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가족여행 마지막 날
뮌스터의 작은 성당에 들어섰을 때 거기서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함께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양한 이유들로 독일에 온 날들을 따져보니 이번으로 12번째건만, 맨날 일 때문에 오다보니 일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떠난 이번 여행에서야 처음으로 내가 중3때 천착했던 데미안의 한구절, 주인공이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접하는 장면이 생각이났고, 데미안과 같은 일종의 교양소설을 가능케 했던 독일 특유의 자기지향, 명상적, 구도적인 삶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의 초반을 지배해온 정서였다는 것도 떠올랐다. 이제 와서야.
에펠탑 야경이 가장 예쁘게 보인다는 샤이오 궁 앞에서 가족 사진을 찍으며 너무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며 감탄하던 아내는 인파속에서 칭얼대는 애들을 달래다가 숙소로 돌아가려 발을 돌릴 무렵 갑자기 "나 잠깐만 혼자 갔다와도 될까?" 하고 양해를 구하고는 다시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크레뻬를 사주며 기다린지 얼마 안되어 아내는 서둘러 뛰어오느라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아내는 아주 조금 더 행복해진 표정이었다.
삶은 기쁨이면서 슬픔이고 행복이면서 동시에 고통이다.가장 큰 선물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하다. 이유를 알듯도 모를듯도 하지만, 이 삶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기쁨과 행복 이면의 모습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사랑이 아주 가끔씩 상대에 대한 연민의 형태를 내보이기도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