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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Nov 06. 2022

Fear of Flying

다시 작은 슬럼프를 건너며, 

경험상, 슬럼프가 어려운 도전이나 고난의 와중에 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고난의 와중에는 우리의 온 정신은 그 문제에 집중한다. 그래서 사실 슬럼프따위를 느낄 여력이 없다.


그것보다 슬럼프는 

반복되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프로세스의 시작이나 과정에서 내재되어 있던 어떤 한계가 드러날때,  

그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때 찾아오거나 

오랫동안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온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때 찾아온다. . 

중요한 것들이 마무리 되고 이제 훌훌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야 할때 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입독 계획이 마무리되고

얼마전에 드디어 독일 비자를받았다. 그것도 무척 좋은 조건으로. 

차라리 그냥 평범한 비자를받는것이 안전하다는 조언도 있었고, 이게 잘 풀리지 못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안심을 하지 못했다. 

악명높은 독일의 관료시스템 덕에 오랜 기다림을 거쳐, 비자를 받았을때 안도감과 기쁨은 잠시, 

묘한 슬럼프를 경험하고 있다. 

해야할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고, 갚아야 할 글빚이 쌓이고 있다. 

이건 본질적으로는 변화의 시기가 왔을때 찾아오는 슬럼프와 비슷하다. 



닐 게이먼의 샌드맨은 수십가지의 이야기로 이뤄지는데, 영원한 존재들간의 애증으로 인한 갈등과 사멸, 그리고 부활이라는 메인 스토리 외에 닐 게이먼이 샌드맨을 빌어 창작한 아름다운 단편들도 있다. 

그 중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자신의 첫번째 연극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앞두고 

촉망받는  극작가인 그는 리허설 전날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 

 그는 갑자기 두려워진 것이다. 

과연 자신이 그런 관심의 대상이 될만한 존재인지 의문스러워졌고 아마도 그렇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글은 구태의연하며, 무가치 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조감독에게 그는 자신은 연극에서 손을 뗄것이라 선언한다. 내일 리허설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술을 마시다 잠든 그는 꿈을 꾼다. 꿈은 샌드맨의 영역이다. 

샌드맨은 신보다 오래된 존재, 세상이 창조될때부터 존재한 이야기와 함께하는 존재다. 

그는 허공에 높이 솟은 탑같은 바위 봉우리를 맨몸으로 올라가고 있다. 

두려움에 떨며 어찌어찌 올라간 꼭대기에는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샌드맨이다. 

봉우리 꼭데기에서 만난 샌드맨에게, 절벽을 올라오는 일의 두려움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기껏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내려갈 일도 까마득하다라고 털어놓는다. 


샌드맨은 말한다. 


"왜 항상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생각만 하지? "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이제 날아봐."


다음날 오늘 작가가 오지 못한다고 단원들에게 알리고 있는 부감독을 머쓱하게 만들며

리허설 현장에 나타난다. 어느때 보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이 에피소드는, 천마리 고양이들의 꿈(이번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샌드맨 드라마에 포함되어 있다.)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으면서 가끔 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곤 한다.

사랑에 빠지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에 빠져야먄 하는 법이다. .

어떤 일을 꼭 잘하려고, 멋지게 해 내려고 하는 것 보다는 그냥 그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삶의 어떤 부분은 그런 진실성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머리속에서 관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머리속에서 그린 그림을 달성할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 두려움 또한 부질없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 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요,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나는 게임을 만드는, 

재미도 흥미도 있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부질없기도 한 일을 정말 잘 하고 싶어서 독일까지 왔다. 

자신의 삶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한국에서 오랫동안 나를 얽매왔던 일들과도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랫동안 미뤄왔던 글을 다시 써볼 준비를 하고 있고, 몇가지 좋은 기회도 생겼다. 

뭐 높이 날 수 있을지, 얼마나 멀리 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날개를 갖고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은 쌓인 글빚을 하나 정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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