피를 쓰는 법, 검색 노출을 위한 키워드 넣는 법을 배운다.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줄 스킬을 습득해가는 것이다. 글은 어떤 걸 쓰게 될까? 상사와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춰 감상은 덜고 정보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로 정형화되어 간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써야 할 양은 많다 보니 훈련이 필요하다. 여행에디터로 입지를 다지고 싶었기에 개인블로그에 1일 1포스팅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편이라는 규칙을 지키려 여행을 떠날 때도 노트북을 챙기고, 술을 마시고도 책상에 앉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밤 12시를 넘기기 전에 포스팅을 올렸다. 처음에는 4시간을 앉아 있어야 겨우 올릴 수 있었는데 1년이 지나자 30분이면 포스팅이 뚝딱 완성되었다. 일 년 만에 글쓰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이다. 그러자 회사에서 주어지는 어떤 주제도 가뿐히 쓸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의 코멘트가 붙지도 않고 곧장 발행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런데 왜 재미가 없을까?





내 글에는 주어가 없었다.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글을 발행해야 하니까 사람이 드러나지 않는 게 자연스럽지만, 개인 블로그에서도 내가 빠져있었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이상하지 않을, 주인 없는 글을 쓰고 있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지 않다 보니 생각마저 게을리하게 된다. 이전에는 여행을 가면 감정과 생각으로 머리가 바삐 굴렀는데, 지금은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 찍느라 손이 바쁘다. 이러다 평생 재미없는 글만 쓰게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내가 있는 글을 써야겠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하다. 3년 전 인도여행에서 썼던 글을 열어본다. 어쩜 그렇게 솔직하고 당돌하게 그때의 감정을 실었을까? 어쩜 저렇게 긴 호흡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을까? 여행에디터가 직업이 되면서 글쓰는 법을 잊어버렸나 보다.

수천 명의 팔로워도 없고, 수년간 쌓인 포스팅도 없는 백지에서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과거의 여행기, 정보성 여행 글도 아닌 지금 내가 여행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지금 하는 생각과 감정이 가장 나다운 것일 테니까. 브런치에서 다시 나다운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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