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 엄마의 글
계단 오르기 챌린지를 하고 있다.
매일 7층씩 3번을 오른 후 인증샷을 찍고 인증한다.
엊그제 남편과, 어제는 아들과 계단을 오르며 학학대는 거친 호흡의 순간을 공유했다.
엊그제 남편이 오랜만에 신나는 얼굴로 말했다.
“ 여보 여보, 내가 계단 올라가다가 재밌는 일이 있었어. 글쎄, 엘리베이터가 34층에 멈춰있는 거야.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분이 젊은 아줌마를 막 잡고 뭐라 뭐라 설명하는 듯하더니... 자기 집에서 딸인지 젊은 여자가 화난 얼굴로 나오니까 만류하며 들어가 버리더라. 궁금하지?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러게 무슨 일일까 나도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활기 넘치는 남편의 표정도 재밌고 손짓 발짓해가며 상황을 재연하는 데 정말 웃기기도 했다. 그 후로도 남편과 나는 그 이름 모를 이웃들의 싸움에 대하여 한참 층간소음 때문일지 또는 방수문제일지 추리하며 탐정놀이를 했다.
싸움구경이 가장 재밌다더니 그런 생기 있는 표정과 재연 연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제는 아들과 계단을 올랐다.
날다람쥐처럼 쌩 올라가다가 뒤처진 엄마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는 멈춰서 아무 말없이 엄마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아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이는 올라가며 자전거들을 유심히 살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라 자전거에 관심이 가나보다. 계단 난간에 공중 부양된 자전거, 커다란 바퀴의 자전거, 먼지 쌓인 아기 자전거, 적재 금지 스티커가 턱 붙어진 낡은 자전거. 자전거를 보니 오층에는 아이가 세명 있구나. 십삼층에는 어른들만 살고 있겠구나 이웃들의 모습이 대충 그려진다.
오늘은 혼자 계단을 올랐다. 남편도 아이도 이유를 대며 오늘은 안 되겠다고 했다. 챌린지 미션 인증의 위력이 세다. 운동린이인 나도 움직이게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르다 보니 오늘은 생각보다 몸이 가볍다. 조금 더 가볼까? 한계를 시험하며 또 오르다 보니 어느새 꼭대기층 35층까지 가게 되었다.
35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문득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살피게 되었다. 며칠을 오르며 관찰하게 된 이웃들의 근황을.
집에 돌아오자마자 막내가 혀 짧은 목소리로 반긴다.
“엄마 운동해쪄? “
“응, 오늘 엄마 35층 다녀왔어”
“35층? 우와 ~~”
팽이를 돌리다 큰 아이가 감탄했다.
으쓱한 찰나, 남편이 반색하며 물었다.
“35층?”
“어, 그래 35층. 둘러보니 두 집 다 아이들 키우는 집 같더라. 자전거며 킥보드며 유모차며. “
“그래? 그럼 층간소음이 맞겠네!”
남편이 다시 탐정 모드에 돌입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큰 아이가 말했다.
“나는 35층 아줌마 매일 만나는데?”
남편과 나는 얼굴을 마주 봤다.
“나는 20층 할아버지도 알고, 2층에 쌍둥이 꼬마 동생도 알아.”
우리는 모르는 이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우리 어른과 달리 상대적으로 새로움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
“안녕하세요? 몇 층에 사세요? “ 아이는 스스럼없이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질문을 하며 이웃과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던 거다.
아이의 호기심은 이웃을 연결시켜주는 열쇠였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Me and you에서 길을 잃은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가 비어있는 곰 세 마리 집에서 쉬다가 집에 돌아온 곰 가족을 마주치는 장면이 생각난다.
아빠곰과 엄마곰은 공간을 침범한 소녀에게 화가 난 표정이지만 아기곰만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소녀를 보고 있었다. 아기곰은 새로운 이웃에게 편견의 눈보다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이다.
Me and you-앤서니 브라운
10명 중 4명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라고 했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제는 정말 우리나라의 이웃사촌 개념이 확연하게 옅어졌음을 생각하게 된다. 옆집에 사는 이웃을 속속들이 알기보다는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정도로만 응답했다고 하니까.
나조차도 이웃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희망은 있다.
조사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서로 더 많이 배려할 수 있고, 언젠가 도움이 되기 때문에 향후 이웃과의 교류를 원하고 있다고, 이웃 관련 인식조사(2019)에 대한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웃 교류에 대한 희망을 아이들에게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아이들의 호기심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눈과 마음으로 먼저 이웃에게 다가갈 힘이 아직 아이들에게는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친근하게 이웃과 소통하려는 우리 아이들의 귀여운 호기심을 이제 나무라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그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소통의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보려 노력해야겠다.
오늘 아이와 함께 타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이가 아는 이웃에 정답게 인사를 건네야겠다.
참고자료) 이웃 관련 인식 조사 보고서(2019) 엠브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