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다이어리 구입 욕구가 샘솟는 시점이다. 서점이나 문구점에 가보면 벌써부터 2025년 달력과 함께 다이어리가 진열되어 있다. 다양한 디자인과 다양한 탬플릿의 다이어리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그 세계로 들어가 보면 크기나 구성이 제각각이기에, 자신에게 딱 맞는 다이어리를 찾기 위해서는 나름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오랜만에 만난 오래된 친구들. 문득 이들의 기록 생활이 궁금해졌다. 그동안은 한 번도 이 친구들이 어떤 다이어리를 어떻게 쓰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요즘 내 관심사가 '기록'이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기록가인지 궁금하기에 질문했다. 내년도 다이어리를 구입할 것인지. 둘 다 '당연히' 구입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너희들은 다이어리에 뭘 기록해? 다이어리 구입 기준이 있어?"
"나는 무조건 무지. 주로 마스킹 테이프나 스티커를 꾸미는 용도니까. 아니면 특별하게 여행 가거나 친구들과 시간 보냈을 때 사진 찍은 거 출력해서 기록하는 정도?"
"아 진짜? 먼슬리나 위클리 이런 건 필요 없어?"
"응. 나는 대신 매일 쓰지 않으니까 다이어리를 오래 쓰는 편이라, 표지가 예뻐야 해.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신기하다. 너는?"
"나는 두 개 정도 구입 예정. 하나는 먼슬리 큼직한 것만 있는 얇은 거. 가계부 쓰는 용도로 쓸 거야. 하나는 고민 중인데, 손바닥만 한 작은 사이즈로 살까 해."
"손바닥만 한 건 작지 않아? 크기가 중요한 이유가 있어?"
"응. 그 다이어리 먼슬리에는 업무나 개인 일정 적는 용도, 위클리에는 일기를 쓰는데 칸이 크니까 좀 부담되더라고? 그리고 나는 공백 칸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어. 예를 들어 내가 일이 바빠서 3일 쉬었잖아? 그럼 일단 그날부터 쓰면 되는데, 그 3일 치를 미리 다 써야 현재 시점을 쓸 수 있어. 그러다 보니 한 번 밀리면 쓰기 싫어지고, 칸은 크게 느껴지고. 그래서 올해 아마 5월부터 안 썼을걸??"
"아 무슨 마음인지 알아. 빈칸으로 두는 거 진짜 싫지."
"근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다이어리 바꾸려고? 너는 어떤 다이어리 쓰는데?"
"아, 나는 형식이 정해져 있는 다이어리는 작년부터 안 샀어. 난 만년필 쓸 수 있는 유선노트에 내가 날짜 쓰고 일기 써. 어쩔 땐 길게 쓰고, 어쩔 땐 짧게 쓰고. 나도 위클리에 일기 써봤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는데, 그걸 동일하게 채워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을 느끼게 되어서인지 쓰는 걸 미루게 되더라고."
"아 다이어리를 완전 일기장으로만 쓰는구나. 쓸 말이 많은 가보다. 대단하다. 난 오히려 빈 줄이 더 힘들던데. 차라리 쓸 공간이 정해져 있는 그 칸의 단호함이 좋더라. 안정감을 준다고 해야 하나. 딱 그만큼만 채우면 되니까."
"각자 기록 스타일이 다 다르네. 재밌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버스 안에서 내내 다른 사람들의 기록 생활을 훔쳐보았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게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화려하게 스티커를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 그림일기 혹은 만화로 표현하는 사람, 1시간 단위로 추적하며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 사진을 출력하여 자신의 감정과 함께 기록하는 사람 등등. 내가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의 알고리즘은 정말 유용한 도구인 듯하다. 점점 클릭해서 볼수록 인공지능이 내가 추구하는 기록 스타일, 내 취향과 비슷한 기록 스타일을 추천해 주었다.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고. 매일의 감탄력에서 공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견물생심.
어떤 사람이 자신의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기록하는 만큼 내가 된다. 내 시간을 아끼는 방법 : 쓰기'. 매우 공감했다.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멍하니 보는 것보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이 훨씬 귀중하고 값지다.
여러 사람들의 기록 생활을 구경하다가, 나도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생겨서 바로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2025년 새해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11월부터! 어차피 기록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일단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써보면서 내 기록 스타일을 찾아가는 걸로 마음을 굳혔다. 내가 추가한 다이어리는 바로, 원하는 탬플릿을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는 불렛저널. 내 사적인 생각이나 경험을 긴 호흡의 글로 가져가는 일기장은 그대로 쓰되, 하나를 더 추가하는 거다. 일단 11월 불렛저널 세팅은 감정 한 줄 일기, 감사 일기, 습관 형성, 식단 일지, 지출 기록. 이렇게 총 4개의 면을 할애해서 써보는 걸로 정했다.
지금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인데,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습관 형성', 해빗 트래커라고도 불리는 기록 형태.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은 것도 이것 덕분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습관을 정하고, 이를 실천했을 때 체크를 하는 간단한 원리다. 내가 그걸 실천하지 않으면 체크를 못하고 '공백'이 발생하니 굉장히 매우 거슬린다. 내일은 이걸 꼭 해야겠다, 매일 새롭게 마음을 다지게 된달까.
그래서 오늘은 하루 틈틈이 "오늘 브런치에 뭐 쓰지?" 고민했다. 아마 새로운 기록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늘 그랬듯이 "이따 뭐 먹지?"를 먼저 고민했을 거다. 나에게 생긴 변화가 꽤 흡족스럽다. 나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나라면, 이를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점을 찾아줄 수 있는 것도 나다. 공백을 불편해하는 나의 강박적인 성향을 해빗 트래커 기록에 적용하니 내가 원하는 모습의 생활, 건강한 나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역시, 어느 영역이든 간에 가장 핵심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