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연말이었다. 매번 가보려고 마음만 먹었던 예쁜 카페에 왔다. 노트북을 펴고 오래간만에 워드를 열었다. 거리에 쌓인 눈처럼 새하얀 화면 앞에서 손가락이 어떻게 걸어갈지를 모르고 주저했다.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얼마 전에 꿈이 있냐는 질문을 들었다. 있는데, 글쎄 일하기 바빠서, 미뤄두고 있네요. 당황해서 진심이 튀어나왔던 것 같다. 평소엔 꿈같은 거 없이 현실에 찌든 직장인인 체했었다. 꿈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 먼저 한 다음 속으로 돌아보았다.
글을 안 쓰고 있지만 가끔 썼던 글을 읽어본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 주로 읽는다. 지금 생각과 다른 글도 있고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글도 있다. 내가 썼지만 잘 썼다 생각하는 글도 있다.
쭉 읽다 보면 내용이 다 똑같다. 다른 소재들로 이야기를 풀어쓰고 끝에 가선 나는 괜찮다고 다짐하는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괜찮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진부한 비망록이었지만 혼자 흡족하게 읽으며 스스로를 잠재웠다.
2024년에도 새해 다짐을 했다. 올해는 현실적으로 했다. 매일 이룰 수 있는 것들만 했다. 그리고 미뤄둔 꿈을 현실적으로 꾸려고 다짐했다. 거창하게 생각하다 또 미루지 않고 몇 걸음이라도 나아가 보려고 다짐했다. 괜찮다 괜찮다 하다 보니 그 정도만으로 흡족하다.
하얀 화면 위에 멋대로 걸음을 떼고 본다. 걷고 싶은 사람은 결국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마음이 동하는 것인데 겁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잘도 아닌 체했다.
그렇게 쓴 글을 며칠 내내 다시 읽어봤다. 밤마다 만족스럽게 잠들고는 다음날 낮에 다 지우고 새로 썼다. 이러다 금방 질릴까 봐 오늘밤까지만 고치기로 결심했다. 내일도 모레도 더 고칠 게 있겠지만, 걸음을 떼는 것만큼 걸어가는 것도 중요한 거라고 결심해 보았다.
분명 눈만 깜빡이는 밤에 또 읽고 있을 거다. 괜찮으니 계속 걸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