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 새벽에 홀로 깨어 반성하다.
악인 처럼 보이는 사람이 악인 처럼 행동하는 것엔 상대적으로 의연하면서도,
겉으로는 정말 멀쩡하고 교양있는 행동을 하면서 별 이유 없이 (찾아보면 무지 유치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에 대한 험담을 하거나 바닥을 슬쩍 내비치는 사람을 보면 전자보다도 더 짜증과 반감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인지상정이 잘못된 것은
'겉으로는 멀쩡하고 교양있는 행동을 한다고'
판단하는 부분이다.
사실 당사자는 전자보다 더 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찌질할 수는 있다.)평소의 언행으로 인한 기대치 때문에 당사자에 대한 짜증이 평소의 잘못된 기대만큼 배가 되 버리는 것인데,
여기서 애당초 '평소에 내비치는 교양이나 언행' 따위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가지는걸 경계 하면서도 좋은 선입관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좋은 선입관도 본질적으로는 나쁜 선입관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선입관 이란것이 사회생활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이긴 한데, 미약한 근거로 중요한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결국은 미숙한 사고의 결과다.
상대의 언행만을 보고 인성이나 사업에서의 판단역시 합리적이고 젠틀할거라 판단할거라는 어리석은 선입관은 결국
전라도 뒤통수나 김치녀, 씹치남 같은 말이나 어떤 나라 사람들은 국민성에 문제가 있다던지 (아 ..쓰다보니 생각나는데 난 스위스 사람은 매우높은 확율로 재수가 없다는 선입관이 있다. 이걸 깨뜨려줄 좋은 스위스친구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만. 역시 선입관이란건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결부되는 경우 반례없이 벗어나긴 힘들구나)하는 어리석은 선입관과 관계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평소 언행과 처음 추천한 지인을 통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고 내가 무슨 손해를 입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이익이 상충되는 상황에서는 상대의 거짓말까지 눈감으며 넘어간' 사람이 나에 대해 뒷딤화를 하고 다닌다는 것에 짜증이 확 나버렸는데,
곰곰히 생각하면 그런 짜증 역시 내 잘못된 기대와 선입관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졸렬한 적대감에대해 나 역시 적대감을 갖는다는게 갖는 이점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갖는 윤라적인 정당성도 전혀 없다.
사회생활에서 마주치는 상대는, 나쁘건 좋건간에 선입관 없이 관조하는 일이 필요하고 실망스런 상대라도 그가 약에 쓸 개똥이 될 때 까지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실제로 어떤 거래를 하거나 할때는 그 모든 선입관을 접어 두고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판단을 위해서는 나쁜 선입관, 좋은 선입관 모두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경영의 영역이건 학문의 영역이건 창작의 영역이건, 내가 스스로 사숙할 만한 분이라 생각하고 존중하고 존경하는 분들이 보이는 담담함의 실체가 바로 이렇게 판단을 유보하고 기다릴 수 있는 자질이구나 싶기도 하고
성경말씀에 나오는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맥락이구나 싶기도 하다.
어제 부질없이 짜증내며 나 스스로도 적대감을 내비친 일이 마음에 걸려 새벽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국 다 내 마음가짐의 탓이다.
돌이켜 나 자신을 보니 사람이 성숙해진다는게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 나 자신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인간적 성숙을 타인에게 기대하고 실망하지 말자.
스스로 제법 빠르고 명민한 판단을 한다고 자위할 때가 있지만 사실 다른 부분 뿐 아니라 인성의 측면에서 확실히 나는 원래 좋은 자질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아니고 끊임없이 반추하고 반성해야 겨우 사람 구실을 하는 지더린 사람이란걸 다시 한번 확인한다.
좋은 교육과 타고난 자질로 인해 일찍 품위와 현명함을 갖추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걸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그 기대에 근거해서 타인을 판단한다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타인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대해서만 판단할 것.
불필요하게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