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 Nov 01. 2024

'나다움'을 찾고자 한다면

평소와는 다른 골목으로 들어선 퇴근길, 우연하게 팝업 전시를 발견했다.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적인 주제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구'와 '기록하는 사람들'. 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관련 어플을 설치해야 하고, 사소하지만 조금은 귀찮은 절차들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이 공간 안에 담겨져 있는, 기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에.


인내의 시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보니 작가 7인의 기록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라 엇비슷해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모두 제각각 개성이 뚜렷했다. 같은 '기록'의 형식이지만, 작가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게 되었을까? 답은 그들의 기록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좋아서 하는 기록> 심다은



나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발견하여 나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 있다. 바로,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내기. 이는 '나'를 탐색하며 깊이 파고들었을 때 가능하다. <좋아서 하는 기록>의 저자 심다은의 작업 기록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솔직한 마음 상태 등등.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 몰입할수록 '나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이는 '나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게 단단히 받쳐줄 때, 꾸준히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고, 경험하는 것들을 내 식대로 소화할 수 있는 거겠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가운데 ‘인간’은 가장 잘 드러난다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이 말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말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요즘은 너도 나도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대로, 어디서 들어봤는데, 이게 유행이라던데, 누구의 취향에서 시작되었는지 불분명한 것들이 여기저기 도처에 널려있는 시대다. 자칫 게으름을 피우다보면 남의 취향을 내 취향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왜 이걸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만의 뚜렷한 이유를 찾아보자.



나는 왜 '기록'과 '문구'라는 단어에 끌려 즉흥적으로 전시를 관람했을까. 그게 나의 어떤 점을 드러내는 경험일까, 생각해보았다. 답은 단순했다. 나는 '기록'하는 행위와 그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정말 그럴까? 나만의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음, 나는 기록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내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는 크고 작은 생각들이 글로 쓰여질 때 차분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좋다. 해방된달까, 자유로워진다.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거침 없이, 두서 없이 막 내뱉을 때의 쾌감적인 글쓰기도 좋고. 어느 정도 표현의 제약이 있고 불특정한 독자를 고려해야 하는 공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것도, 막상 해보니 제법 즐겁다. 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일상이 기록될 만큼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거니까.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경청해주는, 내가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계속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큼 나를 생각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