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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영쓴이 Jan 04. 2021

엄마, 나 축구하러 다녀올게!

아이의 일상, 엄마의 글


 “엄마! 나 축구장에서 축구하고 올게~!”

 아이가 또 부리나케 축구하러 나갔다. 집 앞 축구장에 축구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며 학교 마치고 와서는 가방만 휙 던져놓고 가버린다.

 “어휴, 이렇게 추운데 또 해 지면 들어오려고... 이 녀석 정말 축구에 홀딱 빠졌구나.”

말로는 툴툴하지만 나는 내심 기뻤다. 아이가 스스로 축구하겠다고 뛰어나가다니... 정말 이런 날도 오는구나.     



  “콜록콜록, 콜록콜록! 엄마, 나 기침이 안 멈춰.”

 아이에게 소아천식이 왔었다. 밤만 되면 아이의 기침이 심해졌다. 약을 먹이고, 가습기를 돌리고, 목을 따뜻하게 하고 기침에 좋다는 배, 도라지 각종 건강식품들을 먹여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일 년을 꼬박 아이는 앓았다. 놀이터에서 땀 흘려 길게 놀고 돌아온 날이면 밤새 기침에 시달렸다. 겁이 나서 밖에서 놀이하기가 어려워졌다. 당연히 달리기도 힘들고 아이는 집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졌다.


 몸이 약한 아이를 가진 엄마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늘 관심사였다. 아이가 6살 되던 해 천식이 많이 호전되어서 운동을 시켜보기로 했다. 시설도 괜찮고, 강사진도 좋다는 축구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의 아이는 처음 가는 커다란 축구경기장을 많이 낯설어했다. 처음 하는 운동, 처음 보는 형들에 잔뜩 위축된 모습이었다.

 축구 수업을 듣는 내내 아이는 쭈뼛쭈뼛했다. 혹시 친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종종 봐온 동생도 같이 수업을 듣게 했다. 더 어린 동생도 금방 적응해 공을 따라 질주하는데, 아이는 축구경기를 하면 늘 골대 옆에 혼자 붙어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을 쫓아 뛰어나가지 않았다. 될성부른 떡잎만 알아보는지 특출 난 아이들의 축구 코칭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잘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수업 내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누구야 패스! 누구야 잘했어!”

 의욕을 보이지 않던 아이는 이름 불리는 일이 거의 없었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일쑤였다. 덩달아 엄마인 나도 너무 속상해졌다. 아이는 축구장에 가는 걸 점점 싫어했다. 새 축구화도 사고, 이름 박힌 유니폼도 나왔는데 정작 아이는 축구하러 가는 날 울면서 소리쳤다.

“나 너무 힘들어.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해?”


무엇이 힘든지 아이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며 축구하는 게 힘들었을 수도 있고, 머리 하나 더 큰 형들과 부대끼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체력 때문에 ‘나는 축구를 못 해’ 하는 좌절감이 든 건 아니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후로 축구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이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국 축구는 엄마가 아이에게 욕심을 부린 것이 되어 내 마음 한편에 짐으로 남았다. 집 앞 축구장을 지날 때 가끔 넌지시 “저기 네가 아는 친구 있네. 같이 해볼래?” 물으면 아이는 역시나 고개를 절레절레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신나는 주말 체육교실이 있다며 정보를 알려주셨다. 클라이밍, 골프, 풋살이 종목이었는데 풋살 빼고는 다 마감이 되었다. ' 어쩌지? 아이가 싫어할 텐데... ' 그래도 친한 친구와 함께 등록해서 같이 다닐 수 있으니 아이에게 한번 잘해보자며 신청했다.

 첫 시간 체육교실에 가는 차 안에서 풋살화 끈을 동여매며 아이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 나 막 떨려.” 나도 내심 걱정됐지만 아이에게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며 다독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또 쭈뼛거리며 겨우 동작을 따라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지 삐거덕삐거덕했다. 골키퍼 역할을 하다 골을 먹고는 민망했는지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때 금방 뛰어와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있었다. 코치님이었다.

 아이에게 무어라 속삭이니 아이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갑자기 열심히 공을 쫓아 경기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물 먹으며 잠시 쉬는 시간, 아이는 말했다. “아까 못 막아서 한 골 먹었으니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해. 꼭 우리 팀이 골을 넣을 수 있게 할 거야!” 사뭇 비장한 표정이었다. 아이가 골을 넣으려 태클을 시도하고 패스를 시도할 때마다 선생님의 “나이스!” “너 진짜 박지성 같아!” 하는 칭찬에 아이는 정말 박지성처럼 내내 경기장을 누비고 다녔다.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던 나는 감탄했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이런 거구나. 틀린 부분을 지적해서 바꾸려 하는 것보다 격려하고 칭찬함으로써 아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게 돕는 것이구나. 평소에 육아서에서 읽고 부모교육에서 수십 번 들어도 적용이 참 힘들었는데. 그 예시를 체육수업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코치님은 패스가 잘 안 되면 살며시 불러내서 1:1로 주고받으며 지도를 해주신다. 언성을 높여 지적하지도 않는다. 축구장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실수하는 친구가 있어도 “너 때문이야.” 하면서 무안 주지 않는다. 아이는 짧은 기간의 수업을 지나며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 축구장에서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나는 축구를 못 해”라며 시무룩했었는데 이제는 축구장을 지날 때마다 “정말 재밌어. 또 하고 싶어!” 하며 누구 같이 할 친구가 없는지 기웃기웃한다.     

 아이들은 자란다.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고, 가치관도 형성되고 태도도 만들어진다. 머물러 있지 않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아이의 성격을 만들고 가치관을 만든다.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지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아이는 스스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난 못해”라고 위축되고 낙담했던 어떤 것도 다시 시도해보면 즐겁게 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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