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혼자 한강에 다녀왔다. 오후 3시에 눈을 뜬 휴일이었다. 대강 끼니를 때우고 누워서 야구를 보던 하루였다. 번트 세 번에 속수무책으로 무사 만루를 내주더니 순식간에 싹쓸이 안타를 맞았을 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에 해가 지고 있었다. 느닷없이 밖으로 나와 한강공원으로 갔다. 강 건너편으로 하늘이 보이는 둔치에 캠핑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하늘이 주홍색이었다. 벌써 하루가 지는 게 아쉬워서 해를 따라 나왔던 날이었다.
얼마 만에 앉은 캠핑의자였다. 등을 완전히 기대어 누운 듯 앉아서 처음 의자를 써봤던 때를 생각했다. 너른 공원에 내 자리를 잡고 앉은 기분이 좋아 자주 쓰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두어 번 쓰고 끝이었다. 굳이 시간 내어 밖에서 누운 듯이 앉아 있을 바에는 편안한 방 안에서 누워 있는 게 편했던 것이다. 정신없는 평일 뒤에 주어지는 찰나 같은 주말에는 침대라는 고속충전기에 내 몸을 딱 붙여 두는 게 제일 좋았던 것이다.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미뤄둔 잠도 다 잤던 휴일이었다. 햇볕을 쐬는 게 좋다고 글을 썼던 게 생각나서 갑작스레 밖으로 나왔다. 햇볕은 못 쐬었지만 연보라색이 섞인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좋아하던 노래를 들었다. 노을을 보면서 아무 생각 않고 머리를 비우려고 했다.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는 늘 일 생각이 났다. 일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미뤄둔 일, 앞으로 할 일, 하면 좋을 일, 일어나면 안 될 일, 그런 일 생각들이 언제 할 것도 없이 쫓아왔다. 쫓아오면 그대로 돌아 응전해줄 방법도 있겠지만, 일터를 벗어나서 일을 하는 게 싫었다. 먼 일터에서 진이 빠진 채로 꽉 막힌 길을 느릿느릿 돌아온 뒤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드물게 정신을 붙잡고 쌓인 일을 해치운 날이 있긴 했다. 그런 다음날은 바로 새로운 일이 쌓였다. 애초에 일이 끝난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출퇴근길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내가 쳇바퀴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매주 주어진 일을 소화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될 줄 알았건만 쫓기는 일주일만 반복됐다. 앞으로도 이렇게 일에 끌려가는 게 정해진 운명일까. 사실 그런 허무함도 매주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순간의 작은 행복에 집중하겠다는 자구책으로 대응했다.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캠핑의자에 기대어 앉아 쳇바퀴를 달리던 나를 생각했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진짜 내 우리 안에는 쳇바퀴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해바라기씨 몇 개 밖에 없던 거였나.
해는 모습을 감추고 하늘은 짙은 보랏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의자를 접고 한강공원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일을 하기 전엔 한강에서 산책을 자주 했다. 그때 했던 생각 그때 했던 것을 떠올렸다. 에어팟에선 몇 번씩 돌려 듣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