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쥴 Nov 02. 2023

11. 슬픔 Depression

Broken heart , Broken body


"쾅~ 빠직!"


식탁 의자에 세워둔 기타가 바닥에 떨어지며 큰 굉음을 냈다.

멀리서 기타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달려갔지만,
이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 깨진 상태였다.


사고를 친 아이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든 채로 얼어붙어서 휘둥그렇게 눈을 뜨고 있었다.

아이 귀에 꽂혀있는 에어팟에서는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요란한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이왕 기타가 깨진 거 새로 사자.'

'오히려 잘 됐어. 너무 오래된 기타야.'

나는 깨진 기타를 주우며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남편과 함께 낙원상가를 돌며 골랐던 올솔리드기타¹의 바디 부분이 찌그러지고 깨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이 기타를 사주고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 이거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나의 반응에 당황한 아이들은, 일주일 뒤 그럭저럭 수리된 우리의 기타를 나에게 다시 선물했다.




시가 사람들과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소통에 어려움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²

특히 시모의 프레임 안 세상은 남달랐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그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들의 병을 계기로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험악해져 갔다.


1. 시모 메세지, 2.간병인메세지. 3. 의무기록에 남아있는 히스테릭한 상황. 간병인들 사이에 소문이나 웃돈을 주지 않으면 구하기 힘들었다.  비용부담은 고스란히 나에게 가중됬다


그런 시모가 이제 남편의 핸드폰을 통해 나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면접교섭 후 아이들의 귀가를 챙기겠다고 하였으나 곧바로 강압적인 말들이 날아왔다.

"기다렸다 데리고 가"

그 변덕스러움과 단어들... 반복되는 왜곡과 삐뚤어진 말들은 분명히 남편의 것이 아니었다.


피고가 주도하여 면접교섭 이야기를 꺼내면 통보식으로 일정을 전하고, 피고나 사건 본인들의 다른 일정을 이야기하면 짜증을 내고 비난을 가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고 준비서면 中)





보내 주세요


이건 분명 남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텍스트를 보낸 사람도, 그것을 복붙 한 사람도, 아이들의 아빠, 나의 남편이 아니다.



재판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보고해야 된다고


건강한 정신의 남편이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우리 아이들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애정을 담아 찍어 준 수많은 사진 속 아이들은, 아빠의 마음을 아는 듯 여전히 활짝 웃고 있다.


남편의 마음은 병의 무게와 함께 무력감으로 짓눌려있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다는 좌절과 시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 사이, 그 어딘가 남편이 있었다.



이렇게 온갖 핑계를 되(대)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런 남편의 무력감과 슬픔을 헤집고 들어가 아버지로서의 남편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조각난 아버지를, 나는 분해된 남편을 찾아 헤매었다.





매주 토요일 4시 원고는 아이들에게 전화한다. 월 1회 토요일 면접교섭을 한다.³


남편과 전화통화를 마친 아이가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아빠가 활동보조인이 중국사람이라 말을 잘 못 알아 들어서 불편하데요. 그래서 내가 도와드릴 수 있다고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 올 수 없데요”


나는 아이를 안으며 위로했다.

"혹시 또 그러시면,  엄마는 할머니네 집에 가 있겠다고 아빠한테 말해"


둘째가 혹여 비슷한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어 미리 언지했다.

“아빠와 대화하다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건 엄마와 직접 얘기하셔야 해요.’라고 말씀드려. 넌, 너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돼. 알겠지?”


둘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가 그런 얘기를 할까요?”


며칠 뒤 둘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아빠에게 ‘엄마와의 문제는 엄마와 얘기하시라’고 말했어요.”




우리의 소원은


12월 25일  나와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함께 소원을 빌고 초를 불어 불을 껐다.


막내는 나에게 들으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젤다의 전설⁴을 사달라고 빌었어"


갑자기 둘째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런 소원을 빌면 어떻게 이 바보야!"


막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다시 초에 불을 붙여달라고 했다.




우리의 상처는 곪고있었다.

전화를 받던 남편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남편은 문자로만 간헐적으로 답이왔다.

모자와 옷을 보내달라는 남편의 평범한 메시지들도 점점 시모의 문구들이 뒤섞이며 가혹하게 바뀌었다.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보내는 내 텍스트들은 그에게 온전히 닿지 못했고, 이제 그것 조차 차단했는지 읽지 않음 상태로 메시지 창에 메달려있었다.


그나마 아동삼담 조치로, 그 아슬아슬한 동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가의 그림자 아래에서 형식적인 조치와 소송서면으로만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들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고 시가의 영향력은 점점 강력해졌다.

난 악화되는 남편의 마음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부부상담이나 가족상담을 통해 최소한의 대화라도 이루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계속 요청했다.


서로의 상처와 오해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남편의 건강상태로 부부상담은 어려울 것 같다는 가사조사관의 의견에 따라,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4번째로 바뀐 판사는 그래도 남편의 말을 한 번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화면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화상 조정날짜⁵가 확정되었다. 변호사와 조정관들이 함께 참여할 예정이었다.


변호사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짧게라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했다.


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법원으로 갔다.

조정실 앞에서 변호사님이 그런 나를 먼저 알아보셨다.

"잠을 잘 못 주무셨나 봐요."


변호사님은 오늘 만나게 될 조정관님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오늘 조정관 두 분 모두 여기서 오랜 기간 활동을 하신 분들이세요. 여자분 남자분 각각 한분씩 들어오실 텐데, 남자분이 좀 엄하신 편이에요. 이쥴님에게 딱딱하게 말하더라도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변호사님의 조언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곧 남편의 얼굴을 볼 것이었다.



시부모


변호사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시부모님이 오셨어요."

검정 원피스에 망사장갑을 낀 시모가 시부와 함께 대기실로 들어왔다.

나와 변호사는 살짝 일어나 인사를 했다.


조정실에서 원고와 피고를 불렀고 변호사님과 나는 조정실로 들어갔다.

남편 변호사와 함께 시부모가 들어오려고 하자 조정관들이 곤란해하며 밖에서 대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정관들은 양쪽의 신원을 간단히 확인하고 오늘의 진행 순서와 방식을 간략히 설명했다.

"원고는 없지만 원고 측 대리인이 계시니 대리인과 먼저 원고 측 상담을 진행하겠습니다."

나와 변호사는 그동안 나가있으려고 조정실 문을 열었다.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순간,


조정실 문에 몸을 바짝 기대어 옅듯던 시모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시모는 급하게 얼굴만 돌린 채로 한동안 거기 서있었다.




조정관은 나를 달래듯 말했다.

"좀 전에 나가계시는 동안 ㅇㅇㅇ씨랑 화상통화를 잠깐 했어요. ㅇㅇㅇ씨에게 물어보니 건강이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여요. 그래도 이혼을 원하지 않나요?"


나는 그동안, 나와 아이들이 겪은 나날들, 그리고 버텨왔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여자 조정관의 눈가는 점점 붉어지다가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았고 남자 조정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조정실로 들어온 상대방 변호사는 대기하는 동안 시모와 이야기를 나눈 듯 앉자마자 말했다.

"시부모님 보고 인사도 안 하는 며느리가 무슨 혼인을 유지합니까!"


이변호사님이 강하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예요? 들어오시자마자 같이 인사했어요!! 거짓말 하지마세요! "


거짓말이 아니였다.

시모는 세상을 그렇게 알았다.

맘에 안든 인사는 안받은 것이고, 성에 안찬 용돈은 안 받은 것이다.




원고 측 대리인이 남편에게 화상 전화를 걸었다.

작은 화면에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남편 변호사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붙잡고 외쳤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나는 이혼을 할 거고. 이건 다 진정한 내 의사고!."

남편도 흥분한 듯 짧은 문장들을 내뱉었다.


"나한테 왜 어머니한테 연락했냐고 그랬지? 내가.. 무서워서 그랬어. 미안해..."

남편을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계속 물었다.

"왜 연락이 안 됐어? 중환자실에 갔다더니, 뭐가 더 나빠져서 다시 거기로 갔어?"


"이제 퇴원해서 집에 왔어. 중환자실은, 감기에 걸렸다가, 폐렴이 생겼는데, 일반병실로 갔다가...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봐. 나는 이혼할 거고...."

남편의 변호사는 전화기를 다시 챙겨서 급하게 인사하고 끊어버렸다.


그렇게 남편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물어볼 말이 너무 많은데,

남편을 보고 너무 흥분해서 다 망쳐버린 것 같았다.

창피하게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남자조정관은 퇴장하는 나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쥴씨 힘내세요! 엄마는 강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변호사님은 잠깐 커피라도 좀 마시며 진정하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카페에 앉아서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좀 가라앉으며 편해졌다.

"저 조정관들을 오랜 시간 뵈었는데, 저렇게 같이 울면서 힘내라고 말하시는 건 처음 봐요."


"전문가들도 제 사건이 쉽지 않은가 봐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힘들겠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변호사님은 나에게 물었다.

"이쥴님, 이제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아까 본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눈앞이 흐려지며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딱 일주일만이라도 휴가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편만 데리고 단둘이 있고 싶어요. 애들도 회사도 다 훌훌 털어버리고, 그냥 남편이랑 둘이, 맘껏 돌봐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부인-분노-코스프레(타협)-슬픔은 동시에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은 단어들만 뜨문뜨문 적어놓고 채우기가 힘들어 계속 외면하다 어렵게 적게 되었어요.


응원의 댓글을 보면서 힘을 내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앞선 제 글들이 재판부에 제출되어서 조심스러울 따름입니다.



1. 올솔리드기타

기타의 바디를 구성하는 앞판, 측판, 뒤판 모두를 단판 통나무로 제작한 기타. 좋은 저음과 탄력 있는 소리를 내어 소리의 질은 좋지만 가격이 비싸고 관리가 어렵다.

요즘은 아들이 주로 이 기타를 친다.


2. 소통에 어려움

당시 간병인들 사이엔 시모에 대한 소문이 나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시가의 다른 친척들과도 시모는 소통이 잘 안 됐다.


3. 매주 토요일 4시 원고는 아이들에게 전화한다. 월 1회 토요일 면접교섭을 한다.

아이들과 아빠의 만남은 서면으로 정했지만 그조차도 이행되지 않았다.


4. 젤다의 전설(The Legend of Zelda)

닌텐도에서 발매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 큰애와 막내가 특히 좋아한다.


5. 조정

이혼소송에서 조정은 재판 전에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해 이혼을 결정하는 절차이다. 조정은 법원의 중재 하에 이루어지며, 당사자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조정이 성립되며 만약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 사건은 조정 절차에서 소송 절차로 이행된다.


6. 시부모가 들어오려고 하자 조정관들이 곤란해하며 밖에서 대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이혼 소송은 부부 당사자 간의 문제로 취급되며, 부모님은 증인이나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시모와 시부는 이후에도 재판에 출석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코스프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