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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Sep 05. 2019

안녕.

한 손의 손가락을 다 쓰고 옆 손의 손가락 몇 개를 빌려와야 할 만큼, 딱 그만큼의 '죽음'을 겪었다.

'겪었다.'는 말을 써도 될까? 대부분의 죽음은 내게 직접적으로 찾아오는 법 없이 나를 빗겨가주었다.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죽음은 누구의 죽음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아주 어렸고, 장례식장은 시끌벅적했으며, 나와 사촌들은 그 곳에서 별 의미없는 시간을 보냈다. 게임을 하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하면서 그 곳이 죽음이 와닿은 곳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말이다.


같은 학교의 친구가 죽었을 때는 그저 학급의 부반장으로서 학교에서 진행된 장례식(혹은 추모식)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몇 번 인사를 했던 게 전부였는데 식에 참여했다 돌아온 교실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어땠냐는 친구들의 물음이 그렇게 서러웠을까. 죽은 친구는 다시 볼 수 없고 남은 그 가족들은 그 슬픔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데, 그저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무서웠던 것도 같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무도 없는 집 거실에서 혼자 메이플 스토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도통 용납되지가 않았다. 이 모든 죽음을 겪을 때, 나는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지도 모른 체 시간을 보냈다. 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없을까? 왜 우리는 그들이 죽음을 맞을 때 함께 괴로워해줄 수 없을까? 그런 물음들에 시달렸고 또 앞으로도 시달릴 것 같다.


그 분의 죽음이 먼저였는지, 친할머니의 죽음이 먼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는 그 날 힘겨워하던 친구의 목소리만이 남아서 죽음보다도 남은 자의 슬픔이 더 와닿았다.


스무살에 만나 내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신 분은 스물 한 살에 떠나보내고는 제대로 울어보지도 않았다. 그 분의 부고문자는 내게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 휴대폰으로 왔다. 잠깐 머리가 멍했지만 가족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서 참았던 것이 그 후로도 도통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괜찮냐는 엄마의 물음에 그저 '응.'하고 답하고서는 삼켜졌다. 스물 셋에 처음으로 그 분의 납골묘를 찾았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겨우 찾은 그 묘는 너무 단정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이상하게 안심이 갔다. 묘를 찾으면 어떻게 눈물이 날까 했는데 그 날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저 왔습니다.'하고 인사했을 뿐.


그리고 얼마 전엔 내 기억이 온전할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한 우리 집 막내, 봄이가 떠났다. (봄이는 아주 조그마하고 예쁜 하얀색 말티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라서 괜히 성질을 내던 착하지만 못된, 사는 게 서툴렀던 귀여운 내 동생이었다.) 미팅을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원래 대중교통에서 전화 하는 걸 싫어하는지라 두 번쯤 전화를 거절했을 때, '아, 이건 받아야 하는 전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다시 걸었다. 이미 그 새벽에 봄이는 떠났고 남은 자의 전화였다. 눈물이 나는데 사람이 많아서 울 수가 없었다.


겨우 미팅을 다녀와서도 집에 친구들이 와 있어서 제대로 울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봄이의 죽음을 전하고 조금은 울었지만 금새 다시 울음을 삼켰다. 나 때문에 가라앉는 분위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죽음은 늘 그 당사자들에게만 슬픈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슬픔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봄이는 내가 없는 집에서 죽었고, 나는 봄이를 못 본지 반년이 넘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집을 나와 살았으니 어쩌면 또 다시 봄이의 죽음이 나를 빗겨간 것이다. 이제껏 모든 죽음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으니,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죽음을 마주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걸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제대로 슬퍼해보지 못한 것이?

봄이 사진을 보거나 봄이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이 나지만, 그렇다고 오열할 정도로 우는 것은 아니다. 슬프다고 생각은 하는데 잘 체감되지가 않는다. 정말 봄이가 떠났을까? 떠났겠지. 하지만 정말일까? 이번 추석에 집에 내려가면 나를 반겨주는 봄이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은 봄이의 죽음을 와닿게 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자에게 있어 상실일테다.

나는 봄이를 상실했고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아마 추석이 오면, 처음으로 죽음에 닿아보게 될 것 같다. 그때는 많이 슬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꾸 삼키고 삼켜서 갖고 있으면 떠난 자도 불편할테니 눈물과 함께 잘 보내줄 수 있도록.


잘 가, 장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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