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 낮바다, 여수

서울촌년이 현지 지명을 듣다.

by 이지 EZ
너 향일암 아직 안가봤어?


이모에게 근처 어디가 좋은지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향일암 이야기가 나왔다.내가 커서는 엄마가 이모를 보러 자주 왔던 터인데다, 이모집 식구들은 철에 따라 여행을 다니는 것이 취미라 당연히 나를 데리고 향일암에 한번쯤 갔을것이라 생각하셨나보다. 가본 적이 없는 곳을 추천받아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이니 약간 놀란 눈치셨다.


같이 집에 갔으면 하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와 내려온 김에 좀 더 지내다 갔으면 하는 이모를 뒤로 하고 여수로 향했다. 좀 느긋하게 출발한 탓인지, 여수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 이모부가 이야기 해준 간장게장 골목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런데 골목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스크린샷 2017-09-26 오후 9.42.55.png 다음 지도에서 캡쳐한 여수게장골목(2014년)

길가는 운전자 붙들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찾지도 못할 뻔 했다. 서울처럼 요란 뻑적지근하게 길 다 정비해서 여기 간장게장골목이요!!하고 보여주는 것도 그다지 달갑진 않지만 이렇게 아는 사람 아니면 모르게끔 만들어 놓는 것도 찾는 사람에게는 솔찬히 불만이다. 2차적으로 못마땅 했던 것은, 상이 기본 2인차림이라 혼자가는 사람들은 당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다는 것!

20140527_133625 (1).jpg 여수 황소식당주차장에서.

결국은 혼자 2인분은 시켜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기왕 돈낭비 할 것 그냥 이모부가 추천했던 맛난 곳에서 먹기로 했다. 선택은 황소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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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백반이 1인분에 8000원 정도였는데 혼자서 2인분을 먹어야 하는 나의 슬픈 처지를 보며 천원 깎아주셨다. 맛이 있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고생한만큼 맛나진 않았다. 요즘 전국의 맛있는 먹거리는 서울에 다 모여있다더니. 백반을 먹다보니 황소간장게장을 추천해주시며 입맛을 다시던 이모부가 생각나기도 하고, 집에서 딸 걱정에 정신이 없으실 아빠를 생각하며 택배로 붙이려고 물어봤더니 택배 붙이는곳은 따로 있다고 한다. 게장으로 워낙 유명한 집이라 나름대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1인분도 먹을 수 있게끔 해주었으면...ㅠ.,ㅠ

2014년 당시 간장게장 1인분 8000원, 게장 3KG에 4000원.

지금은 1인분에 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도로를 타고 한참 달리는데, 향일암으로 가는 길목이 여수가 아니라 돌산이라고 적혀있다. 뭔가 이상해서 지나가시는 분을 또 붙잡고 물었다.

"선생님, 여기가 여수 향일암 가는 길 맞아요?"

"여수? 향일암은 돌산으로 가야지! 저기 대교 지나면 돌산공원있는데 거기도 볼만해!"


향일암이 있는 지역은 여수에선 돌산이라는 지명으로 따로 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명때문에 다음지도를 보면서도 긴가민가했는데 그 방향이 확실했다. 돌산은 섬인데 대교로 이어져있어서 달리는 길이 상쾌했다.


돌산공원

그 선생님이 추천해줄 만 했다. 바다색과 하늘이 아름다웠다. 현지인에게 추천받는 곳은 늘 그렇든 의외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곳에서 생을 영위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질투나기도 하지만 태생부터 도시에 있던 나는 과연 그곳에 적응할 수 있을지가 항상 염려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낡은 집들을 볼 때마다 이안에 속해 있다면 나는 무슨 역할을 할까 상상하면서 멍하니 바라 본다.


20140527_145231 (1).jpg 코묻은 휴지와 입장권.

돌산대교를 건너서 돌산의 거의 끄트머리쯤 가면 향일암이 나온다. 주차장에 스쿠터를 대고 향일암 입장권을 산다. 한국의 많은 절들이 그렇듯 향일암도 꽤나 산속 깊숙히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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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 갈 때 가장 기억이 났던 길이다. 한사람 겨우 통과할 만한 매우 좁은길.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이 눈치를 보면서 서로 순서를 기다리며 가야했던 길. 묘하게도 좁은길을 통과하며 다른 세계로 들아가는, 나아가선 새로 탄생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향일암입니다.

바다를 낀 암자는 언제나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물론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지 않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남쪽에 있는 바다는 동해나 서해보다 지나치게 맑아서 한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 있으면 바다를 보느라 나쁜 생각따위를 할 겨를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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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은 하루종일 아련하다. 자연도, 풍경도 실제로 보는 것 같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그곳에 들린 것이 꿈인가 생신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가만히 냅둬도 아름다운 자연마다 국립공원이란 이름이 붙어있는것은 자연보호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의미보단 인위적인 풍경에 질린 어느 높은 사람이 풍류를 즐길만한 공간을 위해 남겨둔 것이 아닌 가 싶다.



20140527_172949 (1).jpg 6000원짜리 순천의 팥빙수

행여나 사고날까 가죽점퍼를 껴입고 달리다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목이 마르다. 순천에 있는 어느 커피집을 들려 팥빙수를 한사발 했다.



잠자리는 남해캐슬 모텔. 영수증도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단지 그때 40000원을 주고 묵었던 경비기록밖에...그다지 인상이 남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던 수준의 모텔이었나보다. 참고로 도시내의 모텔과 비교 불가인 것이, 내가 들렸던 많은 지방 모텔(도시 제외)들은 대부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낡은 시설에 어딘가 조금 을씨년스러운(?) 곳들이 많았다.



자연을 보고왔다고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머리보다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달리면서 밤마다 그림을 그리겠다던 다짐은 게으름에 그새 사라졌다. 그래도 이제 반을 넘겼으니, 차분히 나머지 반을 진행시키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는 퓨즈가 끊기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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